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수사모

서산 부석사와 검은여

淸潭 2009. 12. 13. 11:29

 

부석사

새벽에 서산으로 달리는 시외뻐스 창 넘어로 아침해가 보입니다.

아침해는 짖은연무를 헤집고 얼굴을 내 밀어 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2009년 마지막 달 12월 1일의 태양입니다.

전국적으로 안개가 끼어있다는 뉴스를 듣고 경치가 보일런지 걱정입니다.

태양은 연무를 뚫고 나왔다 다시 숨어 버립니다.

 

부석사

뻐스안에 붙여놓은 싸인을 보니 충청도임을 실감 할수있었읍니다.

승객들로 부터 거저 들려오는 대화속에 세종시 운운하면서 "그러니 멍청도지"하는

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더군요.

 

부석사

부석사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아직도 단풍이 남아있었읍니다.

 

부석사

부석사 사자문.

2006년에 세워젔으니 새문이라고 해야할것 같습니다.

 

부석사

사자문을 지나 극락전으로 가는 길.

 

부석사

위의 건물이 종우소인데 누워있는 소의 모양을 하고있다는군요.

그래서 그 아래서 나오는 약수는 우유약수라고 한답니다. 등산객이 약수를 받고있군요.

이 건물이 실제로는 부석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창건설화중에 의상대사와 연결되는 설화보다는 고려말 충신 유금헌이 낙향하여 별당을 짓고 글을 읽던

곳으로 후일 승려 적감이 절로 바꾸었다는 설이 옳을 것이라고 합니다.

 

부석사

건물배치도가 전형적인 절의 모습을 벗어나 있읍니다.

  

부석사

중앙에 부석사 현판이 있고.

 

부석사

 

부석사

그 좌측 옆방에 가장 뛰어난 인재를 배출한다는 의미의 '목룡장'이란 현판이 있고

 

부석사

우측 옆방에 지혜의 검을 찾는다라는 의미로 '심검당'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읍니다.

 

부석사

부석사의 중심 극락전.

부석사에는 대웅전은 없고 그대신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극락전이 있읍니다.

 

부석사

극락전은 앞마당이 없어서 두길 밑의 마당에 '안양루'를 지어놓고 행사가 있을 때에는 신도들이

좁은 법당에 다 들어 설수가 없어서 안양루에서 법회에 참석한다고.

  

부석사

산신님을 모신 산신각.

 

부석사

'선'을 중흥시킨 만공선사(1871-1946)가 기도했다는 만공토굴.

 

부석사

향나무가 극락전의 부처님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있으매 다른 나무들도 따라서 허리를 굽히고있읍니다.

 

부석사

절집에 걸려있는 가지말림타래가 정겹게 보입니다.

 

부석사

석탑 뒤 건물이 템풀스테이를 위하여 지어진 '정진선원'입니다.

산사의 수행과 생활을 체험하고 예불, 다도, 참선을 맛볼수있는 템풀스테이 공간이랍니다.

 

부석사

도비산을 향해 오르려면 영험하게 생긴 늙은 느티나무를 만납니다.

 

부석사

부석사를 돌아 도비산으로 가는데 산길을 따라 밤나무가 많이도 있더군요.

 

부석사

불과 351m 밖에 안되는 정상이지만 날씨만 좋았다면 드넓은 평야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 오는

경치 좋은 곳이라고 합니다..

멀리 검은여도 볼수있다고 했는데 아쉽읍니다.

 

부석사

아마츄어작가가 그린 연꽃이 무척이나 소박하고 정겨웁죠.

주경스님의 책 '미안하지만 다음 생에 계속 됩니다'가 눈에 띄더군요.

잠깐 소개글을 읽어 봅니다.

'생은 순환하는 것이고 내가 행한 선과 악은 끝내 내게로 다시 돌아 옵니다.

 삶이 전날에 이어 계속 되듯이 다음 생 역시 이생에 이어 연속 됩니다.

 오늘 만드는 삶이 다음 생에 만날 내 삶입니다.

 지금 당신의 의지와 노력이 인생과 내생을 바꿔놓을수도 있읍니다.'

 

부석사

낮 12시에 종을 울립니다.

점심 먹으라는 종소리인줄 몰랐어요.

된장 2kg을 사겠다고 했더니 점심식사하고 온 다음에 사 가라더군요.

하기야 손목 시계를 풀어놓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때를 알려주는 신호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석사

 

부석사

드넓은 천수만 B지구에는 가창오리들이 여기 저기 지천으로 날아 다니고 있었읍니다.

 

부석사

 

부석사

지금은 바다를 막아 육지로 만들어 놓았으니 신비할게 아무것도 없지만

천년전 과학문명이라고는 찾아 볼수 없었던 시절을 상상해 보세요.

드넓은 바다 한 복판에 검은 바위 한무리가 물위에 떠있다가 사라젔다 한다면 얼마나 신비로웠겠는가.

물론 간조에 의해서 였지만.

신비로움을 지나 두려움에 제사를 지냈겠지요.

지금은 다만 검은 바위에 붙어있는 흰 조개껍질만이 이곳이 바다 물속이었음을 알려주고있읍니다.

부석(뜰부 돌석), 부석마을이란 이름도 있고 부석사라는 절 이름도 이 바위에서 유래 했다고 합니다.

천수만 방조제로 신비성을 잃고 버려젔던 것을 뜻있는 사람들이 부석정이라는 정자도 짓고

비석도 세워 잊혀저감을 아쉬워하고 있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