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법률상식

사법 60주년… 법조계가 뽑은 ‘시대를 바꾼 명판결’ 22건

淸潭 2008. 9. 26. 11:04
사법 60주년… 법조계가 뽑은 ‘시대를 바꾼 명판결’ 22건



■ 노동-환경 등 5개 분야 대상

남녀평등’에서 ‘국토개조’까지

‘축첩 불법무효’ ‘ 종중원으로 인정’ 여권신장에 기여

‘정리해고 4요건’ ‘공무상 재해 확대’ 일터 큰 파장


“남녀평등을 부인하던 구제도로서 그 차별을 가장 현저히 한 민법 제14조는 우리 사회 상태에 적합하지 아니하므로…동조에 의한 처의 능력 제한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바이다.”(처의 능력 제한 불인정·대법원 1947년 9월 2일 선고)

‘대한민국 사법 60주년’을 기념해 대법원과 대한변호사협회 등의 의견을 들은 결과 한국의 대표적인 명판결로 꼽힌 것 중 하나다. 법조계에서는 여성 노동 환경 정보통신 행정·조세·특허 등 5개 분야로 나눠 시대 흐름을 반영하고 사회 변화를 이끌어낸 판결로 22건을 꼽았다.

▽여권() 관련 판결 ‘격세지감’=‘처의 능력 제한 불인정’ 판결은 광복 이후 법적으로 남녀평등을 실현한 첫 판결이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축첩(·첩을 둠)’행위를 불법 무효로 규정하고, 임신을 못하는 것이 이혼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한 판결은 여성의 권리가 확대되는 토대가 됐다. 대법원은 1955년 10월 13일 “본처가 있는 사람이 다른 여자와 맺은 혼인예약은 우리나라의 일부일처 제도에 비춰 공서양속(·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에 위반되는 무효의 것”이라고 판결했다.

여성 전화교환원의 정년을 43세로 규정한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인사규정이 남녀차별에 해당돼 무효라고 한 판결도 여권 신장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정리해고 요건 확립=노동법 분야에서는 대법원이 1989년 5월 23일 정리해고의 요건을 확립한 판결이 대표적이다.

대법원은 당시 기업이 경영 사정에 의해 근로자를 해고할 경우, 해고하지 않으면 기업 경영이 위태로울 정도의 급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 등 이른바 ‘정리해고의 4요건’ 원칙을 확립했다.

한국에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최초로 문제된 것은 1988년 봄 대우조선 노사 갈등에서다. 노동쟁의가 장기화 대형화하자 사업주 측이 대응논리로 제기한 것이다.

대법원은 진해시의료보험조합 사건과 관련해 1992년 3월 27일 ‘무노동 부분임금 원칙’에 따라 판결을 내린 뒤 1995년 12월 21일에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선언했다.

▽환경 분야=최근에는 새만금 사건과 도롱뇽 사건 등 익숙한 사건들이 ‘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주목받았지만 1980년대만 해도 ‘환경’ 문제의 대명사는 ‘공해’였다.

이른바 ‘영남화학 공해사건’은 영남화학㈜의 울산 비료공장에서 배출된 유해가스로 인근 과수원 나무들이 말라죽은 데 대한 손해배상 사건이다.

대법원은 시설의 하자, 종업원 과실을 책임의 근거로 삼았던 종전 판결과 달리 “현대 과학의 모든 방법을 취해 손해 방지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해도 피고가 원고에게 가한 불법행위에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해 이후 계속된 공해 사건 판결의 시금석이 됐다.

▽행정·조세·특허 분야=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김모 씨가 주당 20시간의 정상수업 외에 주당 11시간의 추가수업 등을 해 오다 뇌출혈로 쓰러진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은 공무상 재해의 범위를 확립했다.

대법원은 “재해의 주된 원인이 공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직무상 과로가 질병의 주된 원인에 겹쳐 생기거나 악화되는 질병도 여기(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한편 진통제로 유명한 아스피린이 일반약품의 이름일 뿐 특정업체의 상표가 될 수 없다고 한 대법원 판결(1976년 6월 22일)로 독일 바이엘 측은 한국 아스피린 시장에서 독점권을 가질 수 없게 됐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