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속집 제1권 / 시(詩) / 이황(李滉)
사락정 시를 지어서 보내다 아울러 서문을 쓴다.
안음현(安陰縣)에 마을이 있으니, 그 이름을 영송(迎送)이라 한다. 산과 물은 맑고 고우며, 토지는 살지고 넉넉하다. 여기는 전씨(全氏)가 옛날부터 대대로 살던 곳인데, 시냇가에 정자를 지었는데 자못 그윽하다. 장인 권공(權公)이 귀양살이에서 돌아오자, 온 집안을 이끌고 남으로 가서 이 마을에 우거(寓居)하였다. 이 정자를 발견하고는 매우 기뻐하여 새벽에 가서는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기를 잊곤 하였다. 그러다가 서울에 있는 내게 글을 보내어, 정자 이름과 함께 그에 따른 시를 청하였다. 나는 그곳의 훌륭한 경치를 익히 들은 터라 한번 가 보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지 10년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촌에서 살면서 즐길 만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거기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것과 또 혼자서도 즐길 만한 것을 찾아본다면 농사짓기와 누에치기, 고기잡기와 나무하기의 네 가지가 있다. 그래서 정자 이름을 사락(四樂)이라 하고, 그에 따른 시를 쓴다.
농사짓기
나는 농가의 즐거움을 아니 / 我識田家樂
봄에 밭 갈면 흙 부수는 먼지가 이네 / 春耕破土烟
새싹은 단 비 뒤에 돋아나고 / 苗生時雨後
벼는 늦서리 오기 전에 익는다네 / 禾熟晩霜前
옥 같은 쌀은 나라의 조세를 채우고 / 玉粒充官稅
오지술동이는 마을 사람 잔치에 알맞네 / 陶盆會俗筵
이렇게 사는 것이 금인을 찬 사람이 / 何如金印客
근심과 걱정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과 비교해 어떠한가 / 憂患送流年
누에치기
나는 누에치는 집의 즐거움을 아니 / 我識蠶家樂
지난해에 누에 채반을 수리해 두었네 / 年前曲簿修
누에씨 물에 담그는 때가 닥쳐오면 / 光陰催種浴
잠 깨자마자 어린 뽕잎 따러 가네 / 眠起趁桑柔
온 식구들 따뜻이 입는 것 기쁜 데다 / 已喜全家煖
빚도 다 갚았으니 걱정 없네 / 無憂欠債酬
이렇게 하는 것이 부귀한 집 여인들이 / 何如紈綺子
아리땁게 차리고 질투하느라 근심하는 것과 비교해 어떠한가 / 嬌艷妬閒愁
고기잡기
나는 고기 잡는 집의 즐거움을 아니 / 我識漁家樂
사립문을 단 물가의 집에 사네 / 柴門住岸傍
물새와 고기들의 성정에도 익숙하고 / 禽魚慣情性
구름과 달, 맑은 물결과 함께 늙어가네 / 雲月老滄浪
술을 사오면 촌 술도 맛이 나고 / 喚酒村酤美
생선을 삶으면 시내 나물도 향기롭네 / 烹鮮澗芼香
이렇게 사는 것이 한 끼에 만 전(萬錢)어치 먹는 사람들이 / 何如萬錢客
망할 때에 화(禍)가 헤아릴 수 없던 것과 비교해 어떠한가 / 覆餗禍難量
나무하기
나는 나무꾼의 즐거움을 아니 / 我識樵人樂
산골 마을에서 살아간다네 / 生居洞裏村
서로 불러 구름 속 멀리 들어갔다가 / 相呼入雲遠
한 짐 가득 지고 어두워서야 산에서 나오네 / 高擔出山昏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은 사슴과 같고 / 愛伴心同鹿
자신의 모습을 잊는 것 원숭이와 같아라 / 忘形貌似猿
이렇게 사는 것이 명리를 꿈꾸던 자가 / 何如名利子
갑자기 평지풍파(平地風波) 당하는 것과 비교해 어떠한가 / 平地見波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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