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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묘원 없애고 그 터에 나무 심는 前산림청장 / 이보식

淸潭 2010. 2. 10. 18:53

[초대석]가족묘원 없애고 그 터에 나무 심는 이보식 前산림청장




이보식 전 산림청장은 수목장조차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예 묘비 등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 팻말 등으로 살짝 표시만 해 두어 그마저도 세월이 지나면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대전=이기진 기자

“빈손으로 왔으니 흔적도 남기지 말고 빈손으로 가야지. 묘비, 분묘,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산림청장까지 지낸 사람이 죽은 뒤 산을 파헤치게 해서야 되겠어?”

지난달 30일 충남 금산군 금산읍 신대리 ‘2006금산세계인삼엑스포’ 조직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보식(69) 전 산림청장은 간편한 청색 티셔츠 차림의 편안한 모습이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두 차례 산림청장을 지낼 때의 엄격한 인상의 공직자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산림청장에서 물러난 뒤 그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충남 안면도에서 열린 안면도국제꽃박람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그 뒤 미국에서 2년여 살다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의 요청으로 다시 인삼엑스포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최근 충남 부여군에 있는 선산의 가족묘를 없애기로 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가족묘를 없앤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닐 텐데….

“선산 400여 평에는 조부모, 부모의 묘소 4기가 있다. 그리고 나와 내 동생 등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산림청장을 지낸 나까지 묘지로 국토를 잠식할 수는 없었다. 지난해 칠순 때 가족회의에서 묘지의 개념을 아예 없애자고 제안했다. 반대도 있었지만 결국 내 뜻이 받아들여졌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현재 조성돼 있는 봉분들을 없애고 나무를 심어 묘지인지 아닌지 구별되지 않게 할 것이다. 제사는 계속 지낸다. 가족들이 묘지 위치를 알고 있으니 그 자리에서 제사를 지내면 된다.”

―최근 친환경적 수목장(樹木葬)이 확산되는 추세인데 수목장과는 다른 것인가.

“같은 것이다. ‘수목장을 사랑하는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수목장도 폐단이 우려된다. 봉분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특정 나무 주변에 뿌리거나 매장하는 게 수목장인데 여기에 묘비 등을 세우면 또 다른 공해가 된다. 따라서 아예 묘비 등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 팻말 등으로 살짝 표시만 해두려고 한다. 세월이 지나면 이마저도 흔적이 사라져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봉분 조성과 제사 등 유교적 전통도 무시할 순 없는 것 아닌가.

“후손들에게 얼굴도 모르는 조상 묘에 제사를 지내게 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조상들의 삶을 전하는 것이다. 그것이 조상에 대한 진정한 예의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장묘제도에 대한 평소의 생각은….

“봉분제도에서 진일보한 게 납골당이고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수목장이다. 그러나 납골당에도 문제가 많다. 산속에 거대한 구조물을 짓는 것 자체가 문제다. 수목장도 권위의식이 발동되면 비싼 나무를 일부러 심고 호화스러운 묘비를 세우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무엇보다 사회지도층부터 아무런 흔적 없이 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전 청장은 산림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장기 기증을 서약했다. 그리고 신체는 의과대에 기증하기로 했다. 그래도 남는 부분(유골)은 산에 뿌려 달라고 자녀들에게 당부했다.

최근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평화의 숲’, ‘생명의 숲’ 고문 등에서도 이름을 빼 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다.

지구를 푸르게 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하면서도 서서히 빈손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22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충남 금산군 일원에서 열리는 2006 금산세계인삼엑스포의 사령탑을 맡았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사심 없이 일을 할 수 있다”며 “내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가족 묘지를 없애는 일에 주변 사람들을 동참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