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우리의옛것

세시풍속 (1월~6월)

淸潭 2008. 2. 9. 20:34

세시풍속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1 월 의 세 시 풍 속



차례







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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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은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날이다. 설날(음력 1월1일)은 태양태음력에 의한 새해의 출발이다.
설날이 되면 객지에서 살던 일가친척들이 고향을 찾고 어른에게 세배하며 조상에게 차례를 올린다. 설날의 세배는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 사람들의 의례적인 행위이자 조상에게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였음을 알리는 의례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배를 주고받는 사람들은 '덕담'으로 새해에 전개될 새로운 시간의 건강과 복을 빌어주며, 조상의 묘소와 사당에 제를 올린다.
설날의 제사는 차례와 성묘로 나누어지는데, 설날 아침 일찍 사당이나 대청에 세찬과 세주, 떡국 등을 진설하고 제사지내는 것을 '차례'라 하고, 조상묘를 찾아가 간단한 세찬과 세주를 차려놓고 예를 올리는 것을 '성묘'라고 한다.
설 차례는 '떡국 차례'라 하여 떡국을 제수로 올리는 것이 상례이며 그밖의 제수는 기제사와 마찬 가지이다. 차례를 지낸 후에는 집안의 남녀노소가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음복을 하는데, 장만한 여러 가지 음식을 고루고루 맛보아야 다복하다고 한다.
차례를 마치고 나면 가까운 집안끼리 모여 성묘를 간다. 상석이나 소반 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서 예를 올린 다음 묘 앞에 둘러앉아 진설한 음식을 음복하고 묘 주위를 살피기도 한다. 이때 어린 자손들에게 조상에 대한 이야기며, 묘가 위치한 곳의 풍수지리 등을 이야기 하며 조상을 기리기도 한다.
설날에는 차례를 위해서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는데 이것을 세찬, 세주라고 한다. 이런 시식(時 食)은 지역과 살림의 빈부 등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떡국와 농주, 엿, 강정류 등은 거의 일반적인 것이다. 특히 떡국은 제수로 사용될 뿐 아니라 산 사람의 세식으로도 반드시 먹어야 되는데, 이는 나이와 관계되는 종교적인 음식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농경의례 --------------------------------------------------------

-지신밟기-
음력 정초에 지신을 진압함으로써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마을의 평안과 풍작 및 가정의 다복을 축원하는 신앙적 마을 행사로 지방에 따라서는 마당밟기, 매구, 걸립, 걸궁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꽹과리, 징, 북, 장구, 쇠납 등의 민속악기로 구성된 풍물을 선두로 소고패, 양반, 하동, 포수, 머슴과 탈을 쓴 각시 등이 당산굿을 하면서 집집마다 방문해 지신풀이 창을 하며 춤과 익살, 재주를 연희하는 것으로 마을의 지신에 대한 공연적 성격을 띈 놀이이기도 하다.
지신놀이패가 자기 집에 당도하면 주인은 술, 과일, 포로 고사상을 차리고 주식을 접대하며 돈과 곡식을 성의껏 희사하면 그것을 모아 마을의 공동비용으로 사용한다.

-쥐불놀이-
농촌에서 정월 첫 쥐날에 쥐를 쫓는 뜻으로 논밭둑에 불을 놓는 놀이로 이 날은 마을마다 청소년들이 자기네 마을 부근에 있는 밭두렁이나 논두렁에다 짚을 놓고 해가 지면 일제히 불을 놓아 잡초를 태운다. 불은 사방에서 일어나 장관을 이루는데 이를 '쥐불놀이'라 한다.
이 쥐불의 크고 작음에 따라 그 해의 풍흉, 또는 그 마을의 길흉을 점치기도 한다. 블의 기세가 크면 좋다하여 그 날은 각 마을이 서로 다투어가며 불기세를 크게 하는 풍습이 있다. 자정이 되 면 사람들은 다 자기 마을로 돌아가는데 들에 놓은 불은 끄지 않는다.
이 날 들판에 불을 놓는 까닭은 쥐의 피해가 심하므로 쥐를 박멸하기 위함과 논밭의 해충을 제거하고 새싹을 왕성하게 하기 위함이다.

민속관행 ----------------------------------------------------------

-차례-
명절에 지내는 제사로 우리나라 명절 중에서 차례를 가장 많이 지내는 때는 설과 추석이다. 이밖에도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 사당이 있는 집에서는 대보름날, 한식, 단오, 중양절, 동지 등에 차례를 올리기도 한다. 차례에 모셔지는 조상은 불천위(나라에 공훈이 많아 사당에 모셔 4대가 지나 도 계속 제사를 받들도록 허락된 분의 위패)와 함께 4대 조상에 한한다.

-떡국-
설날에 먹는 절식의 하나로 설날은 한 해를 새로 시작하는 날로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원시 종교적 사상에서 깨끗한 흰 떡으로 끓인 떡국을 먹게 되었다고 본다.
떡국을 끓일 때는 양지머리를 푹 고아서 기름기를 걷어낸 육수 또는 쇠고리를 썰어서 끓인 맑은 장국을 쓴다. 맑은 장국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흰 떡을 어슷어슷한 모양으로 얇게 썰어넣고 흰 떡이 끓어 위로 떠오르면 파를 넣고 잠시후 그릇에 담아 웃기를 얹으면 된다. 웃기로는 쇠고기볶음, 지단이 주로 쓰이는데 파산적이 쓰일 때도 있다.

-세배-
정월 초하룻날에 하는 새해의 첫인사로 아침 일찍 남녀노소가 모두 새옷(설빔)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지낸 뒤 하는 의례이다. 조부모, 부모에게 먼저 절하고 형, 누나 등에게 차례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을 하여 새해 첫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는 일가친척과 이웃어른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리기도 한다. 세배를 하러 온 이에 대하여 어른에게는 술과 음식을 내놓는 것이 관례이나 아이 들에게는 술을 주지 않고 약간의 돈, 또는 떡과 과일을 준다.

-복조리-
설날 이름 아침, 또는 섣달 그믐날 밤 자정이 넘으면 벽에 걸어두는 조리이다. 조리는 쌀을 이는 기구인데 그 해의 행복을 쌀알과 같이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믿음에서 생겨난 풍속으로 보인다. 설날에 조리를 1년 동안 사용할 수량만큼 사서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한 귀퉁이에 걸어놓고 하나씩 사용하면 1년 동안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민간신앙도 있다.
조리 장수는 조리를 팔기 위하여 섣달 그믐날 밤에 "복조리 사시오 복조리요"하고 외치면서 밤새도록 골목을 돌아다닌다.

