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불교월보에 확장 이전 기사…출판-용품점 겸업
전국 불교서점 110여 곳 중 순수불교서점 단 두 곳뿐
|
조계종이 지난 10월 15일 조계사 앞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에 개원해 종단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불교전문서점. |
부처님 입멸 500년 뒤에 만들어진 경전은 주로 대량 제작과 유통을 통해 막 불붙기 시작한 대승불교운동을 널리 펼치려는 대승불교권에서 빠르게 전해졌다. 때문에 대승경전에서는 경전의 말미에 경전유통 공덕을 강조하는 대목을 볼 수 있다.
일례로 『금강경』에서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수지 독송한다면 그 사람은 이 경을 통하여 우선 부처님을 만나게 되고 또 수지 독송과 위타인설을 통하여 부처님과 둘이 아님을 이룩하게 되어, 결국 부처님처럼 모든 업보로부터 자유롭게 되나니 그 복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칠보를 남에게 베풀어 준 복덕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며 경전을 수지독송하고 유통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경전의 유통이 문자를 전제로 한 만큼, 이는 곧 출판의 역사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삼국시대에 불교를 수용한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에 이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만들어 냈을 정도로 출판의 역사가 오래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의미의 출판사는 뒤늦게 이 땅에 발을 디딘 가톨릭이나 개신교보다 한참이나 늦었다. 이에 따라 책을 보급하는 일을 맡아 할 ‘서점(書店)’ 역시 그 역사가 깊지 못하다.
불교출판물을 펴낸 출판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1912년 이능화의 『백교회통』을 펴낸 ‘조선불교월보사’로 보고 있으니, 늦어도 한참이나 늦은 셈이다. 물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간경도감이 있었고 조선 세조 때에도 경전을 한글로 출판한 기록이 있으나, 이때 출판 업무를 담당한 곳은 정부기관이었을 뿐이지 불교출판을 목적으로 한 출판사는 아니었다.
따라서 불교출판물을 펴낸 최초의 불교출판사를 조선불교월보사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910년대 출판사들은 대부분 잡지 발행이나, 불교용품점 등을 겸해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서점을 겸업한 곳이 있어, 이곳을 한국불교 최초의 불교서점으로 보고 있다.
장경호 설립 불서보급사 서점운영
‘불교서관(佛敎書館)’이 그 주인공이다.
1912년 2월 창간해 1913년 8월 제19호로 종간된 월간 잡지 「조선불교월보」는 종간호인 19호에서 ‘불교서관(佛敎書館)의 확장’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게재해 불교서점의 존재를 증거로 남겼다. 잡지는 이 기사에서 “경성 동부 이화동에 있는 이정용씨는 조선불교를 협심전진하기 위해 작년도에 경성 북부 대안동에 불교서관을 설립했고, 금년 5월에 본관을 중부 대사동 34통 5호로 이전하고 상해로 수백환금을 갖고가 불교에 당한 말회견서적급명화법첩(末會見書籍及名畵法帖)과 명향지물(名香紙物)을 차입해 대발매를 한다더라”고 쓰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불교서관은 1912년에 설립했고, 1913년 확장 이전하면서 중국 상해로부터 당시 필요한 불교서적과 이름난 그림 등을 수입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교서관이 1913년 만해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을 펴내면서 그 존재를 널리 알렸으나, 이미 1912년에 설립됐고 그 하는 일이 출판 뿐만 아니라 불교서적과 용품을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는 기록인 셈이다. 이는 또 현재 불교서점에 대한 기록 가운데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따라서 불교서관을 최초의 불교서점으로 보는 것이다.
불교서관 이외에도 불교서관의 역할을 기사화한 잡지 「조선불교월보」를 펴낸 조선불교월보사, 『귀원정종』을 펴낸 중앙포교원 등에서도 책을 펴냈으나, 이 책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당시 불교출판사가 대부분 영세해서 불교출판시장 역시 좁았고, 이로 인해 초판을 200부에서 300부 정도 인쇄했던 사정을 고려할 때 따로 서점을 낼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어렵게 만들어진 이 책들은 인연 따라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수준에서 보급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 첫 선을 보인 불교서점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때문에 서점의 모습은 당시의 이러한 불교출판 환경에서 유추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불교서점이 1912년 불교서관의 설립에서 시작된 데 비해 우리나라 근대서점은 1880년대 말 창업한 회동서관이 처음이다. 이어 1900년대 초 서적상으로 김상만서포, 주한영서포, 노익형책사 등이 있었고, 이들 서점은 이후 각각 광학서포, 중앙서관, 박문서관 등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됐다.
