신묘년(辛卯年),
음력 칠월 보름 백중(百中)날
하안거(夏安居)가 해제법회를 끝으로
회향(廻向)하게 되던 날
저녁 예불을 알리는
산사(山寺)의 범종(梵鐘)이 다섯번 울리자
범종루에 선 스님은 법고(法鼓)에 다가가서
양손의 북채를 들어올린다.
둥~두둥둥, 둥~두둥둥..
끝없이 이어지는 네박자의 울림은
저녁노을의 산사에서
저 산아래 마을로 마을로
그리고 저녁노을이 비춰지는
그 모든 중생들의 마을로 한없이 퍼져나간다.
금방이라도 에밀레종에 새겨진
비천상(飛天像)의 천인(天人)들이
그 소리를 타고
저녁노을 속으로 날아오를 듯한 이 시간
불경 속 미륵부처의 도래가
현실로 이루어질 것만 같은 순간이다.
중생과 네발 달린 동물들을 위한
법고가 울리고 나면
물 속의 짐승들을 위한 목어(木魚)와
날짐승을 위한
구름 모양의 운판(雲板)소리가
차례로 이어진다.
범종이 마지막으로
육계의 6천과 색계의 18천,
무색계의 4천을 합쳐
모두 스물 여덟번 울린다.
이 '법(法)의 울림'을 듣고
미욱한 중생들이
저 목어의 눈처럼 깨달음의 눈을
활짝 뜰 수 있을런지
해가 뜨고 질 때
하루에 두차례씩
깨달음의 자리가 예 있음을 알리는
힘찬 법고와 더불어
사물(四物)의 소리가 이처럼 울려퍼진다.
스님이 설명했다.
" 법고는 마음 심(心)자 모양으로 때려야 해요.
강~약약약, 강~약약약, 이렇게요.
마음의 눈이 뜨이도록 기도하면서
힘차게 때리는 거에요."
법고를 덮은 것은 소의 가죽이다.
살생을 금하는 불가에서
소의 가죽으로 북을 만든 것은 좀 아이러니하다.
스님이 설명했다.
" 법고는 인간만이 가는 깨달음의 길을
축생도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소가죽으로 만드는 거예요.
모든 축생의 대표로
제단(祭壇)에 바쳐지는 신성한 제물이지요".
아침 저녁으로 그 제단에 올라
소의 가죽을 두드리는 고두 스님들은
제사장의 역할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마음 심(心)자의
북채 리듬과 모양은
제사장의 신성한 칼질처럼
소가죽을 두드려
깨달음의 신성한 세계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아
중생에게 넘겨주려는 몸짓이다.
두두~둥
소가 웁니다/
축생(畜生) 하도 무거워
가죽으로 웁니다/
때리는 채 두짝에
살갗 터져 아파와도/
나고 죽고 어리석어
짐승 옷 입었음을 슬피 업드옵니다/
두팔 벌려 넉넉히
장삼 소매 저어 치면/
말발굽 소리인양
놀라 달아나는
삿됨 물리쳤나이다/
두~둥둥
속은 텅 비었으나
버릴수록 더 커지는/
크나큰 울림따라 더불어
더 가야될 깨달음의 길이기에/
아! 소가 또 웁니다
축생 아직 버거워
중중무진(重重無盡) 웁니다/
두~둥둥둥..
어스름한 저녁노을을 등진
스님의 신명에 찬 북소리가 울린다.
하처래 何處來
하처거 何處去 ..
울리는 북소리는 묻는다.
네 마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먼 길을 간다.
움메,
움메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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