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경기 의왕시 고천동 W산업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불이 난 원인을 밝히기 위해 화공약품이 쌓여 있는 창고를 둘러보고 있다. 이 회사에서는 9일 오후 화재가 발생해 6명의 할머니 직원이 숨지고 2명이 크게 다쳤다. 의왕=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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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 안을 가득 메운 화학물질 냄새 때문에 일을 끝내고 나면 언제나 골이 지끈거렸다.
최근에는 일감이 늘어 매일 밤늦게까지 남아 잔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손자손녀들 손에 용돈 몇 푼 쥐여 주겠다는 생각에 졸음을 쫓으며 일감을 잡았다. 나이가 들어도 자손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애쓰던 한국의 보통 어머니, 보통 할머니들이었다.
9일 발생한 경기 의왕시 고천동 W산업 화재 사고의 희생자 6명은 모두 60대 여성이었다. 생활비를 보태겠다며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출근하던 이들은 매일 오전 8시경 출근해 오후 10∼11시까지 잔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10일 안양시 한림대병원에 시신이 안치된 변귀덕(60) 씨의 아들 강모(31) 씨는 어머니가 숨진 뒤 어머니 방에서 자신의 이름이 쓰인 적금통장을 발견했다.
강 씨는 “아버지도 일을 해서 생활이 어렵지 않았는데 왜 힘든 일을 계속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돌아가신 뒤 내 이름이 적힌 적금통장을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며 울먹였다.
변 씨의 남편 강모(63) 씨는 먼저 간 아내를 떠올리며 “매일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일을 했어. 하도 잔업을 많이 해서 매일 아프다고 하더라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강 씨는 “왜 그렇게 일을 많이 시켰는지…잔업만 안 했어도 살았을 텐데…”라며 오열했다.
김금중(61) 씨는 고된 일에 힘들어 하면서도 퇴근할 때면 늘 생기가 돌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홉 살 손자가 그를 반겨주기 때문이었다.
김 씨는 둘째 아들 내외를 대신해 두 살배기 손자를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키워 왔다. 손자에게 장난감과 과자를 사 주는 재미로 하루 10시간이 넘는 힘든 일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화재로 그는 손자의 재롱을 볼 수 없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이날 경기 안양시 메트로병원 영안실을 찾은 김 씨의 여동생(54)은 “그렇게 말렸는데도 손자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며 고된 일을 계속 다니더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화재로 숨진 윤순금(60) 씨는 20여 년 전 남편을 먼저 저세상에 보낸 뒤 홀로 두 남매를 키워낸 억척스러운 어머니였다. 윤 씨가 환갑을 맞는 10월에 가족 여행을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아들 이모(32) 씨는 일을 말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울부짖었다.
이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 혼자서 누나와 저를 키웠다”며 “일을 그만두라고 해도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며 그렇게 고집을 부리시더니…”라며 가슴을 쳤다.
이들뿐 아니라 사망자의 유족들은 “아직 충분히 일할 수 있다”며 출근하는 어머니, 할머니를 말리지 못한 죄책감에 하루 종일 고통스러워 했다.
한편 경찰 조사결과 화재 발생 당시 W산업 작업장 내부에는 세척용 시너 등 인화물질을 비롯해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 종이 박스 등이 곳곳에 쌓여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전기 합선, 또는 정전기로 발생한 불꽃이 작업장 안에 쌓여 있던 인화 물질에 옮아붙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또 화재 초기에 이 회사 남자 직원들이 소화기로 직접 불을 끄려다 실패하면서 사상자가 늘어났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불이 난 W산업은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사상자들에 대한 추후 보상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왕=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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