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우리의옛것

세시풍속 (7월~12월)

淸潭 2008. 2. 9. 20:44

세시풍속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7 월 의 세 시 풍 속


백중놀이:작두말타기



















백중 ------------------------------------------------------------

음력 7월15일로 백종, 중원 또는 망혼일이라고도 한다. 백종은, 이 무렵에 과실과 채소가 많이 나 옛날에는 백 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 해서 유래된 명칭이다. 중원은 도가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도교에서는 천상의 선관이 일년에 세 번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데 그 때를 '원'이라고 한다. 1월15일을 '상원' 10월15일을 '하원'이라고 하며 7월15일의 '중원'과 함께 '삼원'이라 해서 초제를 지내는 풍속이 있었다.

망혼일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날 망친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술, 음식, 과일을 차려놓고 천신(그 해 새로난 과일이나 농산물을 신에게 먼저 올리는 일)을 한 데 있다. 불가에서는 불제자 목련이 그의 어머니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7월15일에 오미백과를 공양했다는 고사에 따라 우란분회를 열어 공양하는 풍속이 있다.

백중이 되면 여러 행사가 있어 왔다. 우선 각 가정에서 익은 과일을 따서 조상의 사당에 천신을 올린 다음에 먹는 천신차례를 지냈으며 옛날에는 종묘에 이른 벼를 베어 천신을 드리는 일도 있었다.

농가에서는 백중날이 되면 머슴을 하루 쉬게 하고 돈을 준다. 머슴들은 그 돈으로 장에 가서 술도 마시고 음식을 사먹고 물건도 산다. 그래서 '백중장'이란 말이 생기게 되었다. 백중장은 장꾼들이 많고 구매가 많은 장이다. 취흥에 젖은 농군들은 농악을 치면서 하루를 즐기기도 하고 때로는 씨름판이 벌어지며 장터에는 흥행단이 들어와서 활기를 띠기도 한다. 이러한 백중 명절은 중부 이남지방이 성대하다.

또한 이 날은 그 해에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의 머슴을 뽑아 소에 태워 마을을 돌며 위로하며 논다. 이것은 바쁜 농사를 끝내고 하는 농군의 잔치로서 이것을 '호미씻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일손을 쉬지 않고 바다에 나가 일을 더 많이 한다. 백중날에 살진 해산물들이 많이 잡힌다고 하며 밤에는 횃불을 들고 늦도록 해산물을 따기도 한다. 한라산에는 '백중와살'이라는 산신이 있어 백중을 고비로 익은 오곡과 산과일울 사람들이 따가면 허전하여 샘을 내고 바람을 일으킨다고 해서 산신제를 지내는 일도 있다.

신라 때에는 백중을 기해서 삼삼기가 시작되었다. 도성 안의 부녀자를 두 파로 나누고 공주로 하여금 각 파를 이끌어 한 달 동안 삼을 삼아 8월 가윗날에 그 성적을 심사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 한턱 내도록 하는 것이다. 백중 무렵이 되면 삼이 자라서 그 껍질을 벗기기에 알맞게 익은 때이므로 직조작업을 권장하는 뜻에서 왕녀를 주축으로하여 집단작업인 두레 삼삼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칠석 ----------------------------------------------------------

음력 7월7일도 세시명절의 하나이다. 각 가정에서는 밀전병과 햇과일을 차려놓고 부인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의 장수와 집안의 평안을 빈다. 또 처녀들은 별을 보며 바느질 솜씨가 좋게 해달라고 기원하는데 장독대 위에다 정화수를 떠놓은 다음 그 위에 고운 재를 평평하게 담은 쟁반을 올려놓고 다음날 재 위에 무엇이 지나간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있어 바느질 솜씨가 좋아진다고 믿는 것이다.

