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수사모

수덕여관! 수덕사 품으로...

淸潭 2008. 7. 19. 11:05

수덕여관! 수덕사 품으로...

 

 

 

수덕여관 "작품 속으로"… 이응로·나혜석 화백 작품활동 하던 곳

충남 예산 수덕사 입구에서 일주문을 통과하면 바로 왼쪽에 나타나는 초가집 한 채가 바로 수덕여관이다.

한국 현대 미술계의 거장인 고암 이응로(1904~89년) 화백이 한때 작품 활동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인 나혜석(1896~1946년)이 5년간 머물렀던 '근대 미술의 현장'이기도 한 이곳은 이 화백의 부인 박귀희 여사가 2002년 세상을 떠난 뒤 방치돼 왔다. 그러나 여관 부지(300여 평) 소유주인 수덕사가 지난해 말 이 화백의 큰조카 이모(56.경기도 성남시)씨에게서 여관 건물(100여 평)을 사들였다. 매입 가격은 1억여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찰 측은 이 화백 유족들에게서 작품 10여 점을 구입, 여관에 전시 공간을 만들고 신도 등을 위한 템플스테이 장소로 활용키로 했다. 예산군도 올해 예산에 2억원을 편성, 방 12개와 부엌 등을 보수하고 진입로도 정비하기로 했다.



수덕사 관계자는 "군청과 함께 연말까지 여관 정비사업을 마무리해 수덕사와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수덕여관=1934년 이혼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수덕사에서 수행 중이던 친구 일엽 스님(1896~1971년)을 찾아왔던 나혜석이 말년을 보낸 곳이다. 나혜석은 당시 수덕사 조실 만공스님에게 출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스님은 "임자는 중 노릇할 사람이 아니야"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에 나혜석은 여관에 정착, 그림을 그리고 자신을 찾아오는 예술인들을 만나며 여생을 보냈다.

한국 최초의 신시(新詩) 여류시인인 일엽 스님이 출가하기 전 일본 명문가 자제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김모(84)씨도 14세 때 일본에서 건너와 이곳에서 처음 어머니를 만났다. 김씨는 그 후에도 어머니를 찾을 때마다 수덕여관에 묵었다.

이응로 화백은 40년대 초 선배 화가였던 나혜석을 만나면서 수덕여관과 인연을 맺었다. 이 화백은 44년 나혜석이 이곳을 떠나자 여관을 사들인 뒤 정착, 수덕사 부근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리다가 후배 여류화가인 박인경(81)씨와 함께 58년 프랑스로 떠났다.

그 후 여관은 이 화백의 본처인 박귀희씨가 운영했다. 이 화백은 67년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2년반 동안 옥고를 치른 뒤 몸을 추스르기 위해 69년 귀국, 2개월간 이곳에 머물며 뒤뜰 너럭바위 두 곳에 추상문자로 암각화 2점을 새겼다. 여관 현판도 이 화백이 직접 쓴 것이다.

89년 이 화백이 작고한 뒤 여관 소유권은 그의 장조카에게 넘어갔다. 충남도는 여관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 그해에 도(道) 기념물 103호로 지정했다. 하지만 사유재산이란 이유로 매년 지붕의 이엉만 교체했을 뿐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최근에는 노숙자 숙소나 청소년 탈선 장소 등으로 전락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지난해 12월 수덕여관을 '보존해야 할 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예산=김방현 기자 kbh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