-야광이 쫓기-
우리 민간에는 설날 밤에 야광이라는 귀신이 인가에 들어와서 사람들의 신을 신어보아 자기 발에 맞으면 그냥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다. 그렇게 되면 신발 임자의 운수가 나쁘다고 하여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신을 방안에 들여놓고 일찍 잠을 잔다. 이 때 대문 위에다 체를 걸어두거나 마당에 장대를 세우고 체를 달아매 놓으면 야광이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어보다가 잘못 세어 또 세고 또 세고 하여 신을 신어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새벽닭이 울면 물러간다고 한다.

-윷놀이-
윷가락을 던지고 말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대보름날까지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먼저 29개의 동그라미를 그린 윷판을 펴놓고 놀이를 하는데 서로 윷가락을 던져서 끗수가 많고 적음에 따라 선후를 정한다.
윷가락을 던져서 네 개가 다 엎어진 것은 '모'요 네 개가 다 젖혀진 것은 '윷' 두 개가 엎어지고 두 개가 젖혀진 것은 '개' 한 개가 엎어지고 세 개가 젖혀진 것은 '걸' 한 개가 젖혀지고 세 개가 엎어진 것은 '도'라고 한다. 윷말이 가는 말을 보면 도는 한 발, 개는 두 발, 걸은 세 발, 윷은 네 발, 모는 다섯 발이다.
윷가락의 호칭인 도개걸윷모는 가축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본다. 즉,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을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가리킨다.

-널뛰기-
긴 널판지의 한가운데에 짚단이나 가마니로 밑을 궤고 양 끝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마주보고 번갈아 뛰면서 즐기는 여자들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초판희, 판무, 도판희라고도 한다. 주고 설날 많이 즐기는 놀이이나 단오나 추석에도 한다.
[경도잡지] 세시 원일조에 의하면 "항간에서 부녀들이 흰 널조각을 짚단 위에 가로로 걸쳐 놓고 양쪽 끝에 갈라서서 굴러뛰는데 그 높이가 몇자씩이나 올라간다. 그때 패물 울리는 소리가 쟁쟁 하고 지쳐서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낙을 삼으니 이것을 초판희라고 한다"라고 하여 설날 풍속의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널뛰기의 유래에는 몇 가지 속설이 전해져오고 있는데 부녀자의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때에 담장 밖의 세상풍경과 거리의 남자를 몰래 보기 위해서 널을 뛰었다는 것과 옥에 갇힌 남편을 보기 위하여 부인들이 모여 널을 뛰면서 담장 너머로 옥속에 있는 남편들의 얼굴을 번갈아 엿보았 다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이밖에 처녀시절에 널을 뛰지 않으면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지 못한다거나 정초에 널뛰기를 하면 일년 내내 가시에 찔리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다.

널뛰기 노래 (함흥지방)

허누자 척실루
뉘당기 팔 랑
내치마 랑 럭
허누자 척실루
늬눈이 휘 휘
내발이 알 알



대보름 ----------------------------------------------------------



음력 정월 대보름 날로 한자로는 '상원'이라고 한다. 상원이란 '중원(음력 7월15일, 백중날)'과 '하원(음력 10월15일)에 대칭되는 날이며 이 날은 우리 세시풍속에서 가장 중요한 날로 설날만큼 비중이 크다. 1월1일은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므로 당연히 의의를 지녀왔지만, 달의 움직임을 표준 으로 삼는 음력을 사용하는 사회에서는 첫 보름달이 뜨는 대보름날이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 듯하다.
이렇게 대보름날을 설날처럼 여기는 관습은 지금까지도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동국세시기>에도 "이 날 온 집안에 등잔불을 켜놓고 밤을 새운다. 마치 섣달그믐날 밤 수세하는 예와 같다"고 되어 있다. 전라남도에서는 열나흗날 저녁부터 보름날이 밝아야 운수가 좋다고 하여 집안이 환해지도록 불을 켜놓으려고 하며 배를 가진 사람은 배에도 불을 켜놓는다. 경기도에서는 열나흗날 밤에 제야와 같이 밤을 새우는 풍속이 있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해서 잠 안자기 내기를 하기도 한다.
대보름날에는 절식으로 약밥, 오곡밥, 묵은 나물과 복쌈, 알부럼, 귀밝이술을 먹으며 풍년과 복을 비는 행사로서 볏가릿대 세우기, 복토 훔치기, 용알뜨기, 다리밟기, 나무 시집보내기, 백가반 먹기, 나무 아홉짐 하기, 곡식 안 내기 등을 행한다.
또 이날 행해지는 농점으로는 달집태우기, 사발점, 그림자점, 달불이, 집불이, 소밥주기, 닭울음점 등이 있으며 제의와 놀이로는 지신밟기, 별신굿, 안택고사, 용궁맞이, 기세배, 쥐불놀이, 사자놀이, 관원놀음, 들놀음, 오광대탈놀음 등이 있다.

달집태우기 -------------------------------------------------------

정월대보름날 밤 달이 떠오를 때 생솔가지 등을 쌓아올린 무더기에 불을 지르며 노는 풍속으로 달맞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청년들이 풍물을 치며 각 가정의 지신밟기를 해주고 나서 짚이나 솔잎을 모아가지고 오는 수도 있고 청소년들이 각자 나무나 짚을 직접 해가지고 모여드는 수도 있다. 이것을 언덕이나 산 위에 모아서 쌓기도 하고 조그만 오두막이나 커다란 다락같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대보름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불을 지른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더불어 달을 맞고 빨갛게 불꽃이 피어오르면 신나게 농악을 치면서 불이 다 타서 꺼질 때까지 춤을 추며 환성을 지르기도 한다. 달집 속에 대나무를 넣어서 그것이 터지는 폭음으로 마을의 악귀를 쫓는다는 곳도 있다.
또 그 때까지 날리던 연을 비롯한 여러 가지 태울 것들을 달집 위에 얹어 다 같이 태우기도 한다. 대보름달을 풍요의 상징이고 불은 모든 부정과 사악을 살라버리는 정화의 상징이다.
달집이 탈 때 고루 한꺼번에 잘 타오르면 풍년, 불이 중도에 꺼지면 흉년이 든다고 판단하는 곳도 있다. 또 달집이 다 타서 넘어질 때의 방향과 모습으로 그해의 풍흉을 점치는 수도 있다.

