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수사모

동산스님 30여장 사진 공개〈下〉[수덕사에 주석]

淸潭 2008. 9. 8. 13:12

만공스님 수행처 소림초당 모습을 다시 본다

근세불교 미공개 자료를 찾아서 ⑥

 동산스님 30여장 사진 공개〈下〉

 

덕숭총림 수덕사에 주석하는 동산(東山,94)스님이 본지를 통해 공개한 30여장의 근현대 불교사진은 어려웠던 시기에도 수행정진에 전념했던 스님들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동산스님이 공개한 사진을 본지 2456호에 이어 소개한다.

 

     

60년 전 수행 공간, 스님들 손수 보수 ‘눈길’

 울력중인 청년수좌 눈빛서 푸른 기상 엿보여

 전쟁후 괘불 모시고 법회…불교계 상황 짐작

 

○…동산스님이 공개한 사진 가운데는 60여 년 전 만공스님이 주석하던 수덕사 소림초당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장면이 들어 있다. 소림초당의 지붕을 보수하는 울력을 마친 뒤 벽초스님과 동산스님을 비롯한 10명의 대중이 기념촬영을 한 것이다.

초당 지붕위에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이 사진에 등장하는 스님들은 지붕위에서 비스듬히 눕거나 앉아있다. 또한 서 있는 스님들의 모습도 있다. 해방 전후의 어려운 시기에도 수행자의 초심을 잃지 않고 정진했던 ‘청년수좌’들의 기상을 엿볼 수 있다.

소림초당은 만공(滿空)스님이 “저 곳에 수행처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을 벽초스님이 받들어 지은 것이다. 지금도, 같은 위치에 소림초당이 자리하면서 수행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이 사진에는 만공스님이 1924년 세운 7.5m 높이의 미륵불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미륵불 옆에 자리한 향운각의 뒷모습도 숨결이 전해지는 듯 생생하다.

동산스님은 “벽초스님을 비롯한 대중들과 초당에서 울력을 한 후에 찍은 사진”이라면서 “벌써 6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밝혔다. 동산스님은 “1년에 한두번 스님들이 직접 초당의 지붕을 손질했다”면서 “해방 전에 촬영한 것”이라고 했다. 덕숭총림 수좌 설정스님은 “예전에는 대중들이 직접 초당 지붕을 보수하는 울력을 했다”면서 “어려운 시절에도 공동 울력으로 수행공간을 보수했던 스님들의 모습에서 ‘지금의 우리’를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설명> 만공스님이 정진하던 소림초당에서 울력을 마친 스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중간에 검은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동산스님과, 그 오른쪽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벽초스님 모습이 보인다. 1940년대 중반 촬영된 것이다. 사진제공=동산스님

벽초(碧超)스님은 만공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선(禪)과 농(農)이 둘이 아님을 손수 보여준 덕숭총림 제2대 방장이다. 1889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벽초스님은 탁발 온 만공스님을 따라 부친과 함께 출가했다. 스님은 법상(法床)에 오르는 것을 한사코 마다했으며, 방장 추대법회와 상당법어도 사양했다. 1986년 세수 88세, 법랍은 77세로 원적에 들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2월에 촬영한 사진도 공개됐다. 커다란 괘불을 걸고 찍은 사진에는 80여명의 스님과 불자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20여명이 넘는 비구니 스님들도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괘불을 모시고 법회를 봉행했다는 점은 당시 불교계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사진 하단에 ‘佛紀二千九百八十一年甲午二月(불기이천구백팔십일년갑오이월)’이라고 촬영 시기가 메모되어 있다.

○…동산스님이 공개한 사진에는 공주 마곡사 대중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마곡사 인근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이 사진에는 40여명의 대중이 등장한다. 북과 징을 들고 있는 인물도 보이며, 복장도 저마다 달라 울력이라기 보다는 야유회 나온 모습으로 추정된다. 사진 하단에 ‘19384/6’라는 메모가 있어 1930년대 후반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례적으로 ‘서기(西紀)’를 표기한 점에 대해서는 추후 검토가 필요하다.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 앞에 모인 송광사 대중들.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석두스님,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기산스님, 왼쪽에서 세 번째가 금당스님이다.

○…순천 송광사 강원에서 대교(大敎) 과정을 수료한 동산스님은 1940년대 초 당시 송광사에 주석하던 스님들의 모습이 있는 사진도 보관하고 있다. 보조국사 감로탑 앞에서 촬영한 이 사진에는 석두스님과 금당스님 등 당시 일제강점기 송광사에 주석하던 스님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울창한 산림으로 보아 한여름에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보조국사 지눌(知訥,1158~1210)은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한 고려시대 고승이다. 석두(石頭,1882~1954)스님은 효봉(曉峰)스님 은사로 송광사 삼일암에 주석했으며, 부도암에 선원을 개설했다. 금강산에서 출가한 석두스님은 남방으로 내려와 송광사, 순평암, 통영 미래사 등에 머물며 정진했다. 스님의 제자로는 효봉학눌(曉峰學訥).향봉향눌(香峰香訥).화봉유엽(華峰柳葉).계봉무아(溪峰無我).해봉석정(海峰石鼎).석봉인선(石峰仁善).은봉원광(隱峰圓光) 스님이 있다. 금당(錦堂,1899~1973)스님은 1899년에 태어나 열아홉 살 되던 해 송광사 천자암으로 출가했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송광사 주지 등의 소임을 보았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의 방화로 소실된 송광사 복원을 위해 노력했다.

동산스님의 은사 서호스님. 제산스님 제자로 만공스님 회상에서 정진했다.

○…동산스님은 은사 서호스님 사진도 소중히 보관해 왔다.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모습의 서호스님 사진은 세수 50세 무렵에 찍은 것이다. 동산스님은 “은사스님은 제산스님의 상좌로 만공스님 회상에서 공부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사진을 공개한 동산스님은 “앨범에 보관해 온 사진이 제법 많았는데, 이래저래 많이 없어지고 말았다”면서 “몇 장 남지 않은 사진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말했다.

동국대 겸임교수 정각스님(일산 원각사 주지)은 “동산스님이 공개한 30여장의 사진은 만공스님을 비롯한 근현대 선지식과 일제강점기 전후 불교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면서 “근세불교 자료에 대한 관심이 교계에 확산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에 사진을 공개한 동산스님은 1914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1929년 4월25일 예산 수덕사에서 윤서호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동산스님은 1939년 7월15일 철원 심원사 화산경원서 사교를 마쳤다. 이어 1941년 7월19일 순천 송광사에서 대교를 수료했다. 만공스님에게 보월스님 법제자로 인가 받은 스님은 예산 정혜사, 대전 심광사, 서산 천장암(지금은 천장사)의 주지를 역임하며 포교수행에 매진했으며, 현재는 수덕사에 주석하고 있다.

 수덕사=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불교신문 2458호/ 9월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