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수사모

[스크랩] 불교상식 41~50

淸潭 2006. 9. 17. 18:54

 

41. 도량(道場)  (불도를 닦는 곳..)

42. 원적(圓寂)  (입적-열반의 의미...)

43. 가사(袈裟)  (출가 승려의 법의...)

44. 아라한(阿羅漢)  (수행 완성한 사람...)

45. 시다림(屍茶林)  (죽은 사람에게 설법하는 것...)

46. 오체투지(五體投地)  (교만함 버리는 인사법...)

47. 합장(合掌)  (신뢰와 공경의 인사법...)

48. 불교기(佛敎旗)=오색기(五色旗)(상호,가르침.상징...)

49. 방생(放生)  (죽음에 처한 생명 구제하는 것...)

50. 보살(菩薩)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

 

41. 도량(道場)

     불도를 닦는 곳

 

도량(道場)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우선, 보리도량(菩提道場)으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곳이라는 뜻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중인도 부다가야에 있는 보리수 아래의 금강좌를 가리킨다.

그러나 특정한 건물이나 장소에 한정되지 않고,

불도를 수행하는 곳, 또는 불도를 성취한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도량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원(寺院)의 별칭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사원의 명칭과 관련, 중국에서는 초제(招提), 절(寺), 도량(道場) 등이 기록에 나온다.

우선 후위의 태무제는 424년 가람을 창건하고 초제(招提)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후 수나라 양제는 613년 나라안의 모든 절을 도량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했기 때문에

절을 도량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나라에 이르러서는 다시 절로 다시 환원되게 된다.

공간적인 개념을 넘어서 깨달음을 성취하는 동기로서 작용하는

모든 것을 도량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관정도량(灌頂道場), 수륙도량(水陸道場) 등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인왕도량, 미타도량, 관음도량, 백좌도량 등의 이름이 보인다.

궁중에서 불사를 행하는 장소를 내도량(內道場)이라고도 하고, 내사(內寺)라고 했다.

임제종에서는 특히 운수승(雲水僧)이 수행하는 장소만을 도량이라고 한다.

다양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도량(道場)은 도를 닦는 곳이란 의미이다.

여기서 도는 물론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한다.

정리하면, 공간적으로는 사찰, 즉 불·법·승 삼보가 있으며

불자들의 신행공간인 사찰이 도량으로서 가장 많이 지칭된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하겠다는 모임이나 법회도 도량이라 부른다.

따라서 세상 어느 곳 하나, 도량 아닌 곳이 없으며, 도량 아닌 법회가 없다.

다만 그곳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행하느냐가 문제이다.

 

42. 원적(圓寂)

     입적-열반의 의미

 

지난 3월29일 서암스님이 원적(圓寂)했다.

원적은 입적(入寂) 또는 열반(涅槃)을 의미한다.

모든 덕(諸德)이 원만(圓滿)하고, 모든 악(諸惡)이 적멸(寂滅) 한다는 뜻에서

원적으로 표기한다.

원래는 모든 무지(無知)와 사견(私見)을 버리고 깨달았다는 뜻이었지만,

그 뒤 스님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 변했다.



경전에는 ‘나는 원적(圓寂)을 구하여 욕염(欲染)을 제(除)하다’〈보적경〉고 하였고,

‘위가 없는 법왕은 오래도록 원적(圓寂)에 들었다’〈종륜론술기〉는 내용이 있다.

원적, 입적, 열반이외에 죽음을 의미하는 불교용어로는

멸(滅), 적멸(寂滅), 멸도(滅度), 적(寂), 택멸(擇滅), 이계(離繫), 해탈(解脫) 등이 있다.

다양한 단어가 있지만, 대부분의 뜻은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꺼 버리고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를 완성한 경지를 의미한다.

불교에서 죽음과 관련된 단어들을 보면, 대부분 깨달음을 완성했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

따라서 죽음 자체를 슬퍼하지는 않으며, 깨달음의 완성으로서의 죽음을 고찰한다.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멸진(滅盡)해서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를 완성한 경지로서 죽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님의 입적을 보면서 불자들은 평소 스님이 행한 수행의 모습과

그 과정을 통해 깨친 진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29일 봉암사에서 원적한 서암스님은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종단의 큰 어른이다.

항상 수행에만 힘썼으며, 스스로 그 모범을 보였다.

