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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인생 50년’ 올여름 정년퇴임 맞는 / 김혜식 교수

淸潭 2010. 2. 19. 14:46

[초대석]‘발레인생 50년’ 올여름 정년퇴임 맞는 김혜식 교수




김혜식 교수는 수십 년간 쌓아 온 해외 무용계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조직화해 한국 무용수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있는 김혜식(65)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한구석에 놓인 바(Bar)와 그 앞에 있는 전신 거울이었다. 김 교수는 “요즘도 학생들을 가르치러 가기 전엔 늘 내가 먼저 ‘몸을 풀고’ 수업에 들어간다”고 했다.

찰랑거리는 생머리, 160cm에 44kg밖에 안 되는 몸매 덕분에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지만 어느덧 발레 인생 50년을 맞은 그는 올여름 정년퇴임한다.

―정년을 맞는 소감은….

“예술가에게 무슨 정년이 있겠습니까만…정신없이 일에 매달리다 보니 어느새 나이가 그렇게 됐네요. 저도 벌써 정년이라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웃음)

그의 퇴임을 앞두고 제자들이 다음 달 3일 서울 메리어트호텔에서 김 교수를 위한 조촐한 헌정 공연을 준비 중이다. 헌정 공연의 제목은 ‘한국의 발레 스타 갈라-과거, 현재, 미래’. 발레리나 김주원을 비롯해 장운규 이원철 등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와 엄재용 황혜민 등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그리고 얼마 전 로잔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박세은(한예종 무용원 2년) 등 20여 명이 출연한다.

한국의 제1세대 발레리나인 김 교수는 중학교 시절이던 1957년 ‘호두까기인형’ 중 ‘꽃의 왈츠’로 처음 무대에 선 이후 고교 1학년 때 스승인 고 임성남 씨와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며 주역으로 데뷔했다. 이후 그가 걸어온 길은 ‘최초’와 ‘최고’로 이어진다. 제1회 동아무용콩쿠르 금상 수상, 한국인 최초로 영국 로열발레스쿨 입학, 해외발레단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동한 해외파 1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초대 원장….

―발레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무래도 로열발레스쿨 시절을 꼽게 됩니다. 당시 소련은 철의 장막이었으니 서방세계에서는 영국로열발레스쿨이 세계 최고였거든요. 거기서 세계 발레계의 전설인 마고 폰테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설렙니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 발레단, 캐나다 레그랑 발레단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약하다가 결혼 후에는 남편인 김주익 교수가 몸담고 있던 미국 캘리포니아 프레즈노대로 옮겨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이후 1993년 국립발레단장직을 제안받고 귀국했다.

“국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열악한 환경이었어요. 연습실 바닥에 고무판도 제대로 깔려 있지 않고…. 게다가 실력 위주가 아니라 주역은 나이순, 입단순으로 그냥 맡는 분위기였죠.”

그는 오디션 제도를 정착시키는 등 서양의 발레단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앞장서는 한편 발레단 부설 문화학교를 만들어 발레 꿈나무를 위한 조기 교육에 힘썼다.

―그동안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한국 발레가 세계무대에 진출한 일입니다. 세계 콩쿠르에 애들을 악착같이 내보냈고 저도 각종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꼬박꼬박 나갔습니다. 사실 국제대회에서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실력이 비슷비슷하다면 이런 인맥도 무시할 수 없거든요. 신생인 우리 무용원이 300년 역사의 유서 깊은 발레학교인 프랑스 파리 콩세르바투아르 등 세계적인 발레학교들과 자매결연을 맺은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실제로 그가 무용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한국 발레는 세계무대에서 눈부신 성장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은 각종 국제 콩쿠르를 휩쓸기 시작했다.

―일을 위해 일부러 아이도 갖지 않으셨는데 후회하신 적은 없는지요.

“가끔은 애가 하나쯤 있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후회는 없어요. 남편은 제 학생들이나 발레단원들을 볼 때마다 늘 그래요. ‘얘들이 우리 아이들’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은….

“해외 무용계 인사들과의 네트워크인 ‘인터내셔널 댄스 네트워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국제콩쿠르에 나가는 학생들을 지원하고, 뛰어난 우리 학생들의 해외 진출에도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미국 잭슨콩쿠르 심사위원 겸 예술감독인 브루스 마크,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에투알(최고등급무용수) 발레리나 출신인 파리 오페라 발레 스쿨의 엘리자베트 프라텔 교장 등이 벌써 동참 의사를 밝혀 왔고요. 8월 퇴임 후 본격적으로 매달릴 생각입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 김혜식 교수

△1942년 서울 출생 △이화여중, 이화여고,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 △1969년 영국 로열발레스쿨 수학 △1967∼1969년 스위스 취리히 오페라 발레단 드미 솔리스트, 1969∼1972년 캐나다 레그랑 발레단 솔리스트 겸 주역 무용수 △1975∼1992년 미국 캘리포니아 프레즈노 주립대 발레 주임교수 △1993∼1995년 국립발레단장 △1996∼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장 △현재 한예종 무용원 교수 △수상: 제1회 동아무용콩쿠르 금상(1962년), 제5회 동아일보 일민예술상 수상(2001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옥관장 서훈(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