다리밟기 -----------------------------------------------------

대보름날 밤에 다리를 밟으면 다리병을 앓지 않는다고 하여 각지에서 행해지던 세시풍속의 하나이며 '답교' 또는 '답교놀이'라고도 한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옛날 한양에서는 저녁에 종이 울리면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다리밟기를 하였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혼잡을 이루었다고 하며 수표교와 광교를 가장 많이 찾았다고 한다.
다리밟기에는 일정한 절차가 있는 것이 아니고 농악을 치거나 장구에 맞춰 소리를 하거나 춤추며 즐기는 것이다.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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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두 편으로 나뉘어 줄을 마주 잡아당겨 많이 끌어당기는 편이 이기는 놀이로 삭전, 조리지희, 갈전이라고도 한다. 줄다리기의 기원에 대하여는 당나라 봉연이 쓴 <봉씨문견기>에 춘추시대 오, 초 사이이 싸움에서 유래하였다고 하고 있으나 그보다는 풍년을 비는 농경의식으로 그 이전부터 행하여졌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15세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처음으로 이 놀이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충청도, 경기도, 제주도 등지의 줄다리기 풍속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 놀이는 대보름날에 남녀노소가 참여하는 단체놀이 가운데 규모가 큰 놀이로써 작은 마을에서 는 하룻 동안 놀지만 큰 고을에서는 며칠에 걸쳐 논다.
줄다리기를 하려면 먼저 줄울 만들어야 하는데 빠르면 한 달 전쯤부터 집집마다 짚을 거두어 준비를 시작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본격적인 줄다리기를 하기 전에 애기줄, 골목줄, 고삿줄이라고 불리는 작은 외줄로 청소년들이 미리 놀기도 하였다.
줄다리기의 편가르기는 육지 지방에서는 대개 동부와 서부로 나누며 섬지방에서는 상촌, 하촌으로 나누어 상촌을 남자편, 하촌은 여자편이 된다. 그리고 장가 안 간 총각은 여자편이 된다. 결과적으로는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따라서 대개 여자편이 이기도록 남자편이 양보하는 것이 묵계로 되어 있다.
줄을 만드는 것을 '줄 드린다'라고 하는데 매우 중요하므로 경험 많은 노인들의 자문을 얻어 장정 들이 줄드리는 일을 도맡아 한다. 크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개 지름이 0.5-1.4m, 길이 40-60m가 된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줄다리기를 시작할 고사를 지내고 징소리가 울리면 시합이 시작된다. 짧으면 하루, 길면 사흘에 걸쳐 승부가 끝나게 되면 줄은 이긴편의 소유가 되나 승패에 관계없이 공동의 소유가 되기도 한다. 마을 입구의 액막이돌 또는 신목에 감아두거나 썰어서 논에 거름으로 넣기도 한다. 이긴 쪽의 줄을 가져가 거름에 섞으면 농작물이 잘 여물고 지붕에 올려놓으면 아들을 낳고 소를 먹이면 소가 잘 크며 튼튼해지고 출어할 때 가져가면 풍어가 든다하여 서로 다투어 한 웅큼씩 잘라간다.
줄다리기는 줄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놀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완전한 협동심에 의해 이루 어지며 주민들은 이 놀이를 통해 동질감과 향토애를 기르게 된다.
현재까지 전승되는 유명한 줄다리기로는 충청남도 당진군 '기지시줄다리기' 강원도 '삼척줄다리기' 경상남도 '영산줄다리기' 등이 있다.

 

 

 2 월 의 세 시 풍 속


































성묘
















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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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로 음력 2월 혹은 3월에 든다. 2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철이 이르고 3월에 드는 해는 철이 늦다. 그래서 '2월 한식에는 꽃이 피어도 3월 한식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한식의 유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고대의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 불을 만들어 쓸 때 그에 앞서 어느 기간 동안 묵은 불을 일절 금지하던 예속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하고, 중국의 옛 풍속에 이 날은 비바람이 심해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한다.
또한 '개자추 전설'에 의한 유래는 다음과 같다. 중국 진나라의 문공이 국란을 당하여 개자추 등 여러 신하를 데리고 국외로 탈출하여 방랑할 때, 배가 고파서 거의 죽게 된 문공을 개자추가 자기 넓적다리살을 베어 구워먹여 살린 일이 있었다. 뒤에 왕위에 오른 문공이 개자추의 은덕을 생각하여 높은 벼슬을 시키고자 했으나 개자추는 그를 마다하고 면산에 숨어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으므로 개자추를 나오게 할 양으로 면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나오지 않고 홀어 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밑에서 타죽고 말았다. 그 뒤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또 타죽은 사람에게 더운밥을 주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 하여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이 날 문에 버드나무를 꽂기도 하고 들에서 잡신제인 야제를 지내 그 영혼을 위로하 기도 한다.
특히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비가 내리는 한식을 '물한식'이라고 하며 한식날 비가 오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이 날 나라에서는 종묘와 각 능원에 제향하고 민간에서는 술과 포, 식혜, 떡, 국수, 탕, 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를 지낸다. 이 때 지내는 제사를 명절제사 곧 절사라고 한다.
또 여러 가지 음식을 마련하여 성묘하고 조상의 묘를 돌본다. 이날 성묘하는 풍속은 당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신라 때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인 명절의 하나로 중요시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형을 실시하였다.
내병조에서는 버드나무를 뚫어 불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리면 그 불씨는 궁정 안에 있는 모든 관청과 대신들 집에 나누어 주었다.
한식날부터 농가에서는 채소씨를 뿌리는 등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든다. 흔히 이 날 천둥이 치면 흉년이 들 뿐 아니라 국가에 불상사가 일어난다고 믿어 매우 꺼린다.