 

43. 가사(袈裟)

     출가 승려의 법의

 

가사(袈裟)는 출가 승려가 입는 법의(法衣)의 하나다.

산스크리트어 kasya의 음역으로 적갈색 또는 아름답지 않은 탁한 색을 뜻한다.



원래 인도에서는 날씨가 더워 하의(下衣)위에 직접 입는 옷이었으나,

중국과 한국, 일본 등에서는 추워서 가사만을 입을 수 없으므로

장삼을 입고 가사를 걸치게 됐다.

대부분 왼쪽 어깨로부터 오른쪽 옆구리에 걸쳐 두른다.

 

부처님께서는 출가 승려의 소유에 대한 모든 집착을 매우 경계했다.

의복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평상복을 분소의(糞掃衣)라 정했다.

분소의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화장실을 청소할 때 입는 옷이란 뜻으로

똥 분(糞), 제거할 소(掃), 옷 의(衣)자로 구성돼 있다.

죽은 사람의 옷이나 쓰레기장에 버린 옷을 골라서

천조각을 모아 만든 남루한 누더기 옷이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가섭존자는 평생 분소의만 입은 두타(頭陀)제일의 제자였다.



많은 제자들이 분소의만 입기 곤란해서 부처님은 의식용 예복과 외출복,

계절에 따라 입는 내의 등 삼의(三衣)로 출가승려의 의복을 제한했다.

단 비구니는 오의(五衣)를 입도록 허용했다.

부처님께서 3벌의 옷과 1벌의 발우, 즉 삼의일발(三衣一鉢)을

비구의 전재산으로 삼게 하신 것은 수행승의 청빈을 강조한 가르침이다.



삼의의 명칭은 내의를 안타회,

청강 포살 등을 행할 때 입는 옷을 울다라승,

거리를 나갈 때 입는 옷을 승가리(僧伽梨)라 불렀으며,

보통 가사란 이 승가리를 칭한다.

가사는 통가사라 해서 하나의 천 조각으로 만든 가사에서부터

5·7·9·11·13·15·17·19·21·23·25조 가사 등 여러 가지가 있다.

 

44. 아라한(阿羅漢)

     수행 완성한 사람

 

아라한(阿羅漢)은 산스크리트 arhan을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

줄여서 나한(羅漢)이라고 한다.

응공(應供), 무학(無學), 이악(離惡), 살적(殺敵), 불생(不生)이라고도 번역한다.

응공은 마땅히 공양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며,

무학은 더 배울 것이 없는 것,

이악은 악을 멀리 떠났다는 의미로,

살적은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불생은 미혹한 세계에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표현한다.



초기 불교의 최고의 성자를 가리키는 뜻으로 번뇌를 완전히 끊어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마땅히 공양받고 존경받아야 할 성자라는 뜻이다.

이 경지를 아라한과(阿羅漢果),

이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아라한향(阿羅漢向)이라 한다.

초기 불교에서는 붓다를 아르하트(arhat: arhan의 주격)라고도 하였고,

고대 인도의 여러 학파에서도 존경받을 만한 수행자를 아르하트라고 하였다.



자이나교에서는 지금도 성자를 아르하트라고 한다.

그러나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는 부처와 아라한을 구별하여,

아라한은 부처의 경지에 미치지 못하는 소승의 성자라고 격하시켰다.

아라한의 유래는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녹야원에서

부처님과 함께 수행한 다섯 수행자에게 가장 먼저 설법을 했다는

초전법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다섯 사람이 부처님과 함께 생활하고 원시적인 교단의 형태를 이루게 되었으며,

이후 이들은 차례대로 모두가 정각을 얻게 됨으로써

부처님을 포함해 여섯 사람의 아라한이 생겼다고 한다.

초기 불교에서 아라한은 부처님과 같은 사람을 가르켰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부처님의 별칭인 ‘응공’이라고도 함께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부파불교에 이르러서는 아라한이 부처님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지 않고

불제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계위가 되었다.

 

45. 시다림(屍茶林)

    죽은 사람에게 설법하는 것

 

시다림(尸茶林)은 죽은 이를 위해 장례전에 행하는 의식이다.

원래 인도의 시타바나에서 연유한 말이다.

시타바나는 추운 숲으로 인도 사람들이 시체를 버리는 곳이었다.