또, 이북지방에서는 이날 크게 고사를 지내거나 밭에 나가 풍작을 비는 밭제를 지내기도 한다. 이날 저녁은 견우와 직녀가 1년만에 만나는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남녀의 사랑이 얽힌 전설이 있기에 남녀상사의 애정시나 설화에도 칠석과 관련된 것이 많다. 음력7월이면 아직 더위가 좀 남아 있지만 여름은 기가 꺽여 갈 때이다. 북두칠성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비단결 같은 은하수는 쏟아질 듯 화려하다. 그 동쪽에 수줍은 듯 희미하게 비치는 직녀성, 서쪽은 남성적인 눈이 찬란하게 빛나는 견우성이 서로 마주보며 마치 정겨워하는 것과도 같다. 여기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이 전설을 만들어낸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이 날은 바느질 솜씨를 비는 풍속과 아울러 마을 서낭당에 가서 자녀의 무병과 수명을 빌기도 하며 의복이나 책을 모두 볕에 쬐어서 거풍을 하여야 한다. 이처럼 책과 관련된 날이므로 글공부하는 서당 소년들은 칠석날 별을 보며 시를 짓거나 공부를 잘하게 해달라고 비는 풍속도 있다.

이 날 절식은 대개 여름 음식 그대로지만 밀국수와 밀전병은 반드시 상에 오른다. 왜냐하면 이 날이 지나고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밀가루 음식은 이미 들어가버리는 까닭에 이 때가 마지막 밀음식 향연이 되는 셈이다. 이후부터는 밀가루 음식은 철이 지난 것으로 밀냄새가 난다고 한다. 생선은 넙치가 제철이며 나물은 취, 고비 등이 입맛을 돋우고 떡은 이날을 전후하여 증편이 점차 사라지며 계피떡이 서서히 등장한다.

한편 중부지방의 무속에 칠석맞이라는 것이 있다. 단골무당에게 자녀의 무사성장의 기원을 부탁 했던 부인들이 자녀의 수양어머니인 단골무당을 이날 찾아간다.

칠석요 ---------------------------------------------------------

칠석날 부르는 민요로 단오를 비롯해서 추석, 삼짇날 등 명절날 부르는 노래 중 하나이며 종류도 많고 질도 뛰어나다. 대표적인 노래는 다음과 같다.

칠월칠석 오늘밤은 은하수 오작교에
견우직녀 일년만에 서로반겨 만날세라
애야애야 애야좋네 칠석놀이 좀더좋네
(후렴)
까치까치 까막까치 어서빨리 날라와서
은하수에 다리놓아 견우직녀 상봉시켜
일년동안 맛본설움 만단설화 하게하소
(후렴)
닭아닭아 우지말아 네가울면 날이새고
날이새면 임은간다 이제다시 이별하면
일년삼백육십일에 임그리워 어이살지
우지말아 우지말아 무정하게 우지말아
원수로다 원수로다 은하수가 원수로다

이 노래는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에 한 번 만난다는 전설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기다림의 괴로움과 하룻밤 만났다가 다시 헤어지는 아쉬움을 잘 나타내고 있다. 4·4조 음수율과 반복형식의 율격은 음영민요의 전통적 기본율격을 이루고 있으며 불행을 운명으로 돌리는 내용은 한국적인 전통적 정한을 잘 대변하고 있다.

 

 

8 월 의 세 시 풍 속



추석 무렵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익은 곡식을 한줌 베어다가 안방이나 중방에 걸어 놓고 다음해의 풍년을 기원한다.









 







거북놀이 

 

 

 

 

 


강강술래 

 

 

 

 

 

 


가마싸움 

 

 

 

 

 

 

 
소싸움 

 

 

 

 


송편 

 

 

 

 

추석---------------------------------------------------------

추석은 우리나라 대표적 명절의 하나로 음력 8월15일이며 한가위 또는 중추절이라고도 한다.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서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므로 속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 이라는 말이 생겼다. 추석을 명절로 삼은 것은 삼국시대 초기였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에 도읍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가 각각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 한가위날까지 한달 동안 두레 삼삼기를 하다가 마지막 날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 턱을 내고 <회소곡>을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오랜 전통이 있는 추석 명절에는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세시풍속으로 전승되고 있다.