성묘 --------------------------------------------------------

조상의 묘를 살펴서 손질하는 것으로 전묘, 배분, 배소례 또는 상묘의라고도 부른다.
<개원례>라는 책에 의하면 기제사를 지내기 하루 전날에 묘의 영문 밖에서 재배하고 봉분에 올라 주위에 심은 나무들의 안팎을 두루 살펴 3번 돌아보고 가시나무와 칡넝쿨, 잡초를 잘라 베어 내고 다시 영문 밖으로 나와 재배를 한다고 하였다.
한편 <제록>에 의하면 벼슬길에 얽매어 타향에 나가 있어 제때에 배소를 하지 못하면 한식날 집에서 제사로 대신해도 된다고 하였다. 또한 <외서>에 의하면 10월1일에 배분을 하는데 이것은 서리와 찬이슬 내릴 때에 느끼는 감정 때문이며, 한식 때에도 관습에 따라 배분을 한다고 하였다. 성묘는 봄, 가을에 손질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가 당나라 이후에 봄의 성묘는 한식, 가을의 성묘 는 10월 1일로 고정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언적의 <봉선잡의>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정조, 한식, 단오, 추석에 묘에 가서 배소해왔으니 어떻게 폐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 날 아침을 일찍 사당에서 천신을 하고 묘에 가서 상을 차려 배례하는 것이 좋다. 만약에 묘가 멀면 2,3일 전에 묘소에 가서 재계하여 상을 차리고 배례한다"고 하였다.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한식과 추석에는 <가례>에 의해 묘제를 지내고 정초와 단오에는 간단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했다.
성묘의 형식은 크게 보아 분묘의 손질과 배례로 나뉘어진다. 이러한 형식은 죽은 조상의 육체가 묻혀있는 장소에서 직접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속에는 조상숭배의 관념이 내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칩 ----------------------------------------------------------

24절기의 하나로 우수와 춘분 사이에 들어 있으며 태양의 황경이 345에 해당될 때이다. 경칩은 글자 그대로 땅 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무렵이 된다. 개구리들은 번식기인 봄을 맞아 물이 괸 곳에 알을 까놓는데 그 알을 먹으면 허리아픈 데 좋 을 뿐만 아니라 몸을 보한다고 해서 경칩일에 개구리알을 먹는 풍습이 전해져오고 있다. 지방에 따라서는 도롱뇽 알을 건져먹기도 한다.
또 경칩에는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일부러 흙벽을 바르는 지방도 있다. 빈대가 심한 집 에서는 물에 재를 타서 그릇에 담아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면 빈대가 없어진다는 속설이 전한다.
한편, 경칩날에 보리싹의 성장을 보아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예측할 수 있다고도 한다. 또한 단풍 나무나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마시면 위장병이나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약으로 먹는 지방도 있다.

 

 


3 월 의 세 시 풍 속

활쏘기놀이





















화전


화전가

어와 여종들아
이내말씀 들어보소
이해가 어떤해뇨
우리임금 회갑이라
화봉의 축원으로
우리임금 축수하고
강구의 격양가로
우리여인 화답하네
인정전 높은전에
수연을 배설하니
백관은 헌수하고
창생은 고무한다
춘당대 너른땅에
경과를 보이시니
목목하신 우리임금
서일같이 임하시고
빈빈한 명유들은
화상에 분주하다
이렇듯이 좋은해에
이때가 어느때뇨
불한불열 삼춘이나
심류청사 드리곳에
화앵이 편편하고
천봉수장 베푼곳에
봉첩이 분분하다
우구황앵 아니로되
꽃을같이 얻었으니
우리비록 여자라도
아니놀고 무엇하리
백만사 다버리고
하루놀음 하려하고
일자를 청차하니
길일양진 언제런고

(중략


삼짇날 --------------------------------------------------------------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는 음력 3월3일 삼짇날. 이 날은 삼월삼짇날이라고도 불리며 한자로는 상사(上巳), 원사(元巳), 중삼(重三)또는 상제(上除)라고도 한다. 이 날은 제비뿐만 아니라 나비나 새도 돌아온다는데 흰나비를 보면 그 해에 상복을 입게 되어 좋지 않고,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 보면 운수가 좋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삼짇날에는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각종 민속놀이를 즐겼다고 하는데 들판에 나가 꽃놀이를 하고 새 풀을 밟으며 봄을 즐기기 때문에 답청절(踏靑節)이라고도 한다. 또 이 날에는 전국 각처의 한량들이 활터에 모여 편을 짜 활쏘기놀이(弓術會)를 연다. 활을 쏠 때에는 기생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활쏘는 한량들 뒤에 나란히 열을 지어 소리를 함으로 써 응원을 하는데 화살 다섯개가 과녁에 바로 맞으면 지화자, 지화자......하며 한바탕 춤 을 춘다. 또 수탉을 싸움붙여 닭쌈놀이를 하기도 한다.

청명 (淸明) --------------------------------------------------------

24절기의 하나로 한식 바로 전날이거나 때로는 같은 날이 되기도 하며 오늘날의 식목일과도 대개 겹친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청명을 기하여 농사일을 시작하였으므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이 날에는 논농사의 준비작업으로 논둑, 밭둑을 손질하는 가래질을 시작하여 다음 절기인 곡우 무렵 못자리판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농가에서는 미리 일꾼을 구하느라 바빴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대궐에서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 불을 일으켜 각 관청에 나누어 주 었다고 한다.

화류(花柳) 화전(花煎) ------------------------------------------

음력 3월이 되면 겨우내 얼었던 산과 들에 꽃이 피고 기온도 올라가 사람들의 마음이 낭만 에 들뜨게 된다. 이처럼 봄이 되어 사람들이 자연을 찾아 낭만을 즐기는 것을 화류놀이라 하는데, 봄 화류놀이를 천렵(川獵)이라 해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국을 끓여 밥을 지어 먹기도 한다. 또 화류놀이에 산에 가서 진달래꽃을 따 전을 부쳐 먹는 것을 화전이라 한다. 화류, 화전에 대하여 <동국세시기>와 <농가월령가>에 기록이 있다. "서울 풍속에 산언덕이나 냇가에 나아가 노는 것을 화류라 한다"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해서 둥근떡을 만들고 그것을 기름에 지진 것을 화전(花 煎)이라 한다. 또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것을 가늘게 썰어 오미자 국에 띄우고 꿀을 섞고 잣을 넣은 것을 화면(花麵)이라 한다. 혹 진달래꽃을 녹두가루에 반죽해서 만드는 일 도 있으며 녹두로 국수를 만드는 일도 있다. 녹두국수에 붉은물을 들이기도 하는데 꿀물에 띄운 것을 수면(水麵)이라고 한다. 이러한 것들은 계절음식으로 제사에 쓰기도 한다." 화류놀이를 할 때 화전을 먹는 것뿐 아니라 봄경치를 찬탄하여 노래도 불렀는데 이 노래는 화전가라 해서 오늘에 전승되고 있다.

