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수사모

만공스님께 건당, 70년만의 사진 외출

淸潭 2008. 2. 16. 15:55

만공스님께 건당, 70년만의 사진 외출

 

수범스님 선리연구원 기증과정서 공개


1930년대 후반 추정…석우.용성스님도 보여

“한국불교 전통 지키려는 큰스님 모습 반가워”

 

 



 

 

 

 

 

 

 

 

 

 

1930년 대 서울 선학원에서 열린 적음스님 입실건당 모습. 앞줄 왼쪽 세 번째부터 석우.적음.만공.용성.동암스님. 사진제공=한국불교선리연구원

 

 

선학원 이사장을 역임한 적음(寂音, 1900~1961)스님이 근현대 한국불교의 선맥을 부흥시킨 만공(滿空,1871~1946)스님에게 건당(建幢)하는 의식을 촬영한 사진이 공개됐다.

성남 안국선원 수범스님이 한국불교선리연구원(원장 법진스님)에 기증한 이 사진에는 석우(石牛, 1875~1948)스님과 용성(龍城, 1864~1940)스님 모습도 담겨있다. 수범스님은 “만공스님을 시봉한 은사 성오스님이 보관해 온 사진”이라고 밝혔다.

사진을 본 조계종 어장(魚丈) 동주스님은 “벽에 걸린 종이에 쓰인 ‘草夫堂(초부당) 寂音丈室(적음장실)’이란 글귀가 입실건당을 나타낸 것”이라면서 “사진 왼쪽 윗부분에 보이는 종이들은 ‘사실(師室)’로 태고보우 스님부터 만공스님 법사인 경허스님까지 역대조사 법명을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뒷편의 백지에는 ‘滿空大和尙嗣法弟子(만공대화상사법제자)’란 글귀가 세로로 쓰여 있어 건당 의식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용성스님은 1940년 2월24일(음력)에 입적했으며 상에 차려진 과일로 보아 1930년대 여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용성스님 증손상좌인 보광스님(동국대 교수)은 “안경 쓰고 계신 분이 용성스님”이라며 “스님께서 말년에 경전을 번역하면서 눈이 좋지 않다는 기록이 있는데, 안경 쓰신 모습은 드물다”고 말했다. 또한 스님들 앞의 상(床) 왼쪽 끝에는 당시에 매우 희귀했던 바나나가 공양물로 놓여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성수(원로의원).설정(덕숭총림 수좌).지안(승가대학원장).철산(내소사 봉래선원장).혜해(흥륜사 선원장).해월(전 동화사 강주)도 “처음 보는 귀중한 사진”이라면서 “일제 강점기에 조선불교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수행 정진한 어른들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적음스님은 1900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1924년 김천 직지사에서 제산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이어 1934년 조선중앙선리참구원 상무이사를 거쳐 선학원 3대(1942 ~1946).5대(1950~1960) 이사장을 지냈으며, 1955년 마곡사 주지를 지냈으며, 1961년 10월 선학원에서 입적했다. 당시 세수 61세, 법랍 37세였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스님은 “일제에 맞서 한국불교 전통을 수호하려고 노력했던 큰스님들의 모습이 70년 만에 빛을 보게 되어 기쁘다”면서 “이번 사진은 연구원에서 근현대 불교사진을 기증받는 과정에서 발굴됐다”고 말했다.

한편 전통적인 입실건당 의식은 대부분 사라졌으며, 남양주 봉선사와 신촌 봉원사에서 희미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적음스님 건당의식 사진은 근대불교사와 불교의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입실건당(入室建幢)=방장 혹은 조실스님과의 법거량을 거쳐 인가받고 법을 잇는 것을 말한다. 조실(祖室)에 들어갈 자격과 당간 지주에 법의 깃발을 올릴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는 의미이다. 법계법맥(法系法脈)과 종통종맥(宗統宗脈)을 이어 법을 잇는 입실제자에게는 법호(法號)와 장실(丈室) 칭호가 내려진다.



[불교신문 2402호/ 2월20일자]

2008-02-16 오전 10:15:48 /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