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 십영(林下十詠) / 석주 권필
석주집 제7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이른 봄 숲의 나무 담담히 고고하고 맑은데 / 早春林木澹孤淸
무수한 산새들은 오르내리며 울어대누나 / 無數山禽下上鳴
어젯밤에 무단히 남쪽 시내에 비 내리니 / 昨夜無端南澗雨
시냇가에 다소의 풀싹이 돋아났도다 / 澗邊多少草芽生
위는 조춘(早春)이다.
성근 울타리 낮고 낮은 두세 집 / 疎籬短短兩三家
물은 지당 가득해 개구리 소리에 개 짖는다 / 水滿池溏吠亂蛙
산객이 꿈 깨니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 / 山客夢回山鳥語
새벽바람은 벽도화 재촉해 피우는구나 / 曉風催發碧桃花
위는 모춘(暮春)이다.
봄이 저물어 가도 비가 아니 오니 / 春事闌殘雨不來
들판 논엔 물이 없어 누른 먼지 이누나 / 野田無水起黃埃
늙은 농부 새벽에 문을 열고 나와 / 老農淸曉開門出
산 아래서 물줄기 찾느라 낮에도 안 돌아온다 / 山下尋泉午未回
위는 ‘가뭄 걱정〔悶旱〕’이다.
시냇가에 푸른 풀은 점차 자라고 / 澗邊靑草漸看長
섬돌 위 한가한 꽃은 흡족히 향기롭다 / 階上閑花滿意香
봉호에 발 걷으니 종일 내리는 비 / 蓬戶捲簾終日雨
작은 지당 그득한 푸른 물에 오리가 목욕한다 / 小池鳧浴綠汪汪
위는 ‘반가운 비〔喜雨〕’이다.
세속을 피하느라 연래에 시내 안 건너고 / 避俗年來不過溪
소당은 백운에게 나눠 주어 깃들게 했어라 / 小堂分與白雲棲
맑은 창 정오가 되도록 오는 사람이 없고 / 晴窓日午無人到
오직 있나니 나무 위에서 우는 산새들뿐 / 唯有山禽樹上啼
위는 무위(無爲)이다.
솔개와 물고기 태화 중에서 날고 뛰노니 / 鳶魚飛躍太和中
만물이 부침하는 건 한 기운의 움직임일세 / 萬物浮沈一氣融
봄비가 그칠 때 뜰의 풀은 푸르니 / 春雨歇時庭草綠
풀의 이 생의는 사람과 같아라 / 這般生意與人同
위는 관물(觀物)이다.
숲 아래는 맑은 시내요 시냇가에는 정자 / 林下淸溪溪上亭
정자 가엔 무수히 어지러운 봉우리 푸르다 / 亭邊無數亂峯靑
유인은 술 취해 누웠고 해는 저무는데 / 幽人醉臥日西夕
만학에 부는 솔바람에 술이 절로 깨누나 / 萬壑松風吹自醒
위는 계정(溪亭)이다.
이미 이내 신세를 산림에 부쳤으니 / 已將身世寄山樊
속객이 연래에는 문에 이르지 않누나 / 俗客年來不到門
네 벽에는 도서 쌓였고 등잔 하나 / 四壁圖書燈一盞
이 중에 참된 뜻엔 말을 잊었노라 / 此間眞意欲忘言
위는 독락(獨樂)이다.
이 마음은 색도 아니요 공도 아닌데 / 此心非色亦非空
방촌 속에 만 가지 이치 융회되었어라 / 方寸之間萬理融
본지풍광을 뉘라서 알 수 있으리오 / 本地風光誰解得
본래부터 모두 적연한 중에 있는 것을 / 向來都在寂然中
위는 관심(觀心)이다.
세간의 만사를 모두 잊어버리니 / 世間萬事摠相忘
안씨의 단표 그 일미가 유장하여라 / 顔氏簞瓢一味長
맑은 새벽 책을 덮고 눈을 감노니 / 淸曉卷書聊合眼
주렴 너머 가랑비 향을 사를 만하여라 / 一簾微雨可燒香
위는 존양(存養)이다.
[주-D001] 숲의……맑은데 :
당나라 진자앙(陳子昂)의 〈감우(感遇)〉에 “임하(林下)에 살며 병든 때 오래인데, 물과 나무는 담담히 고고하고 맑아라.〔林居病時久 水木澹孤淸〕” 하였다.
[주-D002] 울타리 낮고 낮은 :
육유(陸游)의 〈소원(小園)〉에 “좁디좁은 사립문에 낮고 낮은 울타리, 산가는 분수에 따라 정원과 연못 가졌구나.〔窄窄柴門短短籬 山家隨分有園池〕” 하였다.
[주-D003] 시내 안 건너고 :
진(晉)나라 때 혜원법사(慧遠法師)가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 주석하면서 절 앞의 시내를 건너 속세에 발을 디디지 않았는데 여기를 지나기만 하면 문득 호랑이가 울었다. 하루는 도연명(陶淵明), 육수정(陸修靜)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를 넘자 호랑이가 우니 세 사람은 크게 웃고 헤어졌다는 고사가 있다. 이를 호계삼소(虎溪三笑)라 한다. 《東林十八高賢傳》
[주-D004] 솔개와……뛰노니 :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2장에 “《시경(詩經)》에서 ‘솔개는 하늘 높이 날고 물고기는 못에서 뛰논다.’ 하였으니, 상하에 이치가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 하였다. 태화(太和)는 천지에 가득한 화기이다.
[주-D005] 풀의……같아라 :
북송(北宋)의 성리학자 주돈이(周敦頤)가 살던 곳의 창 앞에 풀이 무성히 자라도 베지 않기에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나의 의사와 같다.〔與自家意思一般〕” 하였는데, 이 말은 풀의 ‘살려는 뜻〔生意〕’이 자신의 살려는 뜻과 같기 때문에 베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돈이는 풀을 통해서 천지가 생생(生生)하는 뜻을 보았던 것이다. 《近思錄 卷14》
[주-D006] 이……잊었노라 :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에 “이 중에 참된 뜻이 있는데, 표현하고자 하니 벌써 말을 잊었어라.〔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하였다.
[주-D007] 본지풍광(本地風光) :
자기 심성의 본래 모습을 가리키는 선가(禪家)의 말이다.
[주-D008] 적연(寂然)한 중 :
심성의 본체를 형용한 것이다. 《주역(周易)》〈계사전 상(繫辭傳上)〉10장에 “역은 사려가 없고 작위가 없어 적연히 움직이지 않다가 감응하면 마침내 천하의 일에 통한다.〔易 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하였다.
[주-D009] 안씨(顔氏)의……유장하여라 :
안빈낙도의 삶을 형용한 것이다. 단표(簞瓢)는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빈한한 생활을 뜻한다. 공자가 그 제자 안연(顔淵)을 두고 “어질다, 안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로 누항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어질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라고 하였다. 《論語 雍也》 송나라 도학자 나종언(羅從彦)의 〈독락재(獨樂齋)〉에 “나를 인정하는 이 적음을 아니 참으로 자신이 가소로우나 그래도 안자(顔子)의 단표가 있어 일미가 유장하도다.〔自知寡與眞堪笑 賴有顔瓢一味長〕”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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