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택 금강경 해설 제27회 <20.이색이상분>
추석 차례 때 조상님과의 관계 의미 한 번 알아보자. 여러분은 이미 몸이 무아란 것을 배웠고 마음도 무아란 것을 다 배웠다. 틀림없이 무아인데 우리의 말라식이 너무나 빨리 흐르는 아뢰야식 때문에 착각해 마음이 있다 생각하고 결국 그 마음이 또 몸을 움직여 우리가 몸과 마음이 다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산다는 것이 부처님 말씀이다. 이 착각을 벗어놓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고 또 이 착각을 벗어놓고 내려놓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 삶은 지금까지 알던 삶과 전혀 다르게 된다.
이게 왜 추석과 관련이 있나 하면 조상님들이 와서 음식을 드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밥 먹지 말란 말 있다. 기운 다 빠진 밥 아무리 먹어봐야 아무 도움 안 된다 그런다. 자녀들이 타종교로 개종을 했거나 제사를 안 지내줘 그렇게 배가 고프면 냉장고 음식이나 과일은 왜 못 드시나? 어차피 몸도 없고 투명인간 같은데 도둑질 한다고 누가 잡아가나? 영가들은 일단 몸이 없는 무아다. 몸도 없는데 배고파 하고 천도재 할 때 보면 옷도 태우고 의식주도 해주고 그런다. 왜 그분들이 차려놓은 것만 드시고 안 차려놓은 것은 못 드실까? 부처님이 깨달은 무척 중요한 내용이다.
一水四見 – 같은 물을 보고도 4가지 견해가 있다.
같은 물도 물고기는 물을 자기 집으로 보고 배고픈 아귀들은 피고름으로 보고 인간은 먹을 물로 보고 보살들이 보면 감로수로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악행하고 나쁜 짓 하면 다음 생에 축생 몸을 받고 지렁이 벌레로 태어나고 왜 그런가 하면 영가들은 못 보기 때문이다. 업 때문에 쥐의 아기들이 궁궐처럼 보이는 것이다. 벌레의 모태가 궁궐처럼 보여 일수사견의 원리로 들어가는 것이다. 제사 지낼 때 문 열어놓는다. 조상님들 다 가르쳐줘야지 할 수 있다. 후손들이 들어오세요 다 가르쳐줘야지 그제야 드시는 것이다. 안 가르쳐주면 못 드시고 밥을 쫄쫄 굶는다. 그렇게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못 먹는 귀신들뿐만 아니라 몸이 있는 귀신들도 모두 一水四見이다. 자기 기준으로 밖에 못 본다. 특히 주식 부동산을 하는 투자자들 보면 투자를 한다 함은 파는 사람이 있기 때문인데 자기 수준으로 밖에 못 본다. 이것을 벗어나라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 다 무명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 이 무명을 벗어나 밝음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저도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다음 천도재나 49재 가보면 똑같다. 무상사 법요집 보면 스님 의식 요령 치면서 한다. 살아 있는 사람과 똑 같다. 처음 겁을 하고 청을 하고 다음 진령게를 한다.
진령게<振鈴偈> - 此振鈴伸召請 冥途鬼界普聞知 願承三寶力加持 今日今時來赴會
아버지 제사 지내면 아버지한테 전화를 거는 것이다. 딸랑 딸랑 아버지 이 종소리 들리세요? 아버지 부르는 소리니까 빨리 오세요. 그게 이차진령신소청이다. 그리고 이 종소리가 인간계 귀신계 모두 두루두루 다 들리니 이것 지금 아버지 부르는 소리니까 빨리 오세요 그 소리가 명도귀계보문지다. 부처님 관세음보살 아미타불님의 가피력으로 아버지 좋게 해드릴 테니 빨리 오세요 그게 원승삼보력가피다. 원컨대 삼보의 본원력에 힘입어 오늘 법연에 왕림하소서. 스님하고 부르고 있으니 같이 만나 식사하세요. 이것이 진령게다. 그 다음 앉으세요 씻으세요 드세요 옷 입으세요 가세요. 그러면서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을 읽어드리니 아버님 부처님 가르침 다 들으시고 이제 모두 다 놓고 몸 좋은 데 받아서 새로 나세요 이렇게 요령치면서 하는 게가 진령게다.