추석이 되면 아침저녁으로 기후가 쌀쌀해지므로 사람들은 여름옷에서 가을옷으로 갈아입는다. 추석에 입는 새옷을 추석빔이라고 한다. 옛날 머슴을 두고 농사짓는 가정에서는 머슴들까지도 추석 때에는 새로 옷을 한벌씩 해준다. 추석날 아침 일찍 일어나 첫 번째 일은 차례지내는 일이다. 이 때에 설날과는 달리 흰 떡국 대신 햅쌀로 밥을 짓고 햅쌀로 술을 빚고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는 것이 상례이다. 차례가 끝나면 차례에 올렸던 음식으로 온 가족이 음복을 한다. 아침식사를 마치면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는데, 추석에 앞서 낫을 갈아 산소에 가서 풀을 깎는 벌초를 한다. 여름 동안 자란 풀이 무성하고 시들어 산불이라도 나면 무덤이 타게 되므로 미리 풀을 베어주는 것이다. 어쩌다 추석이 되어도 벌초를 하지 않은 무덤은 자손이 없어 임자 없는 무덤이거나 자손이 있어도 불효하여 조상의 무덤을 돌보지 않는 경우여서 남의 웃음거리가 된다. 

 

추석놀이-------------------------------------------------

소놀이·거북놀이

소놀이는 두 사람이 멍석을 쓰고 앞사람은 방망이를 두 개 들어 뿔로 삼고, 뒷사람은 새끼줄을 늘어뜨려 꼬리를 삼아 농악대를 앞세우고 이집 저집 찾아다니며 노는 놀이다. 일행을 맞이하는 집에서는 많은 음식을 차려 일행을 대접한다. 마당에서 술상을 벌이고 풍물을 치고 춤을 추면서 한때를 즐긴다. 이 때에 소도 춤을 추는 시늉을 하면 사람들은 웃고 놀리고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소놀이할 때에 마을에서 일을 잘하는 머슴을 뽑아 농우에 태워서 마을을 누비고 다니는 일도 있다. 여름 동안 수고가 많았으므로 위로하는 것이고 영광을 안겨주는 일이 된다. 상머슴으로 뽑히면 일을 잘하였기 때문에 다음해에 많은 사경을 받게 된다.
거북놀이는 두 사람이 둥근 멍석을 쓰고 앉아 머리와 꼬리를 만들어 거북이 시늉을 하고 느린 걸음으로 움직인다. 사람들은 거북이를 앞세우고 큰 집을 찾아가 "바다에서 거북이가 왔는데 목이 마르다"면서 음식을 청하고 들어가면 주인은 음식은 내어 일행을 대접한다. 놀이는 소놀이와 비슷하다. 한 집에서 잘 먹고 난 다음 다른 집을 찾아간다. 이때에 얻은 음식을 가난해서 추석음식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일도 있어 협동과 공생의 의식을 보이기도 한다. 소놀이와 거북놀이는 충청도, 경기도, 황해도 등에 전승되고 있다.

강강술래놀이

추석날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달이 솟을 무렵 젊은 부녀자들이 넓은 마당이나 잔디밭에 모여 손과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뛰고 춤춘다. 노래는 처음에는 진양조로 느리게 부르다가 차츰 빨라져서 나중에는 마구 뛰게 된다. 노래 장단에 따라 춤 동작이 정해지게 된다. 강강술래 놀이는 원무를 하는 외에 여러 놀이가 첨가되어 다양하게 전개되는 수도 있다. 손을 잡고 일렬로 서서 맨 앞에 있는 사람이 다음 사람의 팔 밑으로 꿰어가는 고사리꺾기, 일렬로 서서 맨 끝에 있는 사람이 맨 앞에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면서 몇 번이고 도는 대로 한 덩어리로 뭉치게 되는 덕석몰이, 원을 그리면서 춤추는 중앙에 한 사람 혹은 두세 사람이 뛰어들어가 두 손을 내두르며 뛰고 춤추는 남생이놀이,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마주서서 문을 만들면 다른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열을 서고 허리를 구부려 일렬로 문 밑을 빠져나갈 때 손을 내려서 걸리는 사람이 문지기가 되고 문지기를 하던 사람은 맨 앞에 가서 서는 놀이도 있다. 놀이방법이 변함에 따라 불려지는 노래의 가사도 달라진다. 이 놀이는 일설에는 이순신이 창안하였다고 하나, 원시시대에 1년 중에서 가장 밝은 만월을 맞이하여 놀이하던 원무를 이순신이 의병술로 채택해서 임진왜란 때 왜군을 격퇴하는 데 썼던 것으로 해석된다.

