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첩》 4수〔四友帖 四首〕
성호전집 제6권 / 시(詩)
일찍 심고 부지런히 기르니 느지막이 꽃피웠네 / 早種勤培晩始開
꽃의 마음이야 본디 시절을 살펴서 오는 것 / 花心本自候時來
천연의 빛깔을 다 발휘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 從渠發盡天然色
심상한 비와 이슬에는 재촉받지 아니하니 / 不受尋常雨露催
국화를 읊은 것이다.
봄날을 다투는 복숭아와 오얏이야 정말 밉지마는 / 生憎桃李競華辰
고고한 꽃이 같은 무리 부끄러워함을 믿지 않노라 / 不信孤芳恥等倫
본디 헤아려 성취시킴에는 공력이 부족지만 / 自是財成欠功力
따스한 방에 먼저 봄이 온 줄을 누가 알겠느냐 / 誰知煗閤有先春
매화를 읊은 것이다.
오래도록 푸르른 자태가 참 사랑스러운데 / 酷愛遲遲晩翠姿
그 마음을 철인만이 알고서 인정하였네 / 心期獨許哲人知
봄바람 불 때에 모습은 등한히 보아 넘기다가 / 等閒閱歷春風面
눈을 이고도 우뚝한 가지를 눈여겨 바라보네 / 著眼來看戴雪枝
소나무를 읊은 것이다.
같은 성기끼리 서로 찾음은 각자가 다 다르니 / 性氣相求自不同
정신의 사귐이 추운 날 대나무 숲에 있도다 / 神交只在歲寒叢
누가 능히 무성한 대나무에 흥취를 붙였는가 / 疇能託興猗猗盛
평생토록 문채 찬란한 군자의 공부로 삼으리라 / 把作平生有斐功
대나무를 읊은 것이다.
[주-D001] 사우첩(四友帖) :
조선 중기의 문신 이신의(李愼儀, 1551~1627)가 소나무, 국화, 매화, 대나무를 소재로 하여 〈사우가(四友歌)〉라는 시조(時調)를 지었는데, 그의 5대손인 이상규(李相奎)가 이것을 가지고 서첩(書帖)으로 만들고 화공(畫工)을 시켜 그림을 그리게 한 것이다. 이신의는 자가 경칙(景則), 호가 석탄(石灘),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민순(閔純)의 문인이다. 1582년(선조15)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관직에 진출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300명을 이끌고 왜군과 싸워 공을 세웠다. 이후 고부 군수, 남원 부사, 해주 목사 등 여러 곳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1617년(광해군9)에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함경도 회령(會寧)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고, 나중에 전라도 흥양(興陽)으로 유배지를 옮겼다. 1623년(인조1)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형조 참판과 형조 참의를 역임하였고, 정묘호란 때 왕을 호종하여 강화로 가던 중 병으로 죽었다. 《星湖全集 卷56 四友帖跋》
[주-D002] 본디 …… 알겠느냐 :
‘헤아려 성취시킨다[財成]’는 말은 《주역》 〈태괘(泰卦) 상(象)〉에 “천지가 교합하는 것이 태이니, 임금이 이것으로 인하여 천지의 도를 헤아려 성취시키고, 천지의 적합한 공효를 도와서 백성들을 다스린다.[天地交泰 后以 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태괘는 열두 달 가운데 1월에 해당하는데, 이 시기에 피어나는 매화가 천지의 도를 헤아려 성취시키는 공력은 없지만, 봄에 가장 먼저 피어나 봄을 알리는 공력이 있음을 표현한 것인 듯하다.
[주-D003] 그 마음을 …… 인정하였네 :
철인(哲人)은 송나라의 재상 범질(范質, 911~964)을 가리킨다. 그가 종자(從子) 고(杲)를 경계한 시에 “곱디고운 정원의 꽃들은, 일찍 피기에 또한 먼저 시들고, 더디고 더딘 시냇가의 소나무는, 무성하게 늦도록 푸르름을 간직한다.[灼灼園中花 早發還先萎 遲遲澗畔松 鬱鬱含晩翠]”라고 하였다. 《宋文鑑》
[주-D004] 같은 …… 다르니 :
뜻이 맞는 부류끼리 유유상종함을 뜻한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같은 소리끼리 서로 호응하고 같은 기운끼리 서로 찾는다.[同聲相應 同氣相求]”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5] 평생토록 …… 삼으리라 :
《시경》 〈기욱(淇奧)〉에 “저 기수 물굽이를 굽어다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도다. 아름답게 문채 나는 군자여, 깎고 다듬고 쪼고 간 듯하네.[瞻彼淇奧 綠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라는 구절에서 온 말로, 대나무의 절개를 본받아 평생의 공부로 삼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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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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