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대군의 척후’ 펴낸 경제연구가 주익종 박사
오늘날 역동적인 한국 기업들의 기원을 찾기 위해 일제 강점기 대표적 한국인 기업이었던 경성방직을 분석한 책 ‘대군의 척후’를 최근 펴낸 주익종 씨. 전영한 기자 |
“경성방직은 일제 때 최고의 한국인 기업”
“오늘날 한국에 삼성전자가 있다면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방직이 있었습니다. 경성방직은 당대 최고의 한국인 기업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경성방직의 역사와 그 설립자 인촌(仁村) 김성수 선생 일가의 경영 철학과 활동을 분석한 책 ‘대군의 척후’(푸른역사)를 낸 경제연구가 주익종(48) 씨. 그는 경성방직의 성장사를 통해 오늘날의 역동적인 한국 기업들의 기원을 살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주 씨는 서울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미국 하버드대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가 이끄는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일원으로 한국경제사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서울신용평가정보 이사로도 재직 중이다.
그는 “이번에 낸 책은 1991년 하버드대 카터 에커트 교수의 책 ‘제국의 후예’에 대한 반론의 성격도 있다”고 저술의 또 다른 이유를 밝혔다. 한국사를 가르치는 에커트 교수는 ‘제국의 후예’에서 경성방직을 당대 대표 기업이라고 하면서 “일본의 협력 덕분에 만주와 중국 본토까지 사업을 펼치는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 씨는 “경성방직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한 것일 뿐”이라며 “경성방직의 회계와 영업 활동 자료를 꼼꼼히 분석해 에커트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고 말했다. 주 씨는 에커트의 책도 번역해 이번에 함께 냈다.
―경성방직 설립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촌 김성수는 대표적인 문명개화파다. 경성방직을 설립한 것은 그가 품고 있던 ‘근대화 이념’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는 일본에 유학하면서 근대문명의 위력을 절실히 체험했다. 일본의 공업을 보면서 조선의 장래도 공업화를 통해 구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은 이를 앞당기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아일보와 중앙학교 설립도 같은 생각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윤은 인촌에게 주요한 동기가 아니었다. 당시 그가 벌인 일이나 사업들은 돈을 버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에커트 교수는 총독부가 식산은행을 통해 한국인 기업들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총독부는 대출에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 게다가 경성방직은 토지를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렸다. 정상적인 금융 거래였다는 얘기다. 식산은행은 한국인 기업이든, 일본인 기업이든 담보의 적절성에 따라 대출을 결정했다.”
―에커트 교수는 경성방직에서 생산한 제품의 판매도 일본 상인들이 크게 거들어줬다고 기술했다.
“명백한 오류다. 에커트 교수는 1930년대 말 어느 해의 1년 치 기록만 보고 일본인 상회들이 경성방직의 제품 60%를 판매해 줬다고 했는데 다른 거래 명세를 보지 못한 결과다. 1919∼1926년 거래 명세가 적혀 있는 장부를 살펴봤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경성방직은 스스로 시장을 개척했고 한국 포목상들에게 제품의 대부분을 넘겼다.”
―일본의 중국 침략기에 경성방직이 중국 본토로 진출한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나.
“일제에 편승해 중국에 진출했다는 이야기는 당시 시장 상황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다. 1930년대 국내 면포 시장은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국외로 새롭게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사업 의욕이 충만하던 기업가로선 당연한 판단이었다.”
―책을 쓰면서 인촌에 대해 받은 인상은….
“뛰어난 ‘조직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유학파를 중심으로 당대 최고 엘리트들을 중앙학교, 동아일보, 경성방직으로 끌어들였다. 수많은 유학생 가운데 인촌만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끌어나간 사람이 없다. 그런 역량을 바탕으로 인촌이 설립한 경성방직, 동아일보, 중앙학교는 당대 제조공업, 언론사업, 교육사업을 대표하는 근대화 사업의 최고봉이었다.”
―책의 제목 ‘대군(大軍)의 척후(斥候)’는 무슨 뜻인가.
“춘원 이광수가 1935년에 쓴 글 가운데 ‘상업에서 화신백화점, 공업에서 경성방직의 확장 발전은 결코 한낱 사실만이 아니요, 뒤에 오는 대군의 척후임이 확실하다’고 한 데서 인용했다. 대군은 훗날 만개할 한국의 기업과 자본주의를, 척후는 선두에 서서 이를 이끌었던 두 기업을 의미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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