가마싸움·원놀이

옛날에 서당에서는 추석때 훈장이 차례를 지내기 위해 집으로 가기 때문에 추석명절 동안에는 공부를 며칠 쉬게 된다. 모처럼 글공부에서 해방된 학동들은 모여서 여러 가지 놀이를 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가마싸움과 원놀이이다.
학동들이 모여 나무로 가마를 만들어 바퀴를 달고 이웃 마을의 서당과 경기를 한다. 서로 가마를 가지고 넓은 마당에 모여 가마를 끌고 뛰어나와 상대편 가마와 부딪치게 된다. 몇 번을 되풀이하면 가마가 망가지게 되는데, 먼저 망가진 편이 지고 아무리 부딪쳐도 가마가 성하면 이기게 된다. 평상시 앉아서 글만 읽던 학동들에 있어서는 활달한 놀이였다.
원놀이 역시 훈장이 없는 사이에 학동들에 의해서 행해진다. 글을 잘 읽고 오래 배웠으며 재치 있는 사람을 뽑아 원님으로 하고 학동 중에서 소송을 하는 사람과 소송을 당하는 사람으로 나누어 원님이 판관이 되어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놀이로 오늘날의 모의재판과 같은 것이다.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해서 관원이 되면 판관으로 민원을 처리하고 백성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사리를 따져 정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 예행연습을 원놀이에서 미리 하였던 것이다. 소송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여 판관이 좀처럼 판결하기 어렵도록 한다. 그러나 가부간에 판관으로서는 판결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지혜를 짜내어 판단을 하여야 하였다. 원놀이는 서당의 학동으로서 품위 있고 학술연마도 되며 지혜를 연마하기에 알맞은 놀이였다.

닭싸움·소싸움

싸움을 잘하는 수탉을 길러서 싸움을 시키는데, 수탉의 힘이 세지라고 고기를 먹이는 일도 있다. 닭이 싸울 때에는 부리로 상대 닭을 찍고 물고 늘어지는데 볏에 유혈이 낭자한데도 지지 않으려고 전력을 다한다. 서로 찍으려고 몸을 부딪히고 높이 뛰어서 상대의 볏을 노린다. 닭싸움에 지면 그 집 마당에 놀러 가지도 못하고 암탉도 뺏기기 때문에 사투를 한다.
소싸움은 넓고 튼튼한 우리를 만들고 황소의 고삐를 풀어 두 마리를 넣어두면 싸움이 시작된다. 서로 노려보다가 앞발로 땅을 긁어 흙을 파헤치면 성낸 표시가 되고 서로 머리를 대고 비비고 뿔로 받고 밀치고 한다.힘과 끈기와 투지의 대결로 한없이 밀리거나 뿔로 심하게 받혀서 부상을 당하면 도망치는데 하나가 도망하면 승부가 난다.

 

추석절식------------------------------------------------

송편

추석떡으로는 송편을 빼놓을 수 없다 올벼로 만든 송편이라 해서 올벼송편이라는 말이 생겼다. 송편 속에도 콩, 팥, 밤, 대추 등을 넣는데 모두 햇것으로 한다. 열나흗날 저녁 밝은 달을 보면서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만드는데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예쁜 배우자를 만나고 잘못 만들면 못생긴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고 해서 처녀, 총각들은 예쁘게 만들려고 솜씨를 보인다. 또 태중인 부인이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할 때에는 송편 속에 바늘이나 솔잎을 가로넣고 찐 다음 한쪽을 깨물어서 바늘의 귀쪽이나 솔잎의 붙은 곳을 깨물면 딸을 낳고 바늘의 뾰족한 곳이나 솔잎의 끝쪽을 깨물면 아들을 낳을 징조라고 점을 치는 일도 있다.