사실 49재 같은 것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의 잘못된 생각을 다 내려놓고 이제 부처님 법도 배우고 무아도 아셨으니 이제는 업의 그물을 새로 짜야 한다. 금강경 첫 강의부터 지금까지 쭉 보셨던 도반님들은 이제부터는 하시면 되는데 어떻게 하시는 것인지 가르쳐드리겠다. 그렇게 되면 법화경 속에 나오는 주머니 속 보물 청담스님 말씀하신 80억짜리 통장 비밀번호 알게 된다. 51일이면 다 찾게 할 수 있다. 6x7=42 해서 안이비설신의 말라식까지 천도재 할 때 1제부터 6제까지 지내는 것이다. 42일 동안 싸그리 우리 식 다 없애고 난 다음 부처님 가르침 대로 제대로 된 새로운 식을 입재하고 회향하면 딱 51일이면 끝난다.
개운조사<1790~?> – 능엄경의 주석서인 유가심인정본수능엄경환해산보기 저자.
선 공부하시는 스님들이 많이 아시는 분이다. 아무도 보신 분은 없지만 지금 한 200세 되셨다 한다. 이 분 능엄경으로 공부하셨다. 사실 스님들 법문 대부분 능엄경에서 나온 말이다. 금강경의 지혜로 능엄경을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이 수능엄경에 안식 이식은 무엇이고 깨달음의 가르침이 다 있다. 이 분이 1840년도에 능엄경의 해설 토를 다시고 100년 후 누군가 나타나서 이 가르침으로 많은 중생들을 구제하게 되리라 했는데 정확히 1940년 양성스님이 이 책을 발견해 세상에 내놓게 된다. 원본은 절에 놓고 필사본을 갖고 나왔는데 며칠 후 그 절이 불타면서 수능엄경 해설서도 다 타버렸다. 1972년 종정스님 하다 돌아가신 고암스님과 1970년 열반하신 청담스님께서 토를 달아놓으셨다. 저도 이 책을 2003년도 누군가로부터 받아 지니고 있는데 같이 금강경 공부하는 분들에게 청담스님 80억짜리 통장 들은 대로 말은 해놓고 이것을 어떻게 찾게 해드릴까 고민하다 이 책을 보니 책에 답이 있었다.
물론 제가 깨달은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깨달음이 무엇인지는 알아야한다. 영주 부석사 주지스님 근일스님이라고 계신다. 영주 시내 어떤 교회에 목사님 초청으로 강연을 가셨다. 참 하나님도 이상한 사람이지 창조를 하려면 제대로 해놓지 엉망으로 창조해서 우리를 이렇게 힘들고 괴롭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교회가 갑자기 썰렁해졌다. 스님을 마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텐데 교회 신도들이 얼마나 열 받았겠나? 그러자 목사님이 스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완벽하게 창조해놓으셨는데 선악과를 따 먹어서 그때부터 분별이 생겨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스님이 물었다. 목사님 그 선악과는 누가 창조했나요? 그러자 교회 분위기가 더 싸늘해졌다.
그런데 하나님만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부처란 사람도 참 이상한 사람이다. 깨달을려면 다 깨닫게 해놓지 왜 혼자만 덜렁 깨닫고 나서 깨달음이 이러니 저러니 해가지고 보모 버리고 자식 버리고 집 버리고 머리 깎고 와 살게하는지 부처나 예수나 참 생각해보면 황당한 사람들이다. 그러자 그제야 웃더란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렇게 황당하신 분이 아니다. 깨달으라고 다 이야기 해놓으셨다. 광명은 밝게 비치는데 내가 선그라스를 써서 밝게 못 보는 것이다. 이 안경만 내려놓으면 형형색색 모든 것이 다 있다. 그게 이색이상분의 주제이다.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아미타불 이런 분들 계속 우리에게 전화해서 가르쳐주시는데 우리는 계속 엉뚱한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말해도 모른다. 그게 21분 非說所說分이다. 그래서 눈을 다스리고 귀를 다스리는 것이 깨달음의 시작이다. 여러분이나 저나 사실 바보다. 일단 바보라는 것을 빨리 인정해야 바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바보라고 인정 안 하고 자신이 똑똑하다고 그러니 모든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누가 여기 오라 그랬나? 무엇이 여러분을 여기까지 오게 했나? 무엇이 이 자리에 서게 했나? 마음인가 법인가? 법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다. 돈이다. 돈이 여러분을 버스 타고 차 타고 여기까지 오게 했다. 다 돈 힘으로 여기 온 것이다. 어떤 부자가 아들에게 높은 건물을 보고 여기 뭐가 서 있냐? 물었다. 건물이요. 아니다 돈이 서있는 것이다. 주식이 맨날 오르락 내리락 하지만 사실 돈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다. 色과 相을 떠나라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 단지 생각일 뿐이다. 담장 위로 소뿔 지나가면 당연히 소 지나가는 것 알아야 하듯 우리도 눈으로 보는 단계를 벗어나야 한다. 그게 바로 깨달음이다. 그러니 여태까지 눈으로 보이던 色 이렇다고 생각하던 相 제발 내려 놓아라. 이게 離色離相分이고 지혜의 힘이다. 여러분 알게 모르게 이 지혜를 쌓아놓으실 복덕들 쌓으셨다. 사실은 복력이 있어야 지혜력이 생기는데 1분부터 여기까지 지혜를 쌓으셨다.
