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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알기 쉽게 세상 모든 이웃 마음 다해 사랑하라

淸潭 2024. 12. 13. 20:20

[이광택의 그림 에세이 붓으로 그리는 이상향] 아름답고 알기 쉽게 세상 모든 이웃 마음 다해 사랑하라

이광택2024. 12. 13. 00:05
 
■ 러브레터·나무를 심는 사람·별…
“소설 쓸 때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쉽게
독자의 고통과 어려움 사라져야”
■ 그림도 딱 마찬가지
“진실 가까워도 해석이 힘들다면
우물바닥 그림자 처럼 허황된 것”

법정스님이 해인사에서 수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장경각 앞을 지나는데 어느 노보살님이 “스님. 도대체 팔만대장경은 어디에 있습니까?” 물었습니다. 스님은 “방금 나오신 장경각 안에 있지 않습니까?”하니 노보살님은 “아. 그 빨래판 같은 거요?” 하더랍니다. 그때 스님은 우리 불교의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시대 살아 있는 언어로 불교를 전하지 않는 한 팔만대장경의 소중한 말씀도 한낱 빨래판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법정스님의 조카 박성직씨가 쓴 ‘마음하는 아우야!’ (녹야원) 안의 한 구절. ‘마음하다’는 말은 국어사전에는 없는, 스님이 만든 말인 것 같다.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다’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무난할 듯싶다.

이광택 작 ‘전세 사는 가난한 시인 가족’

법정스님은 이후 학자나 고승들만 읽었던 한자로 된 불교경전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불교 대중화에 힘쓴다. 1960년 통도사 운허스님을 중심으로 한 7명의 편집위원들과 ‘불교사전’ 편찬을 시작으로 1962년에는 ‘선가귀감’을 번역하고, 1967년 동국역경원 편찬부장을 맡으며 ‘법화경’, ‘숫타니파타’ 등을 한글로 번역했다. 그리고 마침내 1972년부터 고 서경수 동국대 교수와 함께 2년여에 걸쳐 ‘우리말 불교성전’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갑자기 ‘러브레터’, ‘철도원’으로 유명한 일본의 소설가 아사다 지로가 생각난다. “어렵게 쓰면 평론가가 모이고 쉽게 쓰면 독자가 모인다.”라는 말이 우리 문학계에 있어서일까? 술술 읽히는 강점 덕분인지 큰 사랑을 받는 작가가 아사다 지로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 규정한다.

“소설 쓸 때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아름답게, 알기 쉽게 쓰는 것이다. 아름다운 소설은 읽는 순간 독자의 고통과 어려움을 사라지게 한다. 알기 쉽다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예술은 최고 형태의 오락이다. 중졸 독자가 이해할 수 없다면 그건 가짜 예술이다.”

세상에는 정말 쉽게 쓰면서도 감동을 선사하는 문학작품이 많고도 많다. 지지난번에 소개한 ‘우동 한 그릇’(구리 료헤이)이 그렇고 아, 알퐁스 도데의 ‘별’은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가. 가난한 양치기 청년이 품은 주인집 스테파네트 아가씨에 대한 순수한 마음. 또한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 노인은 얼마나 존경스러운가. 이기주의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위해, 공동의 선을 위해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나무를 심은 불굴의 정신과 실천. 기적과 같은 그 위대한 결과로서의 숲!

하지만 상식 같은 얘기지만 맹물에 조약돌을 넣고 끓인 국 맛같이, 쉽기만 하고 울림이 없는 작품들은 또 얼마나 많으며 읽어내기가 괴로운가. 그렇다고 너무 어려워 이해가 되지 않는 난해한 작품도 사양하고 싶다. 예술인들과 비평가들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교신되는 비밀의 상형문자 같은 작품들. 그래서일까. 언젠가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얘기했다.

“제아무리 훌륭한 문학작품이어도 독자에게 ‘요단강의 방언’처럼 들린다면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림도 딱 마찬가지이겠다.

아무런 고민 없이 오직 표현 기법에만 매달린 증류수 같은 작품도 문제이지만, 제아무리 미술적 진실의 핵심으로 육박해 들어갔다고 해도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우물 바닥에 남은 그림자같이 허황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훌륭한 예술적 태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저러하게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느니 법정 스님의 성품을 상기하면 어떨까 싶다. 즉, 위와 같이 오랜 시간 번역과 저술에 그토록 정성을 보태고서도 당시 스님은 “고려대장경, 팔만대장경 판목에 누가 이름을 새긴 사람이 있는가?” 물으며 저자로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잘 가는 사람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도덕경’ 21장)고 하더니! 이 얼마나 오렌지처럼 향긋한 모습인가! 그리고 스님이 남긴 ‘마음하다’란 말의 의미도 곱씹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이웃들을 향해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

“예술하는 마음, 마음하는 예술이여!” 합장.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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