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재연 장수기 `귀환 신고합니다`
신미양요 때 뺏겨 … 136년 만에 귀국
이날 오전 서울 경복궁 옆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해병대 군악대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는 가운데 가로 4.15m, 세로 4.35m의 대형 군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런 삼베천에 '帥(수)'라고 적은 간단한 모양, 그래서 '수자기'라고도 불린다. 참석자들은 군기에 거수경례를 했다. 단국대 김원모(한미관계사) 명예교수는 "당시 국기가 없던 조선에 이 장수기는 국기이자 주권의 상징이었다"며 "개항을 택한 일본이 쇄국정책을 고수한 조선을 이후에 식민지배하며 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르게 된다. 신미양요는 그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는 어재연 장군의 4대손 어재선(56)씨, 한동대 토머스 듀버네이(47) 교수 등도 참석했다. 미국인인 듀버네이 교수는 이번 장수기 장기 대여의 일등공신이다. 한국학 전공자인 그는 84년부터 경주.포항 등지에서 교편을 잡아 왔다. 듀버네이 교수가 장수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12년 전 신미양요를 연구하면서부터. 장수기가 한국에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당시 클린턴 대통령, 현 부시 대통령, 미 해사박물관 등에 수차례 서한을 보냈다. 듀버네이 교수는 "이들은 '미 해군의 용맹을 나타내는 유물이라 반환이 어렵다'는 사무적 입장을 내놨지만 나는 '오히려 그 아래서 장렬히 전사한 조선군의 용맹도 드러낸다'는 답신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문화재청과 함께 장수기 반환에 힘썼고, 장기 대여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전리품은 반환하지 않는다는 미국 법이 개정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해 일단 장기 대여 형식을 취했다"며 "이를 첫걸음으로 장수기가 영구 반환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수기는 보존.수복을 거친 뒤 내년 3월부터 국립고궁박물관.인천광역시립박물관.강화박물관(2009년 개관 예정)에 차례로 전시된다. 권근영 기자 ◆신미양요(辛未洋擾)=1871년 6월 미 로저스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조선에 통상을 요구한 사건. 1853년 일본 개항을 요구한 페리 제독의 흑선보다 더 규모가 큰 함대였다. 당시 강화도 광성진서 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 600명이 이에 대항해 싸웠으나 350여 명이 전사했다. 이를 조선에선 신미양요, 미국에선 '48시간 전쟁' 혹은 '사라진 전쟁'이라 부른다. 전투에서 압승했으나 조선 개항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신미양요 이후 대원군은 각지에 척화비를 세우며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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