법계통화분 19 - 그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4.묘행무주 – 기복덕 불가사량 6.시제중생 득여시무량복덕 8.의법출생 – 사구게등 위타인설 기복승피 11.무위복승 – 이차복덕 승전복덕 13.사구게등 위타인설 기복승피 14.개득성취 무량무변공덕 15.약부유인 운차경전 신심불역 기복승피 16.유수지독송차경 소득공덕 아약구설자 심즉광란 호의불신 19.삼천대천세계 칠보이용보시 차인 이시인연 득복다부 심다세존 차인 이시인연 득보심다
여러분 알고 오셨든 모르고 오셨든 참 복 많이 지으셨다. 아마 저와 같이 공부하시면서 복을 알고 공부하신 분은 알고 받고 모르고 오신 분은 복이 모르게 와서 받으실 것이다. 그것이 법계통화의 원리다. 이제는 행동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色과 相을 떠나야 한다. 예전 부처님 법 무아를 모르기 전에 지었던 복보다 이제는 옛날의 내가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은 복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짓는가 알아야 한다. 복도 다 인연이 있어야 한다. 19분 법계통화분 다시 한 번 복습한다.
○ 法界通化分 第十九
須菩提 於意云何 若有人 滿三千大千世界七寶以用布施 是人 以是因緣 得福多不 如是 世尊 此人 以是因緣 得福 甚多 須菩提 若福德 有實 如來不說得福德多 以福德無故 如來說得福德多
수보리야 너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 보시한다면 그 사람이 이 인연으로 얻는 복이 많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이런 인연으로 얻는 복이 많습니다. 수보리야 만약에 복덕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여래는 복덕이 많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복덕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주고 받는 것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받고 네가 주고 하는 것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래는 복덕이 많다고 하느니라.
구경무아분 일체동관분이 끝나고 법계는 하나다 라는 말이 딱 나오고 난 다음 離色離相分이 나온다. 절대 색을 없애거나 상을 없애는 滅色滅相이 아니다. 色도 있어야 하고 相도 있어야 한다. 몸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 그래서 몸 정말 중요하다. 절대 滅色滅相이 아니다. 추석특집 때 나간 좋은 돈 나쁜 돈 이상한 돈 하고 나서 어떤 스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나쁜 돈은 알겠다. 그러면 좋은 돈은 뭐냐? 좋은 돈은 화두라는데 난 성질이 급해 당장 알아야 하겠다. 또 어떤 분은 아니 남 목숨 뺏어 내 목숨 이어 살다보면 다 나쁜 돈이라는데 그러면 우리는 앉아 굶어 죽어야 하나요? 23분에 나온다.
부처님 말씀은 이렇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모르고 좋은 일하면 좋은 일이 아니고 아무리 나쁜 일을 해도 알고 자기를 보면서 나쁜 일을 하면 나쁘지 않다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면 된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대세지보살님은 자비로 안아주기만 하시는 분들이 아니다. 절복으로 확 끊어버리기도 한다. 군다리보살처럼 확 깔아 뭉개기도 한다. 왜냐하면 가르치기 위해 그러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돈은 다 나쁜 것이다 내 목숨 잇기 위해 남의 목숨 뺏는 것이다 라고 알고 돈을 벌면 그때부터 돈은 다 좋은 돈이 된다. 돈은 독약 화약 유리조각 같은 것이다. 잘 관리하고 잘 쓰고 잘 키워야 한다.