왕사성 옆에 있던 곳으로 죽은 시신을 이 숲에 버리면

독수리 떼들이 날아와 먹어 치우는 조장(鳥葬)의 풍습이 행해진 곳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뜻이 바뀌어 망자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을

시다림이라 하고 이를 시다림 법문이라 한다.

한문으로는 ‘屍茶林’이라고도 쓰고 ‘尸陀林’이라고도 한다.



시다림은 〈석문의범〉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영단과 오방번을 설치한 뒤

오방례를 올린다. 그리고 무상계를 일러주고 입관하기 전에 삭발과 목욕의식을 행한다.

경은 보통 〈금강경〉, 〈반야심경〉 등을 독경하고 아미타불이나 지장보살을 염송한다.



삭발 목욕, 세족으로 유체를 청결히 하고 속옷과 겉옷을 입혀 주는 착군(着裙)과

복건을 쓰는 착관(着冠)을 행한 후 입관한다.

영결식 이후 화장장이나 매장장에 이르는 의식을 함으로써 시다림은 끝나게 된다.



오방례(五方禮)란 동, 서, 남, 북,

중앙에 계신 부처님께 예배 드리며 영가를 부탁하는 것이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극락세계가 일정한 장소 한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방세계 어느 곳이나 부처님 없는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시달리다’도 시다림에서 유래했다.

인도의 시타림은 일종의 노천 공동묘지였다.

근원적인 공포심과 각종 질병이 창궐하는 장소로

수행자는 고행의 장소로써 이곳에서 시체 썩는 악취와

각종 질병을 견뎌내야만 하는 곳이다.

이 시타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곧 고행을 의미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시달림이라는 말이 유래된 것이다.

 

46. 오체투지(五體投地)

     교만함 버리는 인사법

 

불교에서의 인사법은 다양하다.

합장도 있고, 반배도 있으며, 큰절도 있다.

두 손을 모아서 예를 올리는 합장과

반배와는 달리 큰절은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해야 한다.

오체투지는 불자가 아닌 일반인이 하는 큰절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오체투지란 몸의 다섯 부분을 땅에 닿게 하는 인사법이다.

한없이 자신을 낮춤으로서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예법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있는 교만과 거만을 떨쳐 버리고

하심(下心)의 의미를 되새기는 방법이다.

몸의 다섯 부분,

즉 오체(五體)란 이마, 왼쪽 팔꿈치, 오른쪽 팔꿈치, 왼쪽 무릎, 오른쪽 무릎을 말한다.

오체를 땅에 닿게 하고 최대한 몸을 낮추어 엉덩이 부분을 발꿈치와 닿게 하면

사람의 몸은 한없이 낮아지게 된다.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자신의 몸을 지저분한 땅에 닿게 함으로써,

몸과 땅을 하나로 만들게 하는 인사법이다.

순서는 대개 무릎을 끓는 동작을 먼저하고

오른손부터 왼손 순으로 땅에 닿게 하고,

마지막으로 이마를 땅에 댄다.

이때 발은 펴고, 오른발을 아래로 왼발을 겹쳐 올려놓아 발 모양이 ‘X’자 모양이 되게 한다.

삼보에 대한 예경의 방법으로 하는 이 인사법은

인도의 접족례(接足禮)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존경하는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는 오체투지가 이루어진 후에

두 손을 뒤집어 약간 들어 올려서 손으로 발을 받드는 것이다.

깊은 공경의 마음을 몸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체투지의 동작으로 큰절을 해보면 이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신체가 유연한 어린아이와는 달리

허리나 몸이 굳거나 배가 나온 어른일수록 처음에는 쉽지 않다.

그러나 마음의 교만함을 떨쳐 버리고 계속적으로 연습하면 극복할 수 있다.

 

47. 합장(合掌)

     신뢰와 공경의 인사법

 

운동경기를 보거나 각종 연예인 시상식을 보면,

동작 하나로 그 사람이 가톨릭 신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자신의 머리와 가슴에 십자가를 긋는 것이다.

이를 가톨릭 신자들은 성호(聖號)라 한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 성호 긋기를 일상생활에서 습관처럼 행한다.

가톨릭 신자에게 성호가 있다면, 불자들에게는 합장(合掌)이 있다.

합장은 글자 그대로 두 손바닥을 모아서 경례한다는 뜻이다.

