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때였다. 그는 가족관계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았다. “너무 절망해 오대산에 가서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죠.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정신을 잃었어요.” 깨어보니 월정사 객실이었다. 곁에 있던 노스님은 “자네는 다시 태어났네”라고 말했다. 그 길로 머리를 깎고 출가를 했다.
그런데 승가대학을 마치고, 선방을 돌며 계속 공부를 해도 ‘가슴 속의 절망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답답해 하던 마가 스님은 인도로 만행을 떠났다. 거기서 한국에서 온 한 노스님을 만났다.
“오랜 세월 선방에서 수행했다. 그러나 이 생에선 깨칠 수가 없다. 다음 생을 기약해야겠다”며 성지순례를 왔다는 노스님은 ‘미얀마’ 얘길 꺼냈다. “오는 길에 우연히 미얀마의 위파사나(남방불교의 수행법) 수행센터에서 석 달간 수행을 했다. 지금껏 맛보지 못했던 수행의 숨결을 느꼈다. 꼭 가보라.”
마가 스님은 그 길로 미얀마로 갔다. 잠시 들른 그곳에서 한 달 반을 지냈다. 그리고 99년에 다시 미얀마로 갔다. 이번에는 꼬박 6개월을 수행했다. 미얀마뿐만 아니다. 틱 낫한 스님의 프롬빌리지에도 가서 수행을 체험했다.
“그런 명상과 수행을 통해 ‘내 안의 절망감’이 녹더군요. 간화선(화두를 들고 참구하는 수행법)을 부정하진 않아요. 그러나 ‘마음공부’에는 다양한 메뉴가 필요하죠. 사람마다 취향과 체질이 다르듯이, ‘나에게 통하는 명상법’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한국의 선수행은 보리(깨달음) 위주의 수행법에만 치중합니다. 그런데 그 효과는 오리무중이죠. 간화선이 ‘최상승의 법’이라고 하지만 과연 몇 사람이나 깨달음을 증득했습니까.”
마가 스님은 중요한 건 수행이나 명상을 통해 ‘실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가’‘정말 내 안의 절망감이 씻겨지는가’라고 했다. 그래서 마가 스님의 명상법에는 ‘자비 명상’이란 이름표가 붙는다.
“자비의 마음이 없는 상태에선 백날, 천날 수행을 해도 관념의 상태로 흐를 뿐이죠. 조건 없이 주는 사랑. 그게 ‘박애’이고, 그게 ‘자비’죠.”
마가 스님은 그런 자비의 마음이 없는 게 ‘무자비’라고 했다. “수행하는 스님들이 보리(깨달음)만 좇는다는 생각에 날카로워지고, 오히려 더 무자비한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상대를 안는 게 아니라, 상대를 밀어내는 거죠. 자비의 마음이 없는 수행, 그건 주춧돌 없이 집을 짓는 격이죠.”
마가 스님은 그런 명상법을 쉽고 간결한 방식으로 풀었다. 그리고 ‘불교’라는 간판도, ‘기독교’라는 간판도 달지 않았다. 그냥 ‘내 마음 바로보기’라는 간판으로 캠퍼스의 학생들을 찾아갔다. “수업 시간에 종을 울리면 학생들의 마음이 ‘포즈(PAUSE·잠시 멈춤) 상태’가 되죠. 그때 ‘지금 이 순간’을 보게 하죠. 그걸 통해 내면을 바라보는 힘을 키웁니다. 젊었을 적, 제가 경험한 절망감에 학생들이 빠지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소중한 명상법, 수행법을 아낌없이 전해주고 싶어요.”
비단 대학 캠퍼스뿐만 아니다. 마가 스님은 기업체 연수, 명상을 통한 운동, 명상을 통한 ‘마음 찾는 여행’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자비명상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jurira)에서 프로그램 일정을 볼 수 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