절복 – 나쁜 사람이나 외도 사도를 꺾어 굴복시키는 일
군다리보살 – 일체 고액을 제도해주는 일을 맡아서 자비를 펴는 보살
허물이 있다면 일어나는 번뇌를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 허물이지 일어나는 번뇌를 보면 반대로 굉장한 공덕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에게 일어나는 번뇌를 보지 못한다. 자기에게 일어나는 마음을 못 보면 허물이 되지만 보면 허물이 없어지고 반야의 힘이 생긴다. 저는 고맙습니다 하고 참회진언 한다. 그러다 요즘은 부처님 저에게 무아를 가르쳐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로 변했다. 무아를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저를 용서해주십시요 그러면서 무아가 핵심으로 들어섰다. 무아를 보면 색과 상을 떠나 진실로 한 걸음 나아 가게 된다. 여러분 모두 그렇게 가실 수 있다. 1~19분까지 알고 지었든 모르고 지었든 복을 많이 지으며 오셨기 때문에 22분 이색이상분에서 이렇게 만난 것이다. 20~23분까지는 깨달음에 대한 내용이다. 다음은 복에 대한 백성욱 박사님의 말씀이다.
모든 사람들이 잘 살기를 바라고 원합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잘 살 원인을 지어야 합니다. 부단히 복 짓기를 발원하고 실행이 이어지면 자기의 복그릇이 커지게 됩니다. 또한 복은 물질로 나타나기도 하기에 물질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바로 복이 되는 것입니다. 돈을 헤프게 쓰거나 함부로 쓰면 돈의 신이 나갑니다. 음식도 전기도 무엇이든지 소중하게 여겨 절약하는 마음에 복이 들어옵니다. 복은 누구에게 달라고 기도하거나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은 적극적으로 지어야 하며 그 지은만큼 받을 뿐입니다. 대부분 복은 몸으로 짓습니다. 한 번의 절이 한 톨의 쌀이라고 하는 이치입니다.
어떤 사업을 하기 전 우선 자기의 복력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돈이란 복력에 의해서 벌어지는 것이지 생각과 의욕만으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복 짓는 마음으로 복 짓는 생각으로 복 받을 일을 하면 복을 받는데 그것이 미래의 복력을 당겨쓰는 지혜이며 복 지으며 복 받는 방법입니다. 일에 대한 탐심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그런 마음을 내지 마십시오. 부산 간다고 서울역이나 터미날에서 아무 차나 올라타거나 차를 몰고 악셀레이터만 밟는다고 부산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시중의 성공도서가 말은 그럴 듯 한데 시작과 끝이 다른 경우가 바로 이 경우입니다. 나의 체력 능력 시간으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고 아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시간과 여유를 두고서 하셔야 합니다. 무조건 밀어 붙인다고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을 할 때 마음이 조급해지면 마음에 탐심이 일어나서 반드시 실패합니다. 그때는 그 마음을 내려놓고 혹은 관세음보살님께 바치고 금강경을 읽거나 마음을 쉬게 하여 차분하게 원을 세운 다음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은 마음이 성취하는 것이지 몸이 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급해서 되는 일이 없으니 바로 그 마음을 쉬게하여 탐심을 제거해야만 일이 쉽사리 이뤄지는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장사가 안 될 때 손님이 없다고 하는 그 짜증스러운 마음을 자기가 마음 속에 그리고 있으면 그 일으킨 한 마음이 일으킨 파장이 가게 안팎을 짜증스러운 분위기로 가득 채워서 손님이 오고 싶다가도 그 파장을 느끼면 발길을 돌립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영물스럽고 예민하기가 그지 없어서 그 가게에 오지 않게 되고 온다고 해도 얼른 일어나 나오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짜증스러운 마음이나 끙끙대는 마음을 어서 털어버리고 바치는 것이 손님이 오게하는 실행이 됩니다. 장사가 안 된다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며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더더욱 금물이며 입 밖에 배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누가 물을 때도 항상 잘된다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항상 잘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잘 된다고 생각하고 잘 된다고 말하는 것은 잘 된다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기에 결국 그 마음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의 법칙입니다. 이 우주법계의 살림살이가 펼쳐지는 것은 각자 자기 마음 닦은 대로의 표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체유심조의 세계입니다.
