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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사 12수 〔田家詞 十二首〕

淸潭 2024. 9. 6. 08:40

허백당시집 제1 / () / 성현(成俔)

전가사 12수 〔田家詞 十二首〕

 

봄기운이 고삐 풀려 온 하늘을 비상하니 / 靑陽縱翔寥廓

못물은 넘실넘실 얼음은 바삭바삭하여라 / 塘水溶溶氷拍拍

다순 바람은 버들 불어 가지마다 노란데 / 和風吹柳萬條黃

채장으로 소를 몰아 농사일을 시작하네 / 彩杖驅牛啓見作

다순 햇살은 붉은 여뀌 싹을 좋이 길러 주고 / 溫陽滋養紅蓼芽

눈 온 뒤 냉이잎은 갠 언덕에 파릇파릇하네 / 雪後薺葉敷晴坡

사방 이웃은 술 갖추고 대보름 밤에 모여 / 四隣杯盤聚元夕

동산에 뜨는 달을 보러 서로 왕래하는데 / 東山見月相經過

보름달은 무심히 스스로 와서 비추는지라 / 輪魄無心自來照

노인들은 해마다 풍년 조짐을 점치는구려 / 老叟年年占

이상은 1월을 읊은 것이다.

 

목숙은 땅 뚫고 나오고 물쑥은 짤막해라 / 蓿逬地蔞蒿短

천기가 다스워서 칩호도 열리려 하는데 / 蟄戶欲開天氣暖

고을의 높은 곳집에 봄 양곡을 살펴보니 / 邑中高廩省春糶

백성들은 거친 밥도 의지할 데가 없어라 / 萬口疏糲無處

올봄엔 보리를 꼭 제때에 심어야 하건만 / 今春來牟當及時

심자니 종자가 없고 갈자니 소도 없구려 / 欲種無種耕無資

구름 새로 아침 해가 온 들을 쏘아비추거든 / 雲間朝日射芳甸

흰 비늘이 번쩍번쩍 보습 위로 번득일 게고 / 玉鱗閃閃翻金犁

따스한 봄이 차례로 소식을 전해오거든 / 東君次第傳消息

홰나무 꽃도 황금빛으로 활짝 피우겠지 / 阿槐花發黃金色

이상은 2월을 읊은 것이다.

 

두견새 슬피 울고 새로 온 제비 춤출 제 / 杜宇哀吟新燕舞

백 척의 아지랑이가 높은 나무에 걸리거든 / 百尺遊絲高樹

이십사번 연화풍이 세차게 불어올 게고 / 二十四番楝花風

한 바탕 두 바탕 유협우도 흠뻑 쏟아지리 / 一陣兩陣楡莢雨

일기 화창한 때는 농사일이 한창 바쁘니 / 風日美時農正忙

술 싣고 봄놀이를 다닐 사람이 없고말고 / 無人載酒尋春塢

이서들은 분주히 황량한 마을에 외쳐대고 / 里胥雜遝呼荒村

살구꽃 창포잎이 지금 한창 무성한 때라 / 杏花菖葉今彌繁

농사일이 많아 농부들은 사방으로 나가서 / 村務紛紛人四出

모두 삼태기 삽을 들고 구름처럼 모이네 / 萬指畚鍤如雲屯

이상은 3월을 읊은 것이다.

 

온갖 꽃 다 져서 날리고 봄 일이 다 끝나니 / 百花飛盡春事畢

천기는 청화하고 꾀꼬리 소리도 하 고와라 / 天氣淸和鶯語滑

꿩 새끼가 숨는 곳은 늪 가운데 부들이요 / 乳雉窟穴澤中蒲

시골 사람의 생계는 산 위의 고사리로다 / 野人活計山上蕨

잠박 가득 잠든 누에는 닭의 속을 태우고 / 眠蠶滿箔燒鷄心

빽빽한 뽕나무밭 열 이랑은 어둠침침하네 / 十畝陰陰桑柘密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은 부평초가 흙에 붙어라 / 田龜半坼萍黏塊

천맥을 가서 보고 용골차 끌어다 물을 대누나 / 往覘泉脈牽龍骨

누에는 개어야 좋고 농사는 비가 와야 하니 / 蠶欲久晴農欲雨

아득한 저 하늘은 끝내 어느 쪽을 도울런고 / 主宰茫茫竟何寓

이상은 4월을 읊은 것이다.

