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고금 잇는 ‘선맥의 다리’
한국불교의 산증인 대웅전 700살 맞이 큰 잔치
충남 예산의 수덕사 대웅전이 700살을 맞았다.
잔치는 성대했다. 18일 수덕사에는 1000명의 스님, 4000여 명의 신도가 모였다. 대웅전 앞뜰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대웅전은 그 앞에 색 바랜 기둥과 서까래로 서 있었다. 700년, 그건 간단한 세월이 아니다. 이 땅의 불교 역사는 약 1700년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그중 700년에 대한 ‘산증인’인 것이다.
이날 수덕사의 수좌(首座) 설정(雪靖·68) 스님은 뜰을 가득 메운 사부대중을 향해 법어를 던졌다.
‘지명법사께서 산문을 연 곳(智明法師開門處) / 빈 덕숭산에 끝나지 않는 광장의 설법이어라(德崇山空廣長舌) / 종횡자재함을 그 누가 알 것인가(縱橫自在誰能識) / 한길 신령스런 빛이 고금을 비추더라(靈光一道古今曜).’
18일 충북 예산 수덕사에서 열린 ‘대웅전 700주년 기념대법회’에서 1000명의 스님, 4000여 명의 불자가 참석해 법화경을 독송했다 . [프리랜서 김성태] | |
1937년은 수덕사 대웅전에도, 만공(1871∼1946) 스님에게도 각별한 해였다. 그 해에 대웅전의 해체 보수 공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웅전이 ‘지대원년(至大元年·1308년)에 비로전으로 건립’됐다는 묵서가 보수공사 때 발견됐다. 이때부터 수덕사 대웅전은 ‘건립연도가 확실한 한국 최고(最古)의 목조건축물’이 된 것이다.
같은 해인 37년은 일제강점기였다. 그해 3월 11일, 조선 총독부에선 31본산 주지회의가 열렸다. 회의를 소집한 미나미 총독이 입을 뗐다. “조선 불교가 과거에 아무리 고유한 역사를 가졌다 하나 현재는 부패한 불교다. 전임 데라우치 총독의 뜻대로 일본 불교와 조선 불교를 합해야 한다.” ‘왜색 불교’로 조선 불교를 와해시키겠다는 의도였다.
그때 만공 스님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일갈했다. “청정(淸淨)이 본연커늘 어찌하여 산하대지(山河大地)가 나왔는가?”
그 말은 ‘본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산과 물은 어찌하여 생겼으며, 총독 너도 본래는 연꽃과 같은 깨끗한 성품이었는데 어디서 그런 못된 마음이 일어나서 한국 불교를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라는 준엄한 꾸짖음이었다.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했다고 한다.
다시 만공 스님은 크게 “할(喝)!”을 토한 뒤, “청정 비구 하나만 파계시켜도 무간 지옥에 떨어진다고 했다. 오늘부터 데라우치와 그 자손들을 위해 천도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본인은 물론 그 후손도 지옥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건 목숨을 내놓고서야 할 수 있는 ‘소리’였다. 당시 미나미 총독은 만공 스님의 고고한 위세에 오히려 탄복했다고 한다.
그처럼 수덕사 대웅전에는 역사의 무게가 한껏 얹혀 있었다. 그 앞에서 1000명의 스님, 또 4000 여명의 불자들이 『법화경』의 핵심이 담긴 ‘여래수량품’을 독송했다. 『법화경』은 석가모니가 열반 전에 설했다는 마지막 법문이다. 당시 하늘에선 ‘꽃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날 수덕사에도 꽃이 가득했다. 대웅전을 비롯한 경내 곳곳을 두 겹씩, 세 겹씩 감싸며 가을 국화가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그위로 『법화경』이 흘렀다.
이날 기념법회에 참석한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수덕사 대웅전이 700년이 됐다. 100년을 일곱 번 한다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며 “경허 선사, 만공 선사, 벽초 스님, 그리고 지난해 입적하신 방장 원담 스님까지 수덕사는 한국선의 정통맥을 이어오는 도량”이라고 말했다.
예산=백성호 기자
수덕사 주지 옹산 스님 “우리 일상에 자비의 꽃비가 내려야”
18일 수덕사에서 만난 주지 옹산(翁山·63·사진) 스님은 이어 ‘꽃’이야기를 꺼냈다. “해방 이튿날, 만공 스님은 떨어진 무궁화를 집어 들고 일필휘지(一筆揮之) 했죠. 바로 ‘세계일화(世界一花)’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실상세계에선 너와 나의 구별이 없다는 거죠. 인종과 민족, 국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다 마음이 하나라는 겁니다.”
이날 수덕사 경내도 ‘꽃밭’이었다. 곳곳에 핀 국화가 ‘수덕사의 가을’을 자아내고 있었다. 옹산 스님은 “차분하게 꽃을 들여다 보라”고 말했다.
“꽃은 아름다움을 주고, 향기를 주고, 맑음을 주죠. 부처님이 설하신 ‘자비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비행이 뭔가요. 남에게 향기를 주고, 마음을 주고, 사랑을 주라는 거죠.”
석가모니가 마지막 법문인 『법화경』을 설할 때도 ‘꽃비’가 내렸다고 한다. 옹산 스님은 “그게 바로 ‘자비의 꽃비, 사랑의 꽃비’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날마다 그런 ‘꽃비’가 내려야 합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