답청 (踏靑) --------------------------------------------------------

답청은 화류와 비슷한 개념으로 봄에 야외로 나가 푸른 풀밭에 밟는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 이다. 답청절이라고도 하는 삼짇날에 서울 사람들은 필운대(弼雲臺)의 살구꽃, 북둔(北屯) 의 복숭아꽃, 동대문밖의 버들에 많이 모여 봄놀이를 즐겼다. 필운대는 대궐의 서쪽 언덕밑인 지금의 배화여고 뒤쪽인데, 이 근처는 살구나무가 특히 많 았고 봄이면 여러 꽃들이 만발해서 사람들이 꽃구경 겸 답청을 즐겼다. 북둔은 지금의 성북동으로 산골짜기엔 복숭아나무가 많아서 도화동, 북사동, 북적골이라 부 르기도 했고 묵사(墨寺)란 절이 있어서 묵사동이란 이름도 있다.

풀각시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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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각시놀이는 봄철 소녀들의 놀이로 <동국세시기>에 보면 "아가씨들이 푸른 풀을 한줌 뜯어 다가 머리채를 만들고 나뭇가지를 꺾어 머리채를 붙인 다음 치마를 입혀 각시라 불렀다. 이부자리와 병풍을 쳐놓고 각시놀이를 한다"고 했다. 봄철 울타리 밑에는 풀이 잘 자라므로 여자아이들이 물곳풀을 뜯어서 대나무쪽에다 풀끄트머리를 실로 매고, 머리를 땋아 가느다란 나무로 쪽을 지고 헝겊조각으로 대쪽에다 노란저고리와 붉은 치마를 만들어 입혀 새각시 모양을 하고 요, 이불, 베게, 병풍을 차려놓고 풀각시놀이를 한다. 각시놀이 때에 사기그릇 깨진 것을 주워다 그릇을 삼고 채소나 풀을 뜯어다 찬을 담고 소꿉 놀이를 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유생 (柳笙) ------------------------------------------------------

여자아이들이 풀각시놀이를 할 때, 남자아이들은 물이 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면서 놀았는데 이를 유생이라 한다. <동국세시기> 기록에 의하면 "아이들이 버들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분다. 이것을 유생 (柳笙)이라 한다"고 하였다. 나무에 물이 오를 무렵이면 버드나무나 미루나무는 손으로 비틀어 속대를 쏙 뽑을 수 있다. 속대를 뽑아 길이 5센티쯤으로 자르고, 한쪽 껍질을 칼로 벗겨내고 섬유질만 남겨 입에다 대고 불면, 소리나는 호드기가 된다.

 

 

4 월 의 세 시 풍 속



















연등행사






















































증편


파일(八日) --------------------------------------------------------

음력 4월8일은 석가모니 탄신일이다. 우리나라 풍속에 이 날 등불을 켜므로 등석이라고도 한다. 온집안 사람들은 초저녁에 산기슭으로 올라가 등 달아 놓은 광경을 구경하는데 어떤 사람은 악기를 들고 거리를 쏘다니기도 하고 성 밖 시골노인들은 남산의 잠두봉을 찾아와 이 장관을 구경하기도 하였다.
또 집에서는 손님을 청해다가 느티떡과 볶은 검은 콩, 삶은 미나리 나물을 내놓았는데 이를 '부처 생신날 소밥(고기반찬이 없는 밥)'이라 한다.
어린이와 부녀자들은 물동이에 물을 길어 등 아래 떠다 놓고 바가지를 엎어 빗자루로 그 바가지의 등을 두드려 소박한 소리를 내는데 이를 수고(물장구)라고 한다. 인가에서는 자녀의 수대로 등을 켜는데 밝아야 길하다고 생각했다.

<고려사>에 "우리나라 풍속에 4월8일이 석가의 탄신일이므로 집집마다 연등을 하는데 이 날이 되기 수십일 전부터 여러 아이들이 종이를 잘라 등대에 작대기에 매달아 기를 만들고 두루 장안의 거리를 누비면서 쌀이나 돈을 요구하며 그 비용을 삼으니 이를 호기라고 한다"고 했다.
지금 풍속에 깃발을 다는 것은 이 호기의 남은 풍속이다.
중국의 연등회는 정월보름에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4월8일에 한다.

연등, 관등 --------------------------------------------------------

4월8일은 부처가 태어난 날로 연등행사가 있어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 <경도잡지> <동국여지승람> <농가월령가>에 모두 기록이 있다. 연등을 연등놀이라 부르기도 하고 연등을 구경하는 것을 관등이라고 부른다.
이 행사는 불교문화권에서 성행하였던 불교의례의 하나이다. 즉, 불교에서는 불전에 등을 밝히는 등공양을 향공양과 함께 중요시했는데 그것은 불전에 등을 밝혀서 자신의 마음을 밝고 맑고 바르게 하여 불덕을 찬양하고 대자대비한 부처에 귀의하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국세시기>에 초파일 연등행사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있다.
8일은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이다. 우리나라 풍속에 이 날 등에 불을 밝히므로 등석이라 부른다.
수일 전부터 민간에서는 제각기 등을 달아맬 깃대를 세우고 꼭대기에 꿩꼬리털을 장식하고, 채색한 비단천으로 깃발을 만들어 달아둔다.
형세가 넉넉하지 못한 집에서는 깃대 꼭대기에 노송 가지를 꽂아둔다. 각 가정에서도 자녀 수대로 등을 매달고 밝은 것이 길한 것으로 여긴다.
사치를 하는 사람은 큰 대나무 수십개를 묶어 매고 한강, 용산, 마포, 현호, 서강의 다섯 군데의 돛대를 가져다 받침대를 만든다.
혹은 일원권이라고 해서 장대 끝에 구멍을 뚫고 이 구멍에 다른 막대기를 꿰어 십자형을 만들고 가로 지른 막대의 양 끝에 한쪽은 붉고 한쪽은 흰색으로 공을 반으로 쪼갠 것과 같은 것을 붙여서 바람이 불면 빙빙 돌게 만든다. 혹은 회전등을 달아 바람에 빙빙 도는 것이 마치 총알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종이에 화약을 싸서 줄에다 매어 두면 줄이 위로 솟구칠 때 마치 화살이 활을 떠난 것같고 불길이 아래로 쏟아져 흩어져 떨어지는 것이 마치 비가 오는 것같다. 혹은 종이쪽을 수십발이나 되게 이어붙여서 펄펄 날리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모양과 같다. 또는 광주리를 만들기도 하고 혹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옷을 입혀 줄에 매어 놀기도 한다.

