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남을 존중하고
윗사람을 섬기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움과 편안함과 건강과 장수
이 네 가지 복이 더욱 자란다
- 『법구경』
‘삶이란 무엇인가?’
이 대 명제는 동서고금 철학의 제1 주제가 되었고 종교의 문턱을 넘는 첫 번째 관문이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큰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삶에는 우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속적인 삶이 있을 것이고 세속을 떠난 종교적인 삶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세속적인 삶이 가치 없거나 종교적인 삶이 거룩하다고 하는 이분법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담백한 마음으로 삶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세속적인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관계라고 본다. 가장 가깝게는 가족이 있고 가족을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 속에 중중무진의 인간관계가 벌어지는 것이 바로 삶의 근본이다. 이 삶의 근본이 좋게 시작되면 우리의 삶은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불편하고 미워하는 인간관계를 맺게 되면 모두가 불행해 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행복과 불행은 우리의 삶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일까?
세속 삶의 핵심은 인간관계
부처님 당시에 한 부부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부처님을 찾아뵈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 아이가 매우 단명(短命)해서 곧 죽을 거라는 것을 예견하신다. 아이의 부모는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아이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여쭙게 된다. 부모의 간절한 요청으로 죽음의 야차가 아이를 데리러 다가올 수 없도록 부처님을 위시하여 천신(天神)과 사문(沙門)들이 모여 밤을 지세우면서 아이를 위하여 경전을 외었다. 죽음의 야차는 부처님, 천신, 사문의 무리에 밀려서 아이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 죽음으로 데려갈 시간을 놓쳐서 아이는 죽음의 고비를 넘겼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수명장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아이는 별명으로 ‘아유왓다나’, 즉 ‘나이를 보시 받은 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 수행과 공덕을 쌓는 삶을 살았는데, 어릴 때의 아유왓다나를 익히 알고 있는 수행자들은 부처님께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에 대해서 질문하였고 부처님은 위의 게송을 말씀하셨다고 한다.
여기에서 수명장수라고 하는 매우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을 삶의 근본 욕망이라고 한다면, 부처님께서는 이 현실적인 욕망을 성취하는 방법 또한 매우 구체적인 내용으로 가르쳐주셨다. 다시 말하면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은 항상 남을 존중하고 덕이 높고 나이 많은 사람을 받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삶에 있어서 그 삶을 아름답게 연장해 가는 방법의 근원에 사람과의 관계를 첫 번째의 이유로 들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먼저 존경받을 수 있는 덕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 덕 높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일이야 말로 참다운 사람의 향기를 내뿜는 일이 될 것이다. 사람의 삶이 아귀다툼 같아서야 더불어 산다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서로를 존중함이 없는 우리의 삶으로는 수명연장 또한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속적인 삶이든 종교적인 삶이든 남을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삶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2년 전 삼소회(三笑會) 한국여성수도자의 일원으로 종교의 벽을 넘어서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종교 순례의 길에 올랐다. 한국에서 원불교 성지를 시작으로 19일간 세계의 종교를 두루 돌아보고서 내린 결론은 불교의 독창성이었다. 불교는 어떠한 조직이나 비호세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유일신의 권위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2500여 년을 지구상에 전해져 내려왔다. 신의 전지전능한 힘에 의존하는 종교 사상이 전 세계에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실에서, 불교는 분명 예외자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도의 작은 마을에서 2시간여를 기다려서 만나 뵌 달라이라마 성하는 우리들 여성 수도자에게 당부하셨다. “참으로 종교의 힘으로 세계평화를 성취하기를 바란다면 자신의 종교에 대한 신념은 자신의 내면세계에 굳게 간직하고, 남을 향하여서는 오직 끝없는 존경심만을 나타내도록 노력하라”고 하셨다.
겸손한 달라이라마의 가르침
황량한 인도 성지에서 달라이라마 성하께 받은 귀한 가르침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함께 참석한 16명의 여성수도자가 함께 공유할 수 있었던 소중한 말씀이었다. 그 분은 2시간 여 줄을 서서 기다리는 참배자들을 자신의 자리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자리에 다가가 맞이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허리를 굽혀 상대에게 키 높이를 맞추고서 하염없이 등을 어루만져줄 뿐이었다. 마치 종교의 순례 길에 오른 듯 묵묵히 걷고 또 걸으면서 모두를 위로하셨다. 그 분의 자기를 낮추고 다가서는 모습에서 참다운 종교인의 삶을 내 마음에 각인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자신의 신념을 너무나 집요하게 남에게 강요한다. 안으로 소중하게 간직하여 더욱 거룩하게 가다듬어가야 할 자신의 신념을 남을 향하여 강요한 나머지 모두가 상처투성이 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동일한 가치로 인정되어 핍박하는 자도 핍박당하는 자도 없는 참다운 평화를 구현할 수 있을 때, 모든 존재의 참다운 생명은 영원히 연장 되어지는 방법을 위의 게송에서 배울 수 있었다. 싸움과 멸시가 아닌 서로 존중하는 수명장수의 삶을 살도록 기원해 본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원심회 김장경 회장
956호 [2008-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