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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

淸潭 2007. 2. 22. 17:57

첫 마음

 

그는 40대 힘없는 가장입니다.
구조조정 물살에 쓸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직장인이었어요.
속이 타면 애꿎은 담배만 뻑뻑 피워댈 뿐, 희망도 즐거움도 없었죠.
무거운 업무에 시달리고, 아랫사람, 윗사람 눈치보며 이리저리 치이고 눌려서
그는 점점 작아져만 갔어요.
그의 아내 역시 불행했습니다.
"휴, 또 적자야."
구멍만 가계부도 싫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구차한 살림도 싫었죠.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자꾸만 팍팍해져 갔어요.
이렇게 살려고 결혼한 건 아닌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저래 늘어가는 건 짜증과 주름살뿐,
짧은 대화조차도 부부의 식탁을 떠난 지 오랩니다.

결혼 기념일, 아침부터 토라져 얼굴을 붉히고 있는 아내에게
그는 아주 특별한 선물을 주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당신! 나랑 같이 갈 데가 있어."
아내는 기쁜 마음으로 남편을 따라 나섰습니다.
내심 아내는 백화점 쇼핑이나 근사한 외식을 기대했지만,
그가 아내를 데리고 간 곳은 백화점도, 레스토랑도 아니었어요.
얼음집, 쌀집, 구멍가게가 죽 늘어서 있고,
게딱지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곳은
부부가 신혼살림을 차리고 장밋빛 달콤한 꿈을 꾸던 달동네였습니다.

부부는 세 들어 살던 쪽방을 찾아갔습니다.
그 창 너머로 부부가 본 것은
초라한 밥상 앞에서도 배가 부르고,
아이의 재롱만으로도 눈물나게 행복한 아내와 남편...
바로 10년 전의 자신들이었습니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아내가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어요.
"여보, 우리가 첫마음을 잊고 살았군요."
"그래, 첫마음"
첫마음.
그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