한편 <고려사>에 "왕궁이 있는 서울로부터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정월 대보름에 이틀 연등하던 것을 최이(崔怡)가 4월8일로 연등을 옮겼다" 고 했다. 정월 보름의 연등은 중국의 풍속이고 고려 때에는 이미 없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추측컨대 반드시 4월8일날 연등을 하는 것은 최이가 처음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등은 종류에 따라 여러 이름이 있어 수박등, 마늘등, 연꽃등, 칠성등, 오행등, 일월등, 공등, 배등, 종등, 북등, 누각등, 난간등, 화분등, 가마등, 머루등, 병등, 항아리등, 방울등, 알등, 용등, 학등, 잉어등, 거북등, 자라등, 수복등, 태평등, 만세등, 남산등 등이 있어 모두 그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등을 만들 때는 종이를 바르기도 하고 붉고 푸른 비단으로 바르기도 한다. 꽃과 새들을 그리기도 하고 등의 편편한 면에 삼색종이를 돌돌 말아서 붙이기도 한다.
북등에는 장군이 말을 탄 모습이나 삼국의 고사를 그리는 일도 있다. 또 영등에는 안에 선기를 만들어 넣고 말타고 사냥하는 모습이나 매, 개, 호랑이, 이리, 사슴, 노루, 꿩, 토끼 등 짐승의 모양을 그려서 선기를 붙인다. 그러면 선기가 바람에 빙빙 돌 때에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된다.
아이들은 등대 밑에 모여 석남잎을 넣어서 만든 증편과 볶은 콩과 검은 콩과 삶은 미나리 나물을 벌여 놓는데 석가 탄신일에 음식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뜻이라 한다.
이렇듯 초파일은 석가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한 불교의식이면서 민속축제로 정착되었고 모두가 즐기는 행사의 날이 되었다.

물박치기 ----------------------------------------------------------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초파일에 물동이에 물을 담고 그 위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빗자루로 두드리면서 소리를 내는 것을 물박치기라고 한다"고 했다. 물박치기는 주로 부녀들이 하는놀이로 빗자루로 박을 치면 둔탁한 소리가 나지만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치면 맑은 소리가 난다. 한손으로는 막대기를 들고 한손으로는 손가락을 치면서 장단을 치면 소박한 기악 반주가 되어 지금도 할머니들이 물박치기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있다. 이러한 장단을 물박장단이라고 한다.

천렵 ----------------------------------------------------------------

여름철 경치 좋은 정자나 냇가에 가서 물놀이를 하고 개울에서 고기를 잡아 안주삼아 주흥에 젖는 일을 천렵이라고 한다. 봄철의 화류와 화전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뜻맞는 사람끼리 때와 장소를 정하여 모여서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선비들은 시를 읊어 흥을 달래고 농군들은 농악을 치면서 노래하고 춤추고 흥껏 쉬는 것이다. <농가월령가>에 천렵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증편(기주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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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파는 집에서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한 조각씩 떼어서 술을 넣고 쪄서 부풀어오르게 하여 마치 방울같이 만든다. 그리고 삶은 콩을 소로 꿀을 섞어 그 방울모양의 떡 속에 넣는다. 그 위에 대추의 살을 떼어 발라 찐 것을 증편이라 한다. 증편은 '기주떡'이라고도 하는데 잘 상하지 않으며 새콤한 맛이 더운 날의 입맛에 맞고 소화도 잘되어 여름철의 대표적인 떡이라 할 수 있다.

만드는 법을 <규합총서>에서는 '쌀을 하룻밤 물에 불려 건져서 가루로 만든 다음, 물을 팔팔 끓여 된송편만큼 반죽을 하여 약간 친다. 여기에 막걸리와 참기름을 조금 넣어 멍울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잘 풀어서 반죽한 것이 손으로 치켜들어 천천히 떨어질 정도가 되면 유지와 보자기로 잘 싸두었다가 기주가 일면 잘 친다. 이 때 술은 냉수에 막걸리를 술맛이 날 만큼 타서 쓴다. 소를 만들 때는 꿀팥소에 계피, 생강, 후춧가루를 넣어서 쥐기 좋을 정도로 볶는다. 찔 때에는 겅그레에 보자기를 깔고 준비한 소를 놓고 수저로 반죽을 떠서 얹으면 동그란 방울이 된다. 여기에 대추와 곶감을 채썬 것과 통잣을 쪼개어 박아 쪄낸다' 라고 하였다.

증편의 맛은 막걸리의 맛에도 좌우되는데, 막걸리 맛이 달고 좋으면 떡이 맛있고 막걸리의 맛이 시고 떫으면 맛이 없게 된다.
청, 백 두 색깔인 것이 있는데 청색이 나는 것은 당귀의 잎가루를 섞었기 때문이다. 또 방울같이 부풀어오르게 하지 않고 조각으로 만들어서 먹기도 한다.

어채, 어만두 -----------------------------------------------------

생선을 잘게 썰어 익혀 외나물, 국화잎, 파싹, 석이버섯, 익힌 전복, 계란 등을 섞은 것을 어채라 한다. 또 생선을 두껍고 넓게 잘라 조각을 만들고 그것으로 육소를 싼 것을 어만두라 한다. 또 그것을 초장에 찍어 먹는다. 삶은 미나리를 파에다 섞어 회를 만들고 후추가루와 간장을 얹어 술안주로 먹는다. 이것들이 모두 첫여름의 시절음식이다.

