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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1-안평대군

淸潭 2007. 9. 8. 21:06
 
몽유도원도 1-안평대군

 

 

 

 안평대군(安平大君) : 태종18년(1418년) - 단종1년(1453년)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첫째가 문종이고,

둘째가 수양대군(후에 세조)이며, 셋째가 안평대군으로 이름은 용(瑢),

자는 청지(淸之), 호는 비해당(匪懈堂), 낭간거사, 매죽헌(梅竹軒)이다.

 

세종이 서거하자 첫째인 문종이 즉위하였으나 병약하여 정사에 틈이 생기자,

둘째인 수양과 안평사이에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문종이 2년만에 세상을 뜨면서 아들인 단종(12살)이 왕위에 오르자

수양은 권람, 한명회등을 주축으로 하여 안평대군측의 황보인,김종서를 제거하고

결국 반역을 도모했다 하여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했다가 후에 교동으로

귀양지를 옮겨 결국 사사(賜死)되고 말았다.

 

단종역시 강요에 못이겨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었으나

1456년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등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실패하자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으며 숙부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단종 복위를 시도하였다가 발각되자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봉되었다가

교사(絞死) 되었다.

 

안평대군은 35세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갔지만, 시, 그림, 글씨에 뛰어나

삼절이라 불렸으며, 거문고에도 능했다.

글씨는 조맹부의 필체를 따랐으나 더욱 발전시켜 중국에서 온 사신들로부터

"조맹부에게 배웠으나 조맹부보다 났다"는 찬사를 받았다.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의 발문과 [세종대왕영릉신도비], [청천부원군심온묘표],

[임영대군묘표]등 금석문이 남아 있으며,

<소원화개첩>은 국보 제238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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