여러분이 집착할 때 법계의 살림살이에 대해서 그대로 캄캄절벽하게 되며 여러분이 집착과 탐착 그리고 애착에서 벗어날 때 법계의 살림살이는 그대로 밝게 여러분 앞에 드러납니다. 이 법계는 모든 것을 그대로 갖추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구하는 정도는 다 충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함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이유는 스스로의 마음 속에 안 된다 라는 초조하고 성내는 마음의 찌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 된다는 마음만 내려놓으면 일은 저절로 이뤄집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도 통하는 것도 사전에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 모든 일이 준비성 있는 발원과 행동으로 이뤄지는 것이기에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그에 상응하는 철저한 준비가 있으면 그 일에 임해서 여유가 있고 생각하는 힘이 생겨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를 구하거나 친구를 사귈 때 혹은 사원을 고용할 때도 복이든 지혜든 같은 정도끼리 모이게 돼 있습니다. 말 그대로 유유상종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여러분과 저도 잠재적인 복 그릇과 지혜 그릇이 다 유유상종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를 만나는 것도 장사가 잘 되고 못 되는 것도 다 복 지은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복력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다 자기가 복 지은 정도만큼 받고 자기가 복 지은 정도만큼 사람을 만나는 것인데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그러니 오늘과 내일을 위해 우리에게 법계의 살림살이를 가르쳐주신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짓기를 발원하고 부지런히 원을 세워 닦아나갈 일입니다.
원을 세우면 복을 지어야 되겠다는 자각이 생기고 또 복을 지을 수 있는 여건이 자꾸자꾸 만들어집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해야 되는데 안 되는 일이 있을 때 바로 그때 원을 세우십시오. 자기의 복에 넘치는 것은 당장 이뤄지지 않지만 자꾸 복을 지어서 그 일이 이뤄질 만큼 복 그릇이 차면 그 일은 꼭 성취됩니다. 법계의 살림살이가 참으로 불가사의해서 아무리 자기의 마음에 없는 말이라고 해도 부처님 앞에 혹은 법계에 크고 밝은 원을 세우면 그것이 결국엔 현실로 나타나게 됩니다. 자기가 지은 복은 남 주질 못하고 남의 복은 절대 자기가 갖지 못합니다. 단지 그 복 지은 사람의 그늘에서 그 사람이 혜택을 입기는 합니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80리라고 가족 중에 혹은 같이 근무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복 지은 이가 있으면 그 복력의 혜택을 여러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을 남에게 절대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 복은 늘 지어야 합니다.
또 재앙이 닥치면 복 그릇에 구멍이 뚫리므로 아침 저녁으로 금강경 잘 읽고 방심하지 않는 마음으로 잡스런 업식들을 잘 바쳐야 담긴 복 그릇 속에 복이 잘 유지되는 것입니다. 월급쟁이 생활하는 사람들은 월급을 받을 때마다 봉급의 3배를 자기 회사에 벌어준다는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일을 꼭 그렇게 해야 한다 라기 보다는 마음을 그렇게 쓰면 모든 일에 세심한 신경을 쓰고 철저를 기할 수 있게 됩니다. 모두 원인 지은대로 결과를 받기에 이런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공부를 하는 사람 마음 공부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태도는 주위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주어 본인과 함께 여러 사람을 같이 복 짓게 할 것입니다.
더더구나 그렇게 지은 복은 남이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기에 어디 가서 자기가 복 지었다고 말할 필요도 없고 생색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그 물건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계시고 보시는 받을 수 없고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하십시오.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 하시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수나 대가 인사를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자신의 탐심을 닦기 위해 준다는 마음을 갖되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히 하십시오. 무엇이든 남에게 자꾸 준다는 연습을 자꾸 하셔야 복 그릇이 점점 커져 다음에 자신의 복 그릇에 채워질 복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원인을 지금도 내일도 모레도 현재도 미래도 계속 지어 나가고 심어 나가셔야 합니다. 그것이 법계의 살림살이를 아는 사람의 행동입니다.