백주·황계

제사를 지내려면 술이 꼭 있어야 하는데 추석 술은 백주라고 하며 햅쌀로 빚기 때문에 신도주라고도 한다. 술을 많이 준비하여야 이웃 사이에 서로 청하여 나누어 마시고 소놀이패, 거북놀이패 들이 찾아왔을 때 일행을 후하게 대접할 수가 있었다.
봄에 깬 병아리를 기르면 추석 때에는 성숙해서 잡아먹기에 알맞다. 명절에 맞추어 길렀다가 추석에 잡아서 쓰게 된다. 또 옛날에는 명절에 어른에게 선사하는 데 닭을 많이 썼다. 친정에 근친하는 딸이 닭이나 달걀꾸러미를 가지고 갔으며 경사가 있을 때에도 닭을 선사하였으며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손쉬운 닭을 잡아 대접하였다. 사위가 오면 장모가 씨암탉을 잡아 대접하는 것이 그 예이다. 추석에 백주와 황계는 좋은 술과 안주였다.

 

 

 

 9 월 의 세 시 풍 속

 


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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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9월9일로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중양은 양이 겹쳤다는 뜻으로 양수인 홀수가 겹친 3월3일, 5월5일, 7월7일도 다 중양이 될 수 있겠으나 중양이라고 하면 중구를 가리킨다. 중구는 음양철학적인 중일명절의 한 대표적인 명절이었다.

중국에서는 한대 이래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상국(賞菊), 등고(登高), 시주(時酒)로 즐겨온 날이었다. 당송대에도 관리들의 휴가일로서 추석보다도 훨씬 성대한 명절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부터 안압지 임해전이나 월상루에서 군신이 중구에 연례적으로 모여서 시가를 즐긴 듯하다. 고려시대에는 중구의 향연을 국가적으로 정례화하였다. 내외신하들과 송나라, 탐라, 흑수의 외객들까지 그 축하연에 참석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다시 세종 때에 중삼, 중구를 명절로 공인하고 성종 때에는 추석에 지내던 기로연을 중구로 바꾸어서 지내었다.

또한 성균관 유생들에게 시험 보이던 절일제도 인일(1월7일), 중삼, 칠석, 중구에 보였다. 여기에서 특히 추석에 지내던 기로연을 중구로 바꾸었다는 사례는 상징적이다. 그만큼 관과 상층에서는 음양철학적인 경향을 많이 띠었고 그것은 보름명절보다 중일명절을 크게 쳤다는 것에서 선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중구 명절 때에는 벼수확과 목화따기 및 콩, 팥, 조, 수수, 깨, 고구마, 감자에 무, 배추 등 김장채소 거두기까지도 겹치는 농번기였으므로 명절로 즐길 겨를이 없는 때였다. 그래서 최남선도 "중구는 어디까지든지 궁정 또는 선비들 같은 특수계급의 절일에 그친 것이얏다"고 못박고 있다. 중구가 단풍이 곱게 물둘고 등고와 상국에 알맞은 계절임은 분명하여 지금도 이 무렵에는 단풍구경꾼이 매우 많다.  

 

등고(登高)-----------------------------------------------------------

9월9일을 전후해서 높은 산에 오르는 풍속으로 <동국세시기>와 <경도잡지>에 기록되어 있다. 등고란 높은 곳에 올라간다는 뜻으로 "서울 풍속에 남산이나 북악산에 올라가서 마시고 먹고 하루를 즐긴다. 이것은 등고의 옛풍습에 따른 것이다. 청운동의 청풍계, 후조당, 남한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등이 단풍이 좋아서 구경을 간다"고 했다. 중구 무렵이면 단풍의 계절이라 단풍을 감상하기 위해서 먼곳까지 찾아 등고하고 소요하였으니 지금의 소풍으로 이어진다. 옛날 선비들은 자연을 완상하기를 즐겨해서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고 한 때만 즐길 수 있는 시기를 포착해서 즐기는 풍류가 있었다. 서울 근교에는 경치가 뛰어난 산과 계곡이 많아 일부러 날을 잡아 뜻있는 사람들끼리 떼를 지어 등고하는 관습이 있었다.