그리고 대동서시, 신구서림, 의진사, 옥호서관, 유일서관, 대한국민교육회, 황화서제, 보급서관, 수문서관, 동문사, 흥문관, 대한서림, 황성서적업조합 등이 근대서점으로 그 역할을 했다. 이들 초창기 근대서점은 각종 서적을 간행하고 판매하면서 문화발전에 기여했고, 서구의 신지식을 보급하며 신문화 운동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나라 근대서점에 대한 기록에서도 불교서점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불교서관 이외에도 일제강점기 동안에 서점업을 겸한 곳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그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초창기 불교서점의 또 다른 모습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1978년 설립 경서원도 출판 겸업
|
장경호 거사가 발원해 1968년 조계사 맞은 편에 문을 연 불서보급사. |
불교출판은 해방공간에서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1960년대 초 법보원이 설립되면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포교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석주 스님이 1961년 설립한 법보원은 『불교사전』을 간행한데 이어 『열반경』, 『육조단경』 등을 한글본으로 간행하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법보원의 활동에 자극 받은 선각자들의 용기가 더해져 1966년 원음각, 1968년 보련각과 불서보급사 등이 문을 열었다.
이들 출판사는 대부분 책을 펴내는 출판과 판매하는 서점을 겸업하면서 불서보급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불서보급사’다. 불서보급사는 산중의 한국불교가 대중 속으로 나오는 길은 불서를 보급해서 대중을 일깨우는 것에 있다고 주장해왔던 대원 장경호 거사의 발원으로 설립됐다. 때문에 장경호는 출판사와 인쇄소를 동시에 설립할 계획을 세웠었다. 이때 이종익 박사의 제자 중 심재열이 “서점을 겸하면 독자가 어떤 책을 선호하는지 파악할 수 있어서 불서보급에 더 좋을 것”이라며 인쇄소보다는 서점을 겸해서 출판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함에 따라 인쇄소 대신 서점이 문을 열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출판과 서점을 겸한 불서보급사가 탄생했다. 불교보급사는 당시 장경호의 발원이 컸던 만큼 규모도 적지 않았다. 종로 쪽에서 출판사와 서점을 겸한 장소를 찾다가 마땅한 곳을 발견하지 못한 이들은 조계사 앞에서 영어잡지를 보급하는 유피아이 건물 아래층에 세를 얻어 불서보급사 문을 열었다. 이 건물은 당시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었다. 불서보급사는 장경호에게 서점의 필요성을 제안해 인쇄소 대신 서점을 열도록 한 심재열이 출판기획과 원고 쓰는 일을 담당하면서 편집장의 직책을 맡았고, 전반적인 일은 장경호가 영입한 이종갑이 사위 박덕수에게 맡겼다.
불서보급사는 설립 후 해안 스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시작으로 불자들이 애송하는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을 한 권으로 묶은 『불자독송집』을 펴내 불자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탄허 스님이 감수한 『초발심자경문』까지 펴내며 독자층을 조금씩 넓혀갔으나, 1960년대 불서를 보급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결국 3년 뒤 심재열이 다른 곳으로 떠나면서 출판사업이 주춤해졌고, 1975년 장경호가 타계하면서 더 이상 출판 일을 계속하지 못하고 이종갑이 운영을 맡아 이름 그대로 불서를 보급하는 일에 전념하게 됐다. 말 그대로의 서점이 된 셈이다. 지금도 조계사 앞에는 주인과 장소가 바뀌긴 했으나, 불서보급사라는 이름의 불교용품점이 있어서 서점을 겸하고 있다.
불교서점은 이후 대부분 불교용품판매를 겸해 운영됐고, 서점의 역할에 충실한 곳은 지극히 한정돼 있었다. 그 가운데 불교출판과 서점을 겸한 대표적인 곳이 경서원이다. 서울 조계사 옆에 자리한 5~6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불서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곳은 조계사 못지 않은 오랜 도량과도 같다. 이규택 사장이 1978년 경서원이라는 출판사로 시작해 현재까지 출판하는 서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운주사 총판이 서점 확대에 기여
불교서점은 불교서적을 전문으로 공급하는 총판회사 운주사가 1989년 문을 열면서 전국적으로 늘어났다. 이철교씨가 정리한 한국불교관계논저 종합목록집에 따르면 해방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불교서적이 300여 종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4년 통계에서 불교전문서점이 109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니, 불교출판시장이 그만큼 확장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통계에서 전국의 서점이 모두 2328개였고, 이 가운데 기독교계 서점이 470개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이 사찰이나 불교용품점에서 함께 운영하는 불교서점 수 109개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수준이다. 운주사총판에 따르면 현재 크고 작은 불교서점은 모두 110여 개에 달하고 있으나, 이 중에서 순수하게 불교서적만 판매하는 서점은 조계종이 지난 10월 15일 조계사 앞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에 개점해 종단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불교전문서점’과 ‘경서원’ 단 두 곳 뿐이다.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불교출판 및 인쇄의 역사에 비해 불교서점의 현주소는 이처럼 초라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1027호 [2009년 12월 15일 1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