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김삿갓의 방랑삼천리

淸潭 2007. 12. 4. 16:39

影浸綠水衣無濕


 

立石峰에서의 시 짖기 내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空虛스님은 김삿갓을 환희에 넘친 눈으로 바라보며

다시 한 수를 읊는다.


 

      그림자가 푸른 물에 잠겼건만 옷은 젖지 않고

      影浸綠水衣無濕


 

공허스님의 시에는 禪味가 넘쳐흘렀다.

그림자가 물에 잠겨도 옷은 젖지 않는다는 말은 그 얼마나 기발한 詩想인가.

그러나 김삿갓의 화답도 그에 못지않게 멋이 들었다.


 

     꿈에 청산을 누볐건만 다리는 고달프지 않네.

     夢踏靑山脚不苦


 

말이 떨어지자마자 척척 받아 넘기는 김삿갓의 비상한 재주에

공허스님은 三歎四歎을 마지않으며 또 한 수를 읊는다.


 

     청산을 사고 보니 구름은 절로 얻은 셈이고

     靑山買得雲空得


 

김삿갓의 거침없는 화답.


 

     맑은 물가에 오니 물고기가 절로 따라 오네.

     白水臨來魚自來


 

공허스님은 돌 한 덩어리를 굴리며 다시 읊는다.


 

     산에서 돌을 굴리니 천년 만에야 땅에 닿겠고

     石轉千年方到地


 

김삿갓이 즉석에서 대구한다.


 

     산이 한 자만 더 높으면 하늘에 닿았으리.

     峰高一尺敢摩天


 

공허스님은 거기까지 어울리다가 感興을 억제할 길 없는지 김삿갓의 손을 덥석 잡는다.

 "삿갓선생! 우리가 이제야 만난 것이 너무 늦었어요.

허나 내 오늘 이런 기쁨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술을 좀 준비해 가지고 왔소이다."

하면서 바랑 속에서 술과 안주를 내어놓는다.


 

그래서 김삿갓은 입석봉 상상봉에서 삼라만상을 굽어보며 뜻하지 못했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스님이 권하는 대로 몇 잔을 거듭 마신 김삿갓은 흥에 겨워 古詩 한 수를 읊었다.


 

     장부는 반드시 지기를 만나게 되는 법

     한 세상 유유히 군말 없이 살고 지고.

     丈夫會應有知己

     世上悠悠安足論


 

이 시는 옛날 시인 張謂가 喬林禪師라는 高僧을 만났을 때의 기쁨을 노래한 시였다.

공허스님은 그 시의 뜻을 대뜸 알아듣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行雲流水와 같은 김삿갓의 人生行脚이 오히려 부러운 듯 그 역시

張謂의 시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화답하는 것이었다.


 

      술이 있으면 얼추 취하는 그대가 부럽고

      돈이 없어도 근심 안 하는 그대가 부럽소.

      羨君有酒能便醉

      羨君無錢能不憂


 

그야말로 변죽을 두드리면 복판이 울리는 酬酌이었다.

이날 밤 그들은 달을 바라보며 별을 바라보며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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