 

한로 ---------------------------------------------------------------

24절기의 하나로 추분과 상강 사이에 들며 음력으로는 9월, 양력으로는 10월8일경이다. 공기가 점점 차가와지고 말뜻 그대로 찬이슬이 맺힌다. 세시명절인 중양절과 비슷한 때이다. 한로를 전후하여 국화전을 지지고 국화술을 담그며 온갖 모임이나 놀이가 성행한다. 한편, 이무렵 머리에 수유를 꽂거나 높은 데 올라가 고향을 바라본다든지 하는 내용이 한시에 자주 나타난다. 두보의 시에 "내년 이 모임에 누가 건재할지 아는가, 얼근히 취한 눈으로 수유를 쥐고 자세히 들여다보네"라는 시가 유명하다. 이무렵 높은 산에 올라가 수유열매를 머리에 꽂으면 잡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는데 이는 수유열매가 붉은색 벽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국화전------------------------------------------------------------

<동국세시기>와 <농가월령가>에 9월9일 화전이 기록되어 있다. "빛이 누런 국화를 따다가 찹쌀떡을 만든다. 방법은 3월 삼짇날의 진달래 화전 만드는 방법과같다"고 하였다. 국화꽃은 색깔이 고와 화전을 하면 보기도 좋거니와 향기가 있어 매우 운치있는 음식이 된다.

 

 

10 월 의 세 시 풍 속

 


입동(立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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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의 하나로 상강과 소설 사이에 들며 음력 10월, 양력 11월8일 경이다.

입동을 특별히 절일로 여기지는 않지만 우리의 겨울생활과 상당히 밀점한 관계에 있다. 입 동을 기준으로 김장을 하기 때문이다. 김장은 입동 전 혹은 입동 직후에 해야 제맛이 난다. 입동이 지난 지가 오래면 얼어붙고 싱싱한 재료가 없으며 일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이 때만 되면 냇가에서 부녀자들의 무, 배추 씻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입동의 날씨를 보아 그 해 날씨를 점친다. 즉, 입동날 추우면 그 해 겨 울은 몹시 춥다고 한다. 경상남도 도서 지방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온다고 하며, 밀 양 지방에서는 갈가마귀의 배에 흰색 부분이 보이면 이듬해 목화가 잘 된다고 한다. 제주도 에서는 입동날씨점을 본다. 즉, 입동에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 해 바람이 독하다고 한 다. 전국적으로는 10월10일에서 30일 사이에 고사를 지낸다. 그 해의 새 곡식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토광, 터줏단지, 씨나락섬에 가져다 놓았다가 먹고 애쓴 소에게도 가져다 주며 이웃 집과도 나누어 먹는다.  

 소설(小雪)-----------------------------------------------------------

24절기의 하나로 입동과 대설 사이에 들며 음력 10월, 양력 11월22일이나 23일 경이다. 이 때부터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 기운이 든다고도 하지만 아직 따뜻 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쬐어 소춘(小春)이라고도 불린다.

소설 무렵에는 관례적으로 심한 바람이 불고 날씨가 차갑다. 이날은 손돌이 죽던 날이라 하 고 그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해 외출을 삼가고 특히 뱃길을 조심한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 은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에 왕이 배를 타고 통진과 강화 사이를 지나는데 갑자기 풍랑이 일어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왕은 사공이 고의로 배를 흔들어 그런 것이라고 호령을 하고 사공의 목을 베었다.

사공은 아무 잘못도 없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 사공의 이름이 손돌이었다. 그래 서 그 손돌이 죽은 곳을 손돌목이라 하고 지나갈 때 조심한다. 해마다 그 날이면 강풍이 불 고 날씨가 찬데 이는 손돌이 억울하게 죽은 원혼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강화에서는 이 날 뱃길을 금한다.

 

11 월 의 세 시 풍 속

 

동지부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대설(大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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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의 하나로 소설과 동지 사이에 들며 음력11월, 양력 12월7,8일 경이다.

이 시기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대설'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원래 재래역법의 발생지이 며 기준지점은 중국의 화북지방 상황을 반영하여 붙여진 것이므로 꼭 이 시기에 적설량이 많다고는 볼 수 없다. 한편, 이 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에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 는 믿음이 전해진다.  

 

동지(冬至)-----------------------------------------------------------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하지로부터 차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 지기 시작하여 둥짓날에 이르러 극에 도달하고 다음날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 지기 시작한다. 고대인들은 이 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대 한 제사를 올렸다. 중국 주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도 이 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 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했고 민간에서는 흔히 '작은 설'이라 하였 다고 한다.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 가는 작은 설의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 유풍은 오늘에도 전해져서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 팥 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을 하고 있다.

