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엄마, 안 오셔도 이해해요`

淸潭 2007. 6. 15. 10:23
`엄마, 안 오셔도 이해해요`

 

19년 전 미국 입양 공기영씨 생모 찾으려 서울서 연주회
목메게 오보에 불었지만
꽃 놓인 지정석 끝내 빈 자리

 

13일 오후 8시 서울 호암아트홀. 작은 체구의 스무 살 청년이 오보에를 들고 무대로 나왔다. 수줍어하는 듯한 태도의 새뮤얼 기영 네멕(20.한국이름 공기영)은 객석에 인사를 하며 1열 18번 자리를 곁눈질로 봤다. 그곳에는 자기가 기다리던 '그분' 대신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19년 만에 찾아온 조국에서 꼭 보려고 했던 엄마의 얼굴을 끝내 볼 수 없었다.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오보에 소리에 힘이 빠졌다.

새뮤얼은 친어머니를 찾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은 입양아다. 1987년 11월 부산의 한 입양기관에 맡겨졌고, 다음해 5월 미국에 입양됐다. 이후 뉴저지주 미들랜드파크의 한 고등학교 이사장으로 있던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 오보에는 11살 때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 입학, "음악회를 열어 엄마를 찾아 보겠다"며 한국에 왔다. 그의 뿌리를 찾아주자며 의기투합한 줄리아드의 친구 4명도 함께 내한해 앙상블을 연주했다.

이날 꽃다발이 놓였던 자리는 그의 친어머니가 앉았어야 할 곳이다. 새뮤얼을 입양시킨 후 새 가정을 꾸린 어머니는 "남편.자식이 이 사실을 전혀 몰라 조심스럽다"며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있는 곳을 확인한 대한사회복지회의 강신혜 과장은 "친어머니가 아들이 찾아왔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이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연주회 전에 이 소식을 들은 새뮤얼은 "엄마를 놀라게 하거나 엄마의 삶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며 "부담이 된다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 이해한다"고 아쉬워했다. 그리고 연주회 마지막 곡으로 가곡 '가고파'를 넣었다. 그는 "엄마를 위해 선택한 곡을 엄마가 듣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내가 태어난 곳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방문은 새뮤얼의 오랜 꿈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년월일과 사진, 입양기관이 지어준 한국 이름만이 적힌 서류를 가지고 미국으로 입양됐다. 새뮤얼은 "친어머니가 당시 23세이며 얼굴이 예쁘시다는 것밖에는 몰랐다. 어릴 때부터 한국과 어머니에 대해 궁금해 하며 자랐다"고 말했다.

대한사회복지회는 새뮤얼에게 친어머니의 이름을 가르쳐 줬다. 그는 "저를 만나지 않기로 한 어머니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어머니 이름이 언론에 나가지 않게 조심해 달라"고 특별히 당부하기도 했다. "부모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새뮤얼은 16일 고향 부산을 돌아보고 17일 미국으로 돌아간다. 줄리아드를 졸업한 후 오보에 연주자로 평생 음악과 함께하는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그는 "현재 줄리아드에는 한국에서 입양된 친구가 8명 있다. 이들 모두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데 다함께 한국에서 연주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