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다 제도하였다
세존이 도솔천을 떠나지 않았는데 이미 왕궁에 태어났으며 아직 어머니의 모태에서 출생하기도 전에 사람들을 이미 다 제도하였다. 世尊未離兜率 已降王宮 未出母胎 度人已畢 세존미리도솔 이강왕궁 미출모태 도인이필 - 『화엄경』
두말할 것도 없이 불교는 세존이 탄생함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래서 선문의 화두공안(話頭公案)이라 하더라도 세존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순서이다. 세존의 이야기는 또한 탄생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상식이다. 그래서 불교를 거량하는 사람치고 이 문제를 한두 번 말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매우 유명한 화두공안이다. 또 이 문제에 대한 그 나름의 안목이 있어야 한다. 화엄경은 걸림이 없음으로써 그 종지를 삼는다[無礙爲宗]. “도골천을 떠나지 않았는데 이미 왕궁에 태어났다.”는 말은 공간에 걸림이 없음을 뜻한다. 걸림이 없는 화엄경의 눈으로 보면 도솔천과 카필라 성이 결코 멀리 떨어져 있는 곳도 아니고 한 도량이다. 또한 카필라 성과 서울이 한도량이며 도솔천과 서울이 한 도량이다. 뿐만 아니라 도리천, 야마천, 타화자재천, 미국, 중국, 유럽, 일본이 모두가 한 도량이다. 이 한 도량이 무슨 도량이며 어디에 있는 도량인가 하는 것은 독자들은 이미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그 동안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각각의 다른 도량들을 환히 다 볼 것이다. “어머니의 모태에서 출생하기도 전에 사람들을 이미 다 제도하였다.”는 말은 시간이 걸림이 없다는 뜻이다. 도량의 문제가 그렇듯이 시간의 문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무한한 과거의 시간이 지금의 이 한 순간에 존재하고, 무한한 미래가 또한 지금의 이 한 순간에 존재한다. 지금의 이 한 순간의 일념을 떠나서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걸림이 없다는 말은 시간이든 공간이든 모든 존재가 본연의 자리에서 서로 서로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어서, 낱낱이면서 전체이고 전체이면서 낱낱이 독립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걸림이 없다는 뜻이다. 하나와 많은 것이 걸림이 없고 많은 것과 하나가 또한 걸림이 없으며, 주체와 객체가 걸림이 없고 객체와 주체가 또한 걸림이 없다. 찰나가 영겁과 걸림이 없고 영겁이 찰나와 걸림이 없다. 그래서 도솔천과 왕궁이 다른 장소가 아니고, 모태에 있을 때와 성도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때가 같은 시간이다. 옛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끝없는 세계의 경계가 나와 너 사이에 털끝만큼의 사이가 없고, 10세(世) 고금(古今)의 처음과 끝이 한 생각을 여의지 않고 있다[無邊刹境自他 不隔於毫端 十世古今始終 不離於當念].” 걸림이 없는 데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본래부터 이미 다 그렇게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하고 그렇게 수용하면 사람의 삶도 또한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어 자유자재하다는 뜻이다. 천의회(天衣懷) 선사가 상당(上堂)하여 이야기를 들어 설법하였는데 한 번 살펴볼 만하다. “‘세존이 도솔천을 떠나지 않았는데 이미 왕궁에 태어났으며, 아직 어머니의 모태에서 출생하기도 전에 사람들을 이미 다 제도하였다.’라고 말한 것도 벌써 평지에서 사람을 구덩이에 빠뜨렸는데, 그 다음에 다시 녹야원에서부터 학림(鶴林)에서 열반에 들기까지 49년 동안 갖가지의 그물을 펼쳤으니 넝쿨이 돋아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본연의 자리에서 보면 성인이 출현하여 사람들을 가르치고 제도한다는 일이 모두 다 어줍지도 않은 일이다. 촌사람들의 일이며 하나마나한 일이다. 본래로 아무 일이 없다. 장애가 될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공연히 세상을 시끄럽게만 하였다는 뜻이다. 인생은 본래로 완전하고 걸릴 것이 없으며 자유와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화장장엄세계에 노닐고 있다는 이치를 ‘도솔천을 떠나지 않았는데 이미 왕궁에 태어났다.“는 등으로 함축하여 설하고 있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③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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