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수사모

5천 불제자 독경소리 천년 선맥을 깨우다

淸潭 2008. 10. 28. 20:11

5천 불제자 독경소리 천년 선맥을 깨우다
 
수덕사 대웅전 700주년 기념법회
기사등록일 [2008년 10월 28일 12:18 화요일]
 

“탁!”
맑은 목탁소리가 청명한 가을 하늘을 갈랐다. 그 소리는 대중들의 머리와 가슴 속을 파고들어 상념을 깨뜨렸다. 이윽고 1000여 명의 스님들과 4000여 명의 불자들이 입을 열었다. 5000여 불제자들의 간절한 발원과 어우러진 독경소리가 천년고찰 예산 수덕사의 하늘을 장엄했다. 덕숭산을 휘감은 독경소리는 다시 5000여 불제자들의 살갗 위로 귀로 가슴으로 전해져 60억 세포 하나하나를 일깨웠다. 덕숭산에 깃들어 내밀히 숨 쉬고 있는 뭇생명들의 무명을 일시에 걷어냈다. 잔잔한 진동이 온 대중을 전율케 했다.
이들이 염하는 경은 백제시대 때 수덕사에 머물렀던 고승 혜현 스님이 국태민안과 중생구제를 발원하며 설했다고 전해지는『법화경』「묘법연화경 여래수량품」. 과거 조상들에게 설해진 고승의 법문이 그로부터 10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동일한 장소에서 후손들의 목소리를 빌어 여법하게 재현되는 찰나였다.

멋스런 곡선과 단아함이 백미

“저희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온 누리 삼보리님께 귀의하오며 광대한 서원을 세우고 이제 법화경 여래수량품을 독송하옵니다. 바라옵건데 천하가 태평하고 국토가 안온하여 온 누리의 모든 이웃들이 다 맑고 밝은 지혜와 덕성 갖추어지게 해주옵소서. 또한 이 경전을 보는 이와 듣는 이들은 모두 보리심을 내어 온 누리의 중생들이 함께 성불하도록 하겠나이다.”

경허, 만공, 금오 스님으로 이어지는 선맥을 면면히 간직해 온 선지종찰 덕숭총림 수덕사(주지 옹산)가 10월 18일 대웅전 건립 700주년을 맞아 기념대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법회는 대웅전 700년 역사와 그 의미를 기리고자 1000여 스님과 사부대중이 중생구제의 간절한 발원으로 마음을 모으는 법화경 독경 법석으로 마련됐다.

막 단풍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하는 덕숭산을 배경으로, 이날 수덕사 대웅전은 법당 문을 완전히 개방한 채 불자들을 맞았다. 도량을 가득 메운 5000여 사부대중의 시선은 기나긴 세월, 무수한 중생들의 발원을 품어온 대웅전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부처님 전에 합장하고 몸을 낮춰 가족의 건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불자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고려시대 건립된 수덕사 대웅전은 건립연대가 알려진 목조문화재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 점을 둘째로 치더라도, 선조들의 숨결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여법한 장소라는 점에서 그 의미 또한 적지 않다. 또 배흘림기둥, 맞배지붕 등 백제로부터 이어져 온 멋스러운 곡선에 단청 칠 없는 목조의 단아한 아름다움까지 더해져, 세월의 향기가 묻어나는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종교를 떠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날 수덕사 주지 옹산 스님은 대회사를 통해 “간결하면서도 정교하고, 소박하면서도 당당한 대웅전은 세월의 깊이를 간직한 채 700년이라는 세월동안 민중의 애환을 보듬어 왔다”며 “700년의 역사를 기념하는 뜻 깊은 오늘, 흩어진 마음을 한데 모아 지극한 정성으로 법화경을 독송 하면 그 인연공덕으로 능히 일체중생이 편안해 질 것이니 마음속에 새로이 원을 세우라”고 당부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혜현 스님의 일화를 간략하게 전하며 법화경 독송의 공덕과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기렸다.
“백제시대 혜현 스님은 수덕사에 머물면서 오로지 법화경을 외우는 것을 과업으로 삼고 평생을 공부와 기도에 전념하셨습니다. 무리들이 청하면 강론하고 없으면 경을 외니, 사방에서 가르침을 청했다고 합니다. 스님이 번잡함을 싫어하여 깊은 산 속에서 수행하다 생을 마쳤는데, 그 유해는 호랑이가 먹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는 평생 법화경을 독송했던 스님의 혀만은 먹지 못하고 해골과 함께 남겨두었다고 전해집니다.”
지관 스님은 “이처럼 법화경 독송의 공덕은 실로 크다”며 “정성을 다해 독송에 임하라”고 설했다.

옛 선승들의 숨결이 온전히 살아 숨쉬는 현장에서 여법한 순간을 함께하고 있다는 감동 때문일까. 대웅전 앞에서부터 일주문까지 경내 도량을 가득 메운 채, 두 손 모아 법화경 책자를 펼쳐든 불제자들 사이로 묘한 흥분과 설렘이 전해졌다.

“그때 부처님께서 여러 보살들을 비롯한 일체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선납자들이여! 그대들은 마땅히 여래가 하는 진실한 말을 믿고 이해해야 하느니라….”

하나의 소리로 울려 퍼지는 5000여 불자들의 법화경 독송 소리는 울림 깊은 메아리가 되어 덕숭산 골골이 퍼졌다. 더러는 눈을 감고 귓가에 와 닿는 법화경을 음미했고, 더러는 감동에 젖어 눈시울을 붉혔다. 저마다 가슴에 품은 서원이 하나쯤은 있겠지만 법화경을 독송하는 순간만큼은 이곳에 모인 모든 불제자들의 발원은 국태민안과 중생구제, 그 하나로 모아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을 햇볕은 더욱 따갑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독경 소리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은 차분해지고 각양각색의 억양이 한 데 어우러져 웅장해져갔다.

밀짚모자를 눌러 쓴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과 각 교구본사의 주지 스님들을 비롯한 1000여 명의 스님들은 흐르는 땀과 더위에 지친 와중에도 단전 깊은 곳에서 끌어낸 사자후로 불자들의 목소리를 감쌌다.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국회의원도, 정부 관리도 그 장엄함에 압도 되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도 참석, 종교는 다르지만 합장하고 예의를 갖추며 백제시대 법석을 재현하는 독경 대열에 동참했다.

경허-만공-금호 스님 선맥 여전

“생전에 이런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 같아 새벽 3시부터 준비해서 왔다”는 서울의 김소영(52·호법정) 보살은 “시어머니도 편찮으시고, 일정도 맞지 않아 못 올 것 같았는데 부처님 뜻인지 인연이 닿아 참석하게 됐다”며 “대웅전이 저 자리를 지킨 지 70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많은 스님들과 함께 법화경 독송을 하니 눈물이 나더라”고 환희심 가득한 소감을 전했다.

5000 불제자들의 간절한 서원은 법화경 독송 소리와 함께 하늘과 땅,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알알이 새겨졌으리라. 쪽빛 하늘에 바람이 하늘거린다. 아니 5000 불제자들의 서원과 독경 소리가 일렁인다. 덕숭산 숲도 파도를 이루며 일렁인다.
 
예산 수덕사=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971호 [2008년 10월 28일 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