사람이 평생을 먹어야 쌀 40가마 밖에 먹지 못한다고 합니다. 가난한 이도 부자도 끊임없는 자신의 탐심을 따라다니기보다는 이제는 무아도 알게 되셨고 몸도 무아고 마음도 무아인 줄 알아서 들어서 배워서 깨쳐서 아시는 여러분들은 스스로가 동료가 경쟁자가 고객이 옆 사람이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이니 탐심도 적정선에서 만족하고 자신의 복 그릇을 채워나가는 것이 이 법계의 살림살이의 이치를 아는 총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혹시 살다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더라도 받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준다는 생각으로 빌려주고 그 다음엔 절대 생각하지 마십시오. 물건을 누구에게 주더라도 절대로 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주지 말고 법계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 준다는 것을 절대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법계의 살림살이도 모르는 이가 즐거워해봐야 그것이 참 즐거움이 아니란 것은 이제 여러분이나 저나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법계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주는 것이지 그 사람을 위해서 준다는 생각은 버리실 때도 되었습니다. 우리가 법계는 아니지만 법계의 일부이고 그 사람도 법계 그 자체는 아니지만 법계의 일부이므로 법계를 즐겁고 순조롭게 하기 위해서 주어야 하며 나의 아까워하는 그 인색한 마음을 버리기 위해서 주어야 하며 내 마음을 닦기 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빈 마음이라도 주는 마음을 부지런히 연습하면 마음이 넓어지고 물질에 대한 애착도 없어져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탐진치가 다 닦이게 됩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장사를 할 때도 나나 내 가족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일한다기보다 법계를 위해 법계를 즐겁게 하기 위해 일을 하면 여러분의 종자식인 제8식 아뢰야식에 좋은 종자가 심어져서 그 좋은 종자가 여러분의 몸과 기세간을 좋게 하기에 육신과 가족이 다 고통을 쉬고 편하게 되는 것이 법계의 이치요 법계의 살림살이란 것을 이미 다 배우셨을 것입니다. 복은 각자가 다 자기 마음에 짓는 것입니다. 부처님 전에 관세음보살님 전에 지장보살님 전에 공양을 올릴 때 그 올린 마음에 그대로 복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부처님 복을 옹호하고 남에게 법계의 살림살이의 이치가 담긴 금강경의 가르침을 전하고 자신의 마음이자 부처님의 마음인 도량을 만들고 가꾸는 일 이러한 일들이 다 자기 마음에 복을 지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복을 짓겠다는 그 간절한 마음 그 발심이 서고 어느 순간 공경심과 환희심이 나는 순간 그 순간에 큰 복이 지어집니다. 항상 중생을 구제하시겠다는 보살들의 간절한 서원이 성취되는 순간 그 마음이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져서 환희심과 공경심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항상 웃고 항상 밝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제 무아를 아셨으니 나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자기가 복 짓는다는 그 한 생각마저 다 내려놓으시면 그것이 수행이 됩니다. 我相을 녹이고 반야를 증득하고 부처를 증득한다 함은 마음 닦는 이는 자신이 지은 복을 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지은 복은 끈에 묶인 장난감처럼 당기면 언제든지 끌려옵니다. 시간과 관계없이 끌려옵니다. 그런데 그 복을 자신이 받을 마음을 내면 줄어들고 법계에 바치려고 하면 더 큰 복을 짓게 되어 자기 마음에 부처님을 증득하게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信解五證 혹은 信解修增 4단계로 나눠 설명하는데 여러분들은 금강경에 대한 믿음으로 이 자리에 계시니 금강경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 즉 신이 있으신 것입니다. 또 저와 같이 공부하신 이해 즉 解를 하고 계신 것이고 이제 20분부터 23분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스폰지처럼 의심없이 다 받아들여지면 법계의 이치와 내가 누구이고 남이 누구인지 아시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기에 깨달을 오 혹은 깨달을 바를 닦아나간다고 해서 깨다를 수입니다. 그것이 돈오돈수 혹은 돈오점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證이라는 것은 어떤 한 생각이나 느낌이 마음에 새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저와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막연하나마 그려진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부처님의 법이 여러분의 마음에 心印이 찍히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사진기가 어떤 모습을 찍어두듯이 마음에 어떤 인상과 인식을 그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證이라 하고 그것이 점점 명확해지고 확신이 차게 되면 언젠가는 현실이 되어서 풀려나오는데 그것을 得이라 합니다. 스님들 법문에 부처님을 증득한다 함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들처럼 세간에서 생활하는 재가불자들의 마음에 한 달에 얼마로 살아야 하고 그 얼마라는 액수가 나중에 필요하고 70까지 살려면 얼마가 필요하고 100살까지 살려면 얼마가 필요하고 인간의 평균 수명이 얼마고 자녀양육비가 얼마 얼마 하는 식으로 보험회사 혹은 저처럼 금융기관에서 자산관리 영업하는 사람들이 평생의 자산관리 등등의 광고를 보시고 접하시게 될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마음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좋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내가 앞으로 얼마로 살아야 한다 내가 얼마가 부족하다 라는 것은 그 강박관념을 머리에 그대로 그려넣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족하다 없다 라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그러니 그 마음이 얼마나 시시각각 절박해지겠습니까?
