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 군중집회 … `82년 함성` 그친다
경성운동장 → 서울운동장 → 동대문운동장
내달부터 철거 시작
내달부터 철거 시작
"저 잿골 서방님하고 경성운동장에 야구 구경 가셨어요."(이광수의 '흙'에서) "경성운동장에서 법전과 축구 시합이 있어서 올라가게 되는데 … 그때 반가이 뵙겠습니다."(심훈의 '상록수'에서) 1925년 경성운동장이란 이름으로 설립돼 82년간 서울 시민과 동고동락한 동대문운동장이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한국의 최고 문인인 이광수와 심훈이 소설에서 묘사할 정도로 동대문운동장은 서울의 명물이었다. 이 명물이 세월의 변화에 따라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다. 17일 개막해 27일까지 열리는 '제41회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를 끝으로 서울 시민들은 동대문운동장과 작별하게 된다. 서울시는 다음달 동대문운동장의 철거에 들어가 내년 3월까지 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대신 운동장 터에는 2200억~3000억원을 들여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물결 무늬의 2층짜리 건축물을 세운다. 주변은 공원으로 가꿀 계획이다. ◆일본 왕세자 결혼기념으로 설립=25년 10월 15일 일제는 한국 최초의 종합경기장으로 경성운동장의 문을 열었다. 뒷날 히로히토(裕仁) 일왕이 되는 일본 왕세자의 결혼을 기념한다는 명목이었다. 일본 왕세자의 결혼 축하용으로 일제가 동대문운동장을 만든 것이다. 총 면적 2만2700평, 총 공사비는 당시 돈으로 15만5000원, 수용 인원 2만5800명. 당시로서는 동양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 이후 시민들은 큰 경기가 열릴 때마다 운동장을 가득 메우고 열띤 응원을 펼치며 식민지 시대의 울분을 분출했다. 야구에선 28년 연희전문 소속이던 이영민 선수가 경성의전과의 야구시합에서 경기장 설립 이후 첫 홈런을 때려 화제가 됐다. 서울과 평양의 대표팀이 맞붙는 경평축구 대회에선 '한국 축구의 대부'로 불리는 김용식 선수가 맹활약했다. ◆김구 선생의 장례식도 열려=일제 말기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을 비롯한 친일단체가 전시 동원대회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어 서울 시민을 전쟁터로 내모는 데 이용했다. 해방 뒤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는 우익과 좌익 단체들이 번갈아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었다. 특히 백범 김구 선생과 인연이 깊다. 45년 12월 백범과 임시정부 요인들의 귀국을 환영하는 '임시정부 환국봉영회'가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리자 서울 시민 3만 여명이 몰려 '김구 선생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49년 7월 백범의 장례식에선 운동장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60년대 이후 스포츠 중심으로=서울시는 59년 새로 단장한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문을 열었다. 이후 가끔 반공 궐기대회나 새마을운동 보고대회 같은 관제 집회가 열리기도 했지만 동대문운동장은 명실상부한 한국 스포츠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84년 잠실운동장이 생기고 난 뒤 이름을 동대문운동장으로 바꾸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축구장은 2003년 청계천 주변 노점상을 집단 수용한 풍물시장으로 변했다. ◆"동대문운동장에 바친 내 청춘"=현재 야구장에서 검표원으로 일하는 조성욱(53)씨에겐 지난 35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72년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펼쳐진 군산상고의 대역전극이 그를 야구에 빠져들게 했다. 당시 군산상고는 부산고에 1-4로 뒤지다 9회 말 4점을 뽑아 승부를 뒤집는 명승부를 보여줬다. 이후 조씨는 학교 수업도 빼먹어가며 야구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75년 고교 졸업 뒤에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매표소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고교야구 인기가 워낙 높을 때라 오전 9시 경기를 하면 6시부터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입장료가 500원이었는데 3000~4000원에 파는 암표 장사가 성행했죠."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다는 소식에 쓸쓸하다는 그는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는 방법은 없나. 어쨌든 야구가 좋아 야구장에 청춘을 바쳤으니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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