동짓날에는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 동지시식이라는 오랜 관습이 있는데,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큼의 크기로 하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른다.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에 올리고 각 방과 장독, 헛간 등 집안 의 여러 곳에 담아 놓았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는다.
동짓날의 팥죽은 시절식의 하나이면서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즉, 팥죽에는 귀신을 쫓 는 기능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집안의 여러곳에 놓아 집안에 있는 악귀를 쫓아내려고 한 것이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으며 민속적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며,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주술행위의 일종이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 죽, 팥떡, 팥밥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짓날에도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 것이로 되어 있다. 동짓달에 동지가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이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동지팥죽은 이웃에 돌려가며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한다.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의하면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는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 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해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다.
동짓날에는 관상감에서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치면 나라에서는 '동문지보'라는 옥 새를 찍어 백관에게 나누어주었다. 관리들은 서로 달력을 선물하였으며 이조에서는 지방관 리들에게 표지가 파란 달력을 선사하였다. 동짓날이 부흥을 뜻하고 이날부터 태양이 점점 오래 머물게 되어 날이 길어지므로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새 달력을 만들어 가졌던 것이 다.

또한 동짓날 부적으로 뱀 '사'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이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 한다고도 전해지고 있으며 또,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죽는 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한다.  

 

팥죽-----------------------------------------------------------

붉은 팥을 삶아 거른 팥물에 쌀을 넣고 쑨 죽으로 새알심이라 불리는 찹쌀경단을 함께 섞어 끓이기도 했다. 그 전래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목은집> <익재집> 등에 동짓날 팥죽을 먹는 내용의 시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는 이미 절식으로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풍습을 적은 <동국세시기>나 <열양세시기>에도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다는 기록이 보인다.

<군학회동> <규합총서> <부인필지> 등의 문헌에는 구체적인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만 드는 법은 팥에 약 8∼10배의 물을 붓고 팥알이 충분히 퍼지도록 삶은 다음, 체에 걸러서 껍질을 제거하고 가라앉힌다. 가라앉힌 웃물을 떠서 솥에 붓고 쌀을 넣은 다음 쌀이 거의 퍼졌을 때 가라앉은 팥앙금을 넣고 고루 섞어서 다시 끓인다. 새알심이 떠오르고 팥죽색이 짙어지고 걸쭉하게 되면 소금으로 간을 하고 식성에 따라 설탕을 넣어 먹기도 한다.

병이 나면 팥죽을 쑤어 길에 뿌리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팥죽의 붉은색이 병마를 쫓는다는 생각에서 연유한 것이다. 상을 당했을 때에도 친지나 이웃에서 팥죽이나 녹두죽을 쑤어 먹 는 풍습이 있어 복죽(伏粥)이라고 하였다.

 

12 월 의 세 시 풍 속

 


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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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의 하나로 동지와 대한 사이에 있으며 음력 12월, 양력 1월5일 경이다. 절후의 이름으 로 보아 대한 때가 일년중 가장 추운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은 우리나라에서는 소한 때가 가장 춥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는 속담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온 것이다. 옛날에 중국 사람들은 소한으로부터 대한까지의 15일 간을 5일씩 삼후로 나누어 초후에는 기러기가 북으로 돌아가고, 중후에는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며, 말후에는 꿩이 운다고 하였다.  

 

대한-----------------------------------------------------------

24절기의 마지막 절후로 양력 1월20일경이다. 대한은 음력 섣달로 매듭을 짓는 절후이다. 원 래 겨울철 추위는 입동에서 시작하여 소한으로 갈수록 추워지며 대한에 이르러서 최고가 된 다고 하지만, 이는 중국의 경우이고 우리나라에서는 1년중 가장 추운 시기가 1월15일께이므 로 다소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춥지 않은 소한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즉, 소한 무렵이 대한 때보다 훨씬 춥다는 뜻이다. 제주도 에서는 이사나 집수리 따위를 비롯한 집안 손질은 언제나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간 1 주일에 걸쳐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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