 

 

5 월 의 세 시 풍 속
















































씨름









창포에 머리감기













단오 ------------------------------------------------------

음력 5월5일로 수릿날, 중오절, 천중절, 단양이라고도 한다. 단오(端五)의 '단'자는 처음 즉, 첫 번째를 뜻하고 '오'는 다섯을 뜻하므로 단오는 '초닷새'라는 뜻이 된다. 일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해서 큰 명절로 여겨왔고 여러 가지 행사가 전국적 으로 행해지고 있다. 조선시대 중종 때는 단오가 설날, 추석과 함께 3대명절로 정해진 적도 있다.
단오의 유래는 중국 초나라 회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간신들의 모함을 받은 굴원이라 는 신하가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해 '멱락수'라는 곳에서 투신자살했는데 그 날이 5월5 일이었다. 그 뒤 해마다 굴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냈고 이것이 우리나라 에 전해져 단오가 되었다고 한다.
<열양세시기>에 의하면 단오날 수뢰(물의 여울)에 밥을 던져 굴원을 제사지내는 풍속으 로부터 '수릿날'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이 날 산에서 자라는 수리취라는 나물이나 쑥을 뜯어 떡을 하는데 떡의 둥그런 모양이 마치 수레바퀴같아서 '수리'라는 이 름이 붙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단오의 풍속으로는 창포에 머리감기, 쑥과 익모초 뜯기, 부적 만들어 붙이기,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단오비녀꽂기 등이 있고 민속놀이로는 그네뛰기, 활쏘기, 씨름 등이 행해졌다. 한편 궁중에서는 이날 제호탕, 옥추단, 애호, 단오부채 등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다. 또 집단적인 민간 행사로 단오제, 단오굿을 하기도 하였다.

그네뛰기 -----------------------------------------------------

남자들의 씨름과 함께 대표적인 단오 민속놀이이며 한자로는 '추천'이라고 한다.
그네는 흔히 마을어귀나 동네마당에 있는 큰 느티나무 혹은 버드나무 등의 가지에 매어 놓고 동네사람들이 수시로 와서 노는데 흔히 4월 초파일 전후부터 시작해 5월 단오까지 많이 한다. 계절적으로 이 무렵은 한창 신록이 우거지고 날씨가 청명할 때여서 창공을 박차고 그네를 뛰는 여인의 모습은 마치 제비가 나는 것같기도 하고 선녀들의 놀음같기 도 하여 민요에서는 그네뛰는 여인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오월이라 단오절은 천중가절이 아니냐
수양청청 버들숲에 저가지를 툭툭차자
후여넝츨 버들가지 청실홍실 그네매고
임과나와 올려뛰니 떨어질까 염려로다
한번굴러 앞이솟고 두번굴러 뒤가솟아
허공중층 높이뜨니 청산녹수 얼른얼른
어찌보면 훨씬멀고 얼른보면 가까운듯
올라갔다 내려온양 신선선녀 하강일세
난초같은 고운머리 금박댕기 너울너울
외씨같은 두발길로 반공중에 노니누나
요문갑사 다홍치마 자락들어 꽃을매고
초록적삼 반호장에 자색고름도 너울너울

그네는 재미로 즐기기도 하고 높이뛰기를 겨루는 경기도 한다. 흔히 단오날에는 그네뛰기 대회가 열리는데 상품으로는 주로 여성의 노리개나 비단, 포목 등이 있다. 승부는 그네가 높이 올라가는 것으로 판가름난다. 이때 그네의 높이를 재는 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그네 앞 적당한 거리에 긴 장대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방울을 매달아 그네가 앞으로 높이 솟았을 때 장대에 매달린 방울을 차서 방울소리의 크고 작음을 가지고 승부를 가린다 또 하나는 그네의 발판에 긴 줄자를 매달아 그네가 높이 올라갔을 때 그 높이를 재는 방법이다.

씨름 --------------------------------------------------------

씨름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기예의 하나로 두 사람이 샅바나 띠 또는 바지의 허리춤을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어 상대방을 먼저 땅에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하는 민속놀이이자 운동경기이다.
한자어로는 각저, 각력, 각희, 상박이라고도 부른다.
풍물놀이가 백성들의 기쁨을 나타내기 위해 때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연주되는 것처럼 씨름은 사회의 경사스러운 일에 수시로 행하여져 왔다. 따라서 단오 이외에 상원(정월 보름), 삼짇날, 초파일, 백중날, 한가위, 중양일 같은 명절날에 기쁨을 나누기 위해 씨름을 하였다.
또한 봄부터 쉴 새 없이 바쁘다가 농한기를 맞으면 고된 몸과 정신적인 긴장을 풀기 위해 씨름을 즐겼다.
씨름에 대한 기록은 <동국세시기> <경도잡기>에 있다. 단오날 젊은이들은 남산의 왜장 (지금의 예장동) 이나 북악산 신무문 뒤에 모여 씨름을 하며 승부를 겨루었다. 씨름의 기술로는 안걸이, 밭걸이, 둘러메치기 등 여러 자세가 있으며 힘이 세고 손 움직임이 민첩하여 자주 이기는 사람은 '도결국'이라 한다. 중국사람들은 씨름을 본따 고려기, 또는 요교라 하여 즐긴다.

창포에 머리감기----------------------------------------------

단오가 되면 민간에서는 음식을 장만하여 창포가 무성한 못가나 물가에 가서 물맞이 놀이를 하며, 창포 이슬을 받아 화장수로도 사용하고 창포를 삶아 창포탕을 만들어 그 물 에 머리를 감기도 했다. 그러면 머리카락이 소담하고 윤기가 있으며 빠지지 않는다고 한 다. 또 몸에 좋다 하여 창포 삶은 물을 마시기도 했다.

단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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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를 삼아 머리에 꽂기도 하였으며 양쪽에 붉게 연지를 바르거나 비녀에 수(壽), 복(福) 자를 써서 복을 빌기도 하였다. 연지를 바른 것은 붉은색은 양기를 상징하므로 악귀를 쫓는 기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익모초와 쑥 뜯기 ---------------------------------------------

일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단오날 중 오시가 가장 양기가 왕성한 시각이므로 이 때를 기해 농가에서는 익모초와 쑥을 뜯는다. 여름철 식욕이 없을 때 익모초즙은 식욕을 왕성하게 하고 몸을 보호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쑥은 뜯어서 떡을 하기도 하고 창포탕에 함께 넣어 삶기도 하는데 귀신을 물리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농가에서는 쑥을 뜯어 말렸다가 홰를 만들어 들에서 일할 때 불을 붙여놓고 담배불을 당기는 데 사용하였다.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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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아 많은 열매가 많이 맺기를 기원하는 '나무시집보내기' 풍습이 있는데 특히 단오 무렵이면 대추가 막 열리기 시작하는 계절이므로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아 대추풍년을 기원하였다. 이를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 한다.