금강경 공부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마음에 證해 놓고 없다는 마음만 계속 증해 놓고 있다는 마음은 부지런히 닦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가 사진 찍어둔 그 없다는 마음 그대로 계속 궁핍하게 살게 되고 그 다음 생에도 궁하게 살게 됩니다. 그러니 설혹 지금 당장 물건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직업이 없거나 생계를 위한 물질이 없더라도 그 마음 쓰기를 있는 마음을 배우셨으니 그 있는 마음을 계속 증해 나가시면 마음에 넉넉한 여유가 생겨 그 마음 따라 필요한 물질 필요한 일 등을 得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증득이고 부처님을 증득하고 반야를 증득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은 먹고 사는데 있습니다. 일단은 먹는데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건 식사 대접을 받으면 마음이 누구러져 버립니다. 그러니 사람들을 보거나 만날 때는 대접을 하십시오. 누구에게 밥을 사면 주는 마음과 먹는 음식 2가지를 그 사람이 대접받게 되는 것이고 밥을 사거나 베푸는 사람에게는 그때 복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남이 행복해하는 순간 그 순간 바로 복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풀이나 나무 같은 식물을 죽이는 것보다 곤충이나 벌레를 죽이는 것이 죄가 크고 곤충이나 벌레보다 개구리나 물고기를 죽이는 것이 죄가 크고 물고기나 파충류보다 개나 소나 노루 코끼리 곰 같은 포유류를 죽이는 것이 죄가 크고 동물을 죽이는 것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죄가 큰 것처럼 복을 지을 때도 그러합니다. 도둑놈 천 명 밥 먹이는 것보다 착한 사람 한 사람 착한 사람 천 명보다 마음 닦은 한 사람 마음 닦은 사람도 덜 닦은 사람보다 많이 닦은 사람에게 밥 먹이는 공덕이 크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도인에게는 무조건 빚을 지어놓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생에 있건 복 있는 사람과 지혜가 밝은 사람이 복 지어놓은 우리를 제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을 지을 때 분별심이나 차별심을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공부하면 할수록 그렇게 도반들의 수준이 같이 높아지고 만나는 선지식의 수준이 같이 높아져서 제대로 복 지을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인과 공부한 사람들은 정성과 공경심으로 올리는 물건이어야 혼쾌히 받지 그렇지 않은 물건은 잘 받지도 않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가 부처님과 보살님과 일체세간 천 인 아수라와 스님들께 공양드리는 이치입니다. 금강경 제1분부터 19분까지 자신이 알든 모르든 복을 지어오신 우리 도반님들이 그 복력으로 가행정진하시어 깨달음의 길인 금강경 제 20분 이색이상분으로 들어가시기 바라겠습니다.
죠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계속 그렇게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아일랜드의 유명한 희극인. 죽기 10년 전 자기 묘비명에 이 글귀를 써 놨다. 우리 부처님 가르침 알고 지금까지 복 지어 왔다. 그러면 그 다음 그 복력을 기반으로 깨달음의 길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다 아는데 우물쭈물하다 보면 이런 묘비명처럼 된다. 다음 생 우리 사람 몸 받는다는 보장 없다. 다음에 불교 믿는 부모 밑에 태어난다는 법도 없다. 부모가 제대로 된 정법을 가르쳐준다는 보장도 없다. 이번 생에 탁 끝내야 한다. 그게 20분부터 시작된다.
부처님 고행상 - 절대 이러지 말라!
우리 깨닫는데 부처님 절대 이러지 말라 하셨다. 부처님 6년간 고행하시다 포기하신다. 그 다음 우리가 흔히 보는 살집도 있는 풍족한 부처님으로 바뀌신다. 고행이나 깨달음 절대 이렇게 하지 말라 하셨다. 단지 일어나는 그 마음을 보라. 제대로 보고 control 할 수 있으면 그것이 깨달음이요 부처 되고 성불하는 것이다. 그러니 깨달음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어나는 그 마음 하나 보자.
27회. 우승택 금강경<이색이상분>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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