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 [50] YS의 '하나회 해체'
- 민간정부의 군 통제권 회복
1990년 1월 22일 민정(노태우), 민주(김영삼), 공화(김종필)의 '3당 합당'은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을 일시에 뒤집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오랜 야당 생활을 청산한 김영삼은 그해 4월 17일 노태우·김종필·박태준을 만나 "나 대통령 안 해! 이 군바리 부스러기들아"라며 자신에 대한 공작정치를 항의해 대통령의 사과를 받았다고 주장한다(노태우는 YS가 그런 적 없었다고 함).
김영삼은 1992년 12월의 대선에서 당선됐고, 193만표 차로 패한 김대중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1993년 2월 25일 김영삼이 제14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30여 년 만에 군(軍) 출신이 아닌 대통령의 정부가 들어섰다. 김영삼은 이를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정부를 '문민정부'라 불렀다. 3월 5일 육사 졸업식 때 대통령이 "올바른 길을 걸어온 군인에게 가야 할 영예가 상처를 입은 불행한 시절이 있었다"고 할 때만 해도, 그가 그렇게 빨리 칼을 빼 들 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3월 8일, 김영삼은 군의 핵심 요직을 맡고 있던 육군참모총장 김진영과 기무사령관 서완수를 전격 경질했다. 군 최강의 인맥이자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을 배출한 군내(軍內) 사조직 '하나회' 척결의 신호탄이었다. 다음날 김영삼은 청와대 회의에서 "모두 깜짝 놀랬제"라며 씩 웃었다. 비서관들은 "각하, 국민들이 얼떨떨해하고 있습니다"라면서도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영삼은 "전격적으로 숙정을 단행해야만 저들이 스스로를 규합할 시간을 주지 않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로부터 벌어진 대대적인 군내 물갈이로 취임 석 달 만에 무려 42개의 '별'이 떨어졌다. 12·12 관련 장성들을 예편시켜 하나회 해체의 절정을 이룬 5·24 숙군(肅軍) 때는, 대통령이 달아 줄 '별 계급장'이 모자라 국방부 간부들 옷에서 잠시 떼내 썼다고 한다.
- ▲ 1993년 2월 25일 국회 앞 광장에서 열린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손을 들어 박수에 답례하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 군 출신 대통령’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뒷자리에 앉아 있다. /조선일보 DB
김영삼의 군 개혁은 오랜 세월 동안 '절대 성역'으로 간주됐던 군부가 민간 정부에 의해 확실한 통제를 받게 된 대전환이었다. 당시 한양대 교수 리영희는 "DJ가 집권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무사(옛 보안사)의 대통령 독대와 대민 정보수집 부서를 폐지하는 등의 제도적 조치도 뒤따라 '군인의 정치화'가 차단됐다. 이후 군내 새로운 사조직 형성이 불가능해지게 되면서 쿠데타의 가능성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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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의 제14대 김영삼 대통령 취임식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다룬 대한뉴스 영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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