 

 

6 월 의 세 시 풍 속




유두(물맞이):경상도 지방에서는 오늘날에도 유두를 물맞이라 부른다.



















유두절식인 밀쌈과 수단

. 유두 ------------------------------------------------------------

음력 6월 보름으로 유둣날이라고도 한다. 이 날은 일가 친지들이 맑은 시내나 산간폭포에 가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후 가지고 간 음식을 먹으면서 서늘하게 하루를 보낸다. 이것을 유두잔치 (유두연)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여름에 질병을 물리치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 풍속 은 신라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고려 희종 때의 학자 김극기의 <김거사집>에 "동도 (경주)의 풍속에 6월15일 동류수에 머리를 감아 액을 떨어버리고 술 마시고 놀면서 유두잔치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유두'란 일반적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준말에서 생 긴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편 신라 때 옛말의 뜻을 취한 이두로 표기한 것으로 보는 설도 있다. 소두(梳頭), 수두(水頭)라고도 표기하였는데 수두란 물마리(마리는 머리의 옛말)로서 '물맞이'라는 뜻이다. 오늘날에도 신라의 옛 땅인 경상도 지방에서는 유두를 물맞이라고 부른다. 이 날 아침 각 가정에서는 유두면, 밀전병, 수단, 건단 그리고 피,조,벼,콩 등 여러 가지 곡식을 차려놓고 고사를 지내는데 이를 '유두천신'이라고 한다. 농가에서는 연중 농사가 잘 되게 하여 달라고 농신에게도 고사를 지낸다. 이 때 사당에 올리는 벼,콩,조를 각각 유두벼, 유두콩, 유두조라고 한다. 이 날 사당에 유두천신하고 나서 한 집안 식구가 단란하게 유두면, 수단, 건단, 상화병 등 여러가지 음식을 먹는다.

특히 농촌에서는 밀가루로 떡을 만들고 참외나 기다란 생선 등으로 음식을 만들어 논의 물꼬와 밭 가운데 차려놓고 농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면서 고사를 지낸다. 그 다음에는 자기 소유의 논, 밭 하나 하나 마다에 음식물을 묻음으로써 제를 마치게 된다. 이렇듯 유두는 새로운 과일이 나고 곡식이 여물어 갈 무렵 몸을 깨끗이 하고 조상과 농심에게 정갈한 음식물로 제를 지내며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우리 민족의 오랜 풍속 중의 하나이다.

유두잔치(유두연) ------------------------------------------

유두연에 대해서는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 <경도잡지> <농가월령가>에 기록이 있다. 유두날 술을 마시면 액막이가 된다고 해서 모여 술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유두연'이라 한다. 고려 가요 동동에 6월 보름을 노래한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두를 의식한 것은 오래이고 본격적인 더위에 앞서 머리를 감고 정결하게 해서 여름의 질병을 극복하려는 의도였음을 알 수 있다. 유두연을 베풀 때 떡을 치고 주연을 베풀어 흥겹게 노는 일도 있고 각 가정에서는 여러 가지 음식을 해먹는다.

수단 ---------------------------------------------------------

설날의 흰떡과 비슷한데 그보다 좀더 가늘고 좀 도톰하게 자른다. 맵쌀가루를 쪄서 길게 빚어 둥근 떡을 만든 다음 잘게 썰어 구슬 같이 작게 만든다. 이것을 꿀물에 넣어 얼음에 재워 두었다가 제사도 지내고 먹기도 하는데 '수단'이라 부른다. 때로는 찹쌀가루로 만들기도 하는데 물에 넣지 않은 것을 '건단'이라고 부른다.

유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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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로 구슬같은 모양을 만들어 오색으로 물들인 후 세 개씩 포개어 색실을 꿰어 몸에 차거나 문에 매달면 재앙을 막는다고 하였다. 참밀의 누룩으로 만들면 '유두국'이라고도 한다.

복날 ---------------------------------------------------------

음력 6월과 7월 사이에 들어있는 세 번의 절기로 첫 번째 복날을 초복, 두 번째 복날을 중복, 세 번째 복날의 말복이라 한다. 초복은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십간 중 일곱번째 날), 중복은 네 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로부터 첫 번째 경일이다.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삼복기간은 여름철 중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로 몹시 더운 날씨를 가리켜 '삼복더위'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 연유한다.

복날에는 보신을 위하여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여 먹는다. 중병아리를 잡아서 영계백숙을 만들어 먹거나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다 하여 팥죽을 먹기도 한다. 한편 아이들이나 부인네들은 참외나 수박을 먹으며 어른들은 산간계곡에 들어가 물에 발을 담궈 더위를 피하기도 한다. 해안지방에서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며 더위를 이겨내기도 한다.

복날과 관계가 있는 속신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복날에 시내나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고 한다. 이러한 속신 때문에 복날에는 아무리 더워도 목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초복날 에 목욕을 하였다면 중복날과 말복날에도 목욕을 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복날마다 목욕을 해 야 몸이 여위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복날에는 벼가 나이를 한 살씩 먹는다고 한다. 벼는 줄기마다 마디가 셋 있는데 복날마다 하나씩 생기며 이것이 벼의 나이를 나타낸다고 한다. 또한 벼는 이렇게 마디가 셋이 되어야만 비로소 이삭이 패게 된다고 한다.

한편 '복날에 비가 오면 청산 보은의 큰애기가 운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충청북도 청산과 보은이 우리나라에서 대추가 많이 생산되는 지방인 데서 유래한 속설이다. 대추나무는 복날마다 꽃이 핀다고 하는데 복날에는 날씨가 맑아야 대추열매가 잘 열리게 된다. 그런데 이 날 비가 오면 대추열매가 열리기 어렵고 결국 대추 농사는 흉년이 들게 된다. 따라서 대추농사를 많이 하는 이 지방에서는 결혼비용과 생계에 있어서 차질이 생기기에 이를 풍자해서 만든 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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