 

계절 중의 남와라 만물이 모두 번성하고 / 節中南訛萬彙盛

느릅 버들 시골 마을에 해가 처음 길어라 / 楡柳村墟日初永

북쪽 마을 석류꽃은 짤막한 울에 비치고 / 北里榴花映短籬

남쪽 이웃 어린 대는 오솔길에 그늘졌네 / 南隣稚竹蔭歸徑

편평한 밭의 보리 이삭은 누렇게 익어가니 / 平丘綠浪着暗黃

왁자지껄 절구질에 보리떡이 향기로워라 / 杵臼紛紛芳餌餠

골목 어귀 그넷줄은 단오를 이미 지났고 / 鞦韆門巷過端午

모시 잎은 펄럭펄럭 흩어졌다 모였다 하네 / 苧葉飜飜散還聚

만 이랑 볏모는 푸른 구름을 헤친 듯한데 / 萬畝秧針翠撥雲

암비둘기 비 부르는 소리는 정히 고달파라 / 鳩婦喚雨聲正苦

이상은 5월을 읊은 것이다.

 

한낮의 태양 아래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니 / 日輪當午萬珠融

백 이랑 벼논 매기에 늙은이가 시름겨워라 / 鋤禾百畝愁老翁

논머리선 노래하고 논 끝에선 화답하고 / 田頭放歌田尾和

서쪽을 다 매고는 다시 동쪽으로 가누나 / 西耘已了復徂東

들밥 먹고는 벽돌 베고 풀 언덕에 눴노라면 / 罷支甎臥草隴

숲 그늘 침침한 대사에 훈훈한 바람 불어라 / 陰陰樹榭多薰風

훈훈한 바람이 불어 산비를 몰아오면은 / 薰風吹作山頭雨

흰 물결 세차게 흘러 땅도 보이지 않는데 / 白浪粼粼不見土

돌아올 땐 대삿갓 쓰고 소를 거꾸로 탄 채 / 歸來笠牛倒騎

갈대피리 한 소리에 해는 곧 저물어가네 / 蘆管一聲天欲暮

이상은 6월을 읊은 것이다.

 

장맛비가 막 걷히고 무더위가 한풀 꺾이니 / 積雨初收失炎暑

쓰르라미가 또 서늘한 가을 소리를 짓누나 / 鳴蜩又作涼秋語

동쪽 울에선 벽옥 같은 참외 따다 가르고 / 東籬碧玉割甘瓜

항아리엔 새로 빚은 기장술이 향기로워라 / 小甕淸香釀新黍

이웃집의 술자리엔 골목길을 따라 가서 / 比隣樽酒通前蹊

취하여 응얼응얼거리며 서로 부축하누나 / 醉歌嗚嗚爭扶携

이미 농가의 일 년 중 절반 일 해낸 터라 / 旣辦農家一半事

호미에 묻은 세 치의 흙을 다 씻어버리고 / 洗盡鉏頭三寸泥

서로 만나면 날이 어두워짐도 모르는 사이 / 相逢不識山氣昏

이슬은 어느새 가을 벼 이삭에 촉촉해지네 / 露華欲上秋禾痕

이상은 7월을 읊은 것이다.

 

흰 이슬은 소리 없이 꽃다운 풀을 말릴 제 / 白露無聲悴芳草

사람들은 저마다 정원의 붉은 대추를 따네 / 園巷人人剝丹棗

사연은 둥지 떠나고 기럭은 소식 전해오니 / 社燕辭巢雁傳信

처량해라 만물이 온통 시든 가을 모습일세 / 凄涼萬物秋容老

나락 꽃은 한들한들 서로 푸르고도 노랗고 / 稻華䆉稏交靑黃

들 빛은 붉은 구름 빛으로 점점 변해가네 / 野色漸變彤雲光

뗏머리 흰 붕어는 비로소 지느러미를 떨치고 / 槎頭銀始振鬐

갈대 밑의 노란 게는 막 까끄라기를 바쳤네 / 葦底紫蟹初輸芒

몸 한가롭고 먹을 것 있어 겸미를 먹으니 / 身閒有食食兼味

태평 시대 노인들이 우당을 노래하는구나 / 太平艾歌虞唐

이상은 8월을 읊은 것이다.

