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亞정당국제회의 참석차 방한 귄터 린셰 獨아데나워 재단 前총재
귄터 린셰 전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KAS) 총재는 “한국에 오면 우리 재단 장학금으로 독일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각계에서 활동하는 인사들과 만날 때가 가장 즐겁다”며 한국과의 오랜 인연을 강조했다. 김기현 기자 |
《“1999년 북한 이익대표부 직원들을 만나서 ‘세계화 시대’인데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면 안 된다고 충고했더니 ‘우리도 세계화에 발맞춰 외부세계의 원조를 받고 있다’고 대답하더군요.” 독일 집권 기민당이 세운 비영리재단인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KAS)’의 귄터 린셰 전 총재는 한반도와 인연이 깊다. 독일 하원의원(1965∼72년)과 유럽의회 의원(1979∼99년)을 지내는 동안 유럽의회 대표단을 이끌고 한국을 5차례나 방문했고 1998년 유럽의회 의원들의 북한 방문을 주도하기도 했다. KAS의 후원으로 7∼10일 서울에서 열린 제4차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린셰 전 총재를 10일 만났다. 그는 독일 통일의 경험에 비춰 최근 한반도 정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들려 줬다.》
―한국과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관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독일에서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사민당 정권 당시 미국과의 관계가 불편했으나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집권 후 다시 미국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독일에도 미국은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다. 슈뢰더 정권은 프랑스, 러시아와 손잡고 미국에 대항하려 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과의 관계만 훼손한 무모한 정책이었다. 한미 관계가 평등한 파트너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모든 것이 똑같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북한 인권과 대북 경제 지원을 둘러싼 논란이 많다.
“옛 동독 인권 상황도 심각했다. 당시 서독 정부는 ‘몸값’을 주고 동독의 정치범들을 데려왔다. 동독 당국은 돈을 더 뜯어내기 위해 무고한 시민도 잡아들였다. 서독으로 석방한 정치범 사이에 간첩도 섞어 보냈다. 하지만 서독 정부는 모르는 체하고 인권을 미끼로 한 터무니없는 요청도 들어줬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력은 옛 서독과 차이가 있고 무작정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기는 힘든 상황이다.
“알다시피 우리 재단의 명칭은 콘라트 아데나워 전 총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독일 통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와 긴 호흡’이라고 강조했다. 때로는 ‘통일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물론 우리도 실수가 있었다. 예를 들어 동독 지도자들이 ‘경제가 좋다’고 큰소리를 쳤고, 우리는 이를 믿고 동독 경제 상황을 낙관했다. 하지만 막상 통일을 하고 보니 동독 경제는 훨씬 나빴고 통일비용이 예상보다 너무 많이 들었다.”
―KAS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이달 말 독일로 초청해 메르켈 총리와의 면담을 주선한 배경은….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다. 박 전 대표와 유럽의 각계 인사를 만나게 해 주려는 것뿐이다. 나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교수 시절 당시 야당 의원이던 메르켈 총리에게 소개해 준 적이 있다. 두 사람이 최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 2위로 나란히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한국 정당들이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아데나워 재단을 모델로 꼽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정당이 세운 재단이지만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아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국민에게 민주주의를 교육하는 것이 가장 큰 활동이다. 저개발국의 정치 발전과 빈곤 퇴치도 지원한다. 장학금 지원도 하는데 우리 장학금을 받아 독일에서 유학한 한국인이 150여 명이다. 물론 정책연구소(싱크 탱크·think tank)로서의 역할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북한 관련 사업도 하는가.
“아시아 각국의 법학교수를 초청해 세미나를 여는데 지난해 태국 방콕에서 남북한 법학자의 만남을 주선했다. 매년 북한 기자들을 독일로 초청해 몇 주 동안 교육한다. 내년부터 북한 법대생의 독일 연수도 추진 중이다. 우리는 이런 작은 만남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고 본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그 밖에 한국이 참고로 삼아야 할 점이나 충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동독은 연방제 통일을 제안했으나 결국 서독으로 흡수됐다. 서독 주민들은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절대로 살 수 없다고 생각했고 경제력과 인구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일대일 통합도 안 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통일은) 강한 쪽이 자석처럼 끌어당길 수밖에 없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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