閑寂詩(한적시)
- 牧隱(목은) 李穡(이색),
夜冷狸奴近(야냉리노근)
天晴燕子高(천청연자고)
殘年深閉戶(잔년심폐호)
淸曉獨行庭(청효독행정)
차가운 밤, 고양이는 가까이 붙고
맑게 갠 하늘 제비는 높게 난다.
남은 해 깊이 문은 닫아걸고,
맑은 새벽 홀로 뜰을 걸으리라.
□ 以信 曰
시의 배경은 서늘해진 가을밤입니다. 고양이는 추위를 못 이겨 자꾸 사람 곁으로 찾아듭니다. 겨울나기를 위해 제비는 하늘 높이 강남 가는 길을 서두릅니다. 이색은 고양이와 제비를 빌려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고양이기에 이색의 곁을 저렇게 지키고 있습니다. 외롭고 추운 건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빨리 느끼는 것 같습니다.
나뭇잎이 지듯, 모든 것들이 훌훌 떠나 버리고 남은 생애가 하잘것없어서 사립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닫아건 사립문 안에서 맑은 새벽에 홀로 뜨락을 거니는 이색의 심사는 외로운 주변 환경과 달리 새벽공기처럼 맑고 깨끗해 보입니다.
시끄러운 세상과 담을 쌓기 위해 닫은 사립문은 안에서 걸어 잠근 것이니, 밖에서 열 수 없습니다. 지금 사립문 안에서는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색이 사립문을 걸어 닫고 봤던 것은 겨울 너머에 있는 봄소식일까요? 가을 뒤에 오게 될 겨울 이야기일까요?
겨울이 돼도 따스한 봄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단순히 스키장이나 눈썰매장 같은 곳에 가서 겨울을 즐기며 다가올 봄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봄을 보는, 차가운 겨울을 넘어서 생명력 넘치는 따스한 봄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어붙은 대지 속에서 약동하며 꿈틀대는 생명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일반적으로 도인(道人)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들을 신앙인(信仰人)이라고 부릅니다. 이색은 문을 걸어 잠그고도 문밖의 세계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색의 모습에서 도인의 풍모가 그득합니다.
‘殘年深閉戶(잔년심폐호) 淸曉獨行庭(청효독행정)’을 제 카톡 대문에 써 놨습니다. 마음의 봄을 기다리면서 이 시처럼 살아 보고 싶어서요. 제가 다녔던 대학교정의 개나리가 참 예뻤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그때를 기억해 봅니다.
그런데 대학 동기 공학도 중 목사가 된 이가 거의 없다고, 일설에 의하면 저밖에 없다고 합니다. 전기공학과 친구들이 딱 한 번 나갔던 친목 모임에서 이 현실을 제게 들려줬습니다. 이러저러한 길을 모두 거치면서, 목사가 되는 게 저에게는 봄소식이라 생각이 돼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칼럼집을 발간한 작가까지 됐습니다.
봄이 그리워 목사 직분을 받아들인 게, 제 삶을 이렇게 이끌어 갈지 진짜로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