열 손가락과 좌우 손바닥을 얼굴과 가슴 앞에 모아서

부처님 또는 보살을 공경 예배하는 불교의 예법이다.

이러한 합장은 정숙한 자세로 자신의 진실과 상대에 대한

신뢰와 공경을 나타내는 불자들의 인사예절이기도 하며,

스님에게 또는 불자들끼리 인사할 경우 이렇게 한다.



불교에서의 합장은 단순한 인사예절을 넘어 수행의 자세이기도 하다.

부처님을 공경 합장하고 높으신 덕을 찬탄하며,

이를 믿고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오른손은 신성한 손, 왼손은 부정한 손이라고 구분해 사용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 양손을 합하는 일은 인간 내면의 신성한 면과 부정한 면을 합일시킨다는 표현이다.



합장할 때는 두 손바닥과 손가락을 합하여 어긋나거나 틈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또 팔꿈치를 들어 올려서도 안 된다.

손목은 가슴 한 가운데의 움푹 들어간 곳에서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떨어지도록 하고,

두 팔은 겨드랑이에서 약간 떨어지게 한다.

손끝은 코끝의 높이 정도로 하고 고개는 반듯이 세워 마음을 한 곳에 모은다.

반배를 할 때는 합장한 채로 허리를 60도 정도 구부렸다 편다.

 

48. 불교기(佛敎旗)=오색기(五色旗)

     부처님 상호와 가르침 상징



불교도 불교를 상징하는 불교기(佛敎旗)가 있다.

모양은 청색, 황색, 적색, 백색, 주황색 등 5색을 가로와 세로로 배치했다.

가로 세로 비율은 3:2다. 의미는 부처님의 상호(相好)인

모발과 몸, 피, 치아, 가사의 색과 그 가르침을 상징한다.

청색은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불법을 구하는 정근을 상징한다.

부처님의 모발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황색은 찬란한 부처님의 몸빛과 같이 변하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나타낸다.

건장한 몸매에 확고부동한 부처님의 태도가 금강에 비유되는 이치와 같다.

적색은 더운 피의 색깔로서 항상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정진에 힘쓸 것을 표현한 것이다.

백색은 깨끗한 마음으로 온갖 번뇌를 맑게 하는 청정을 뜻한다.

부처님 치아의 색을 상징한다.

주황색은 부처님의 성체를 두른 가사색으로 온갖 유혹과 굴욕

그리고 수치스러움을 참고 견디며 성내지 않는 인내를 상징한다.

가로로 그은 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미하며,

세로로 그은 선은 그 가르침이 영원히 변함없는 것을 뜻한다.



1950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제1회 세계불교도우의회에서 회기(會期)로 제정됐으며,

이후 세계 각국에서 사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66년 8월 11일 개최된 제13회 조계종 임시중앙종회에서 논의돼,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후 8월 12일부터 ‘조계종기’로 공식 게양됐으며,

이후에는 각종 불교행사에서 종파를 초월해 게양하고 있으며,

불상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49. 방생(放生)

     죽음에 처한 생명 구제하는 것

 

정월 보름이면, 방생법회를 봉행하는 사찰이 많다.

방생(放生)의 사전적 뜻은 ‘죽어 가는 물고기나 짐승들을 놓아주어 살려주는 일’이다.

즉, ‘죽음에 처한 생명을 구제하는 것’이다.



생명존중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불교에서의 방생은

죽음에 이른 생명을 살려주는 행위뿐만 아니라,

생명체를 괴롭히지 않으며, 생명체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적극적인 행위까지 포함하는 자비덕목이다.

방생은 불살생(不殺生) 계율에 비해 적극적인 작선(作善)이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는 것은 ‘산 것은 놓아주고

죽게 된 것은 구제하라’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방생을 생명 존중의 적극적인 지계행(持戒行)으로,

생명의 유기적 관계를 설명해주는 연기론적 실천덕목으로 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방생은 잡혀 있는 물고기를 놓아주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병든 사람을 치료해 주고, 고아를 돌보고, 무의탁 노인을 보살피며,

굶주린 이에게 음식을 보시하는 것이 곧 방생이다.

무분별한 개발로 황폐해진 자연을 되살리는 것도 방생이며,

이러한 의미를 널리 알리는 것 또한 중요한 방생이다.