 

파란 무 잎은 연하고 토란은 통통 살찌고 / 蕪菁嫩葉芋魁肥

서리 흠뻑 내린 농가엔 처음 옷을 받누나 / 霜重田家初受衣

참새는 훌쩍훌쩍 날아 저녁 마당을 쪼아라 / 黃雀翩翩啄晩地

벼 곡식 수확하려니 날도 잠시 활짝 개었네 / 農欲刈時天少暉

낫 차고 수레 몰고 거친 언덕을 올라가서 / 腰鎌扶轂上荒阪

동쪽 논의 벼 싣고 서쪽 집으로 돌아오네 / 東皐載稻西家歸

자줏빛 국화는 띳집을 빙 둘러 활짝 피었고 / 紫菊開花繞

북소리 노랫소리 들판이 떠들썩하여라 / 歌鼓紛紛喧四野

막걸리 한 말에 닭 한 마리를 잡아 삶아서 / 一斗白酒一隻鷄

함께 신림을 향하여 추사에 제를 지내네 / 共向神林賽秋社

이상은 9월을 읊은 것이다.

 

양월이라 수가 꽉 차고 천지는 엄숙한데 / 良月就盈天地肅

오만 곡식 다 수확해 지붕처럼 높이 쌓였네 / 萬稼登場高似屋

추운 밤 절구질 소리는 흡사 천둥을 치는 듯 / 夜寒碓杵隱晴雷

백옥 같은 햅쌀밥은 향기가 물씬 풍기어라 / 浮浮炊白玉

부자는 조세는 적고 창고는 넘쳐흐르건만 / 富者少稅囷倉

가난한 자는 조세를 바치기에도 부족하니 / 貧者輸租反不足

가난한 집과 부잣집의 시름과 즐거움은 / 貧家富家愁與歡

단지 구구한 한 치의 창자에 달렸을 뿐이라 / 只在區區一寸腸

애써 호구지책 영위하느라 바쁜 가운데 / 黽勉餬口生理忙

또 설서를 입어 의상을 치장하게 되었네 / 又披雪絮粧衣裳

이상은 10월을 읊은 것이다.

 

해가 짧은 남지라 별은 묘성에 해당하니 / 日短南至星正昴

오만 구멍 거센 바람이 밤에 서로 일어나네 / 萬竅剛夜相攪

납전의 서설이 이미 삼백을 아뢰었으니 / 臘前瑞雪已三白

수십 일을 스며들어 보리를 잘 자라게 하리 / 漉連旬滋宿麥

훈훈한 토탑 방 아궁이의 등걸불은 다습고 / 融融土榻榾

석양 무렵 산 아래선 꿩 떼가 장난을 하네 / 山下夕陽戲群翟

가마솥에 삶은 콩은 연유처럼 보드랍고 / 釜中煮豆軟如酥

찬 숲의 지붕 모서리엔 연기도 외로워라 / 寒林屋角煙光孤

소 몰아 외양간에 들이고 콩 여물 먹일 제 / 驅牛登櫪莝菽荳

사자는 문밖에 와서 조세를 독촉하누나 / 門外使者來索租

이상은 11월을 읊은 것이다.

 

북녁 구름이 온 들을 덮어 흐리고도 추워라 / 朔雲擁野陰凌兢

남쪽 산 북쪽 산엔 모두 얼음이 반짝거리네 / 南山北山皆明氷

사람들은 자라처럼 움츠리고 방에 들앉아 / 人寒聚隩縮如鱉

깊은 숲 눈길에 땔나무할 일을 걱정하네 / 林深雪逕愁薪蒸

가옹은 계약서 펴보고 부인은 길쌈하는데 / 翁閱契券婦謀績

창지는 침침해라 흡사 구등의 불빛 같구려 / 紙窓翳翳篝明燈

납일을 만나서 새 잡고 토끼도 잡으니 / 磔禽搏逢嘉臘

사제단에 희생과 술이 다 준비되었네 / 蜡祭壇中牲酒合

새해 맞이하여 문득 전도를 밟을까 두려워 / 迎新却恐踵前途

우러러 구룡께 호소해 좋은 보답 기다리네 / 仰訴句龍待休答

이상은 12월을 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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