그러나 자칫 이렇게 소중한 의미를 가진 방생법회가

오히려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최근 불교계에서는 방생의 본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방생물의

종류, 장소, 시기 등에 대해 철저히 고민하며,

더 나아가 환경과 인권, 생명을 위한 방생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적극 실천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또한 방생법회 이후 고아원을 비롯해 복지시설을 방문하거나 교도소,

군법당을 방문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자비를 실천하기도 한다.

 

50. 보살(菩薩)~1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불교에서는 보살의 명호를 가진 분이 많다.

또 대승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 나라의 절에서는 여신도를 ‘보살’이라고 부른다.

보살의 의미는 무엇인가.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보디사트바(Boddhi-sattva),

팔리어 보디사타(Bodhi-satta)의 말을 한자로 음사한 보리살타(菩提薩陀)의 준말이다.

의미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나 일반적으로는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다.

한단계 더 나아가 보살은 ‘지혜화 덕성과 행동이 모두 탁월하여

현재는 아직 부처가 아니지만,

반드시 부처가 되도록 확정되어 있는 후보자’란 의미를 갖고 있다.

보살관의 등장은 대승불교가 성립하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부처님이 취한 이타(利他)의 실천적 입장을 강조하고 중시한데서 기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살이란 ‘깨달음을 사회에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

이라고 대승불교에서는 이해한다.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모든 불교인은 보살이며,

또 마땅히 보살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구제에 앞서 남의 구제를 위해 힘쓴다는 것이

바로 보살의 진정한 실천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 이는 남을 구제하는 자체가 자신을 구제하는 것이다.

즉 이타(利他)가 곧 자리(自利)이며, 자리가 곧 이타인 셈이다.

자신의 것은 남에게 아낌없이 다 주고

자신은 알몸을 땅속에 감추고 있는 분이 지장보살이다.

또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자신의 성불은 미루겠다는 분이 바로 지장보살이다.

모든 보살이 그렇듯이 보살은 항상 자신보단 중생을, 나보단 남을 먼저 생각한다.

자비구현 및 중생구제의 실천적 종교로서

불교는 바로 모든 불자가 스스로 보살이 된 것을 강조한다.

즉 여기서 보살은 단순히 신앙의 대상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 자신임을 강조한다.
 

 

보살(菩薩)~2

보살은 보리살타(菩提薩陀; Bodhisattva)의 준말로서 覺有情(각유정),

大士(대사), 高士(고사), 개사(開士)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보살 즉 각유정이란 뜻 속에는 세  가지 해석이 있다.

그 처음은 '깨친 중생'

둘째는 '깨치게 하는  중생'

그리고 세 번째는  '깨칠 중생'이 그것이다.


즉 중생은 중생이로되 이미 불법의 진리를 깨친 중생으로 하여금


깨치도록 유도하는 중생, 그리고 그와  같은 보살과 같이 우리들도


앞으로 깨치게 될 부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중생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보살은 대승사상에서 유래되는 것으로서 위로는  보리 즉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이른바  대승의 이상적 인간상이다. 

그러므로 대승경전에는 무수한 보살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1. 관(세)음(觀(世)音) 보살~아미타불의 비서로서 자비 희사로서

                           중생에게 봉사하는 분이다
 

2. 대세지(大勢至) 보살


3. 문수(文殊) 보살~문수는 지혜의 상징이고
 

4. 보현(普賢) 보살~ 보현은 행원의 대명사다
 

5. 지장(地藏) 보살~지옥을 건지지 못하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하여

                    항상 지옥문전에 이르러 눈물을 그치지 않고 구제하는 보살이다.
 

6. 제(諸) 보살
 

     이외에도 수많은 보살들이 있어 팔만 사천  보살을 말하기도 하나,

     우리 나라에서는 형상을 모시고  받드는 보살들은 대개 이상이라 하겠다.


     천수경에서 나오는 천수 보살, 여의륜  보살, 대륜 보살, 관자재 보살,

     정취 보살, 만월 보살,  수월 보살, 군다리 보살, 십일면  보살 등의 명호는

     모두 관세음 보살의 덕화를 칭송하여 붙이는 이름들이라 하겠다.

     인로왕(引路王) 보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맞아 극락 세계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보살이다.

     일체청정대해중(一切淸淨大海衆) 보살.....

     모든 보살을 통틀어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출처 : 수덕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글쓴이 : bany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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