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비해당(匪懈堂) 사십팔영(四十八詠)

淸潭 2024. 8. 30. 09:52

성근보선생집(成謹甫先生集) 제1권 / 시(詩) 박팽년(朴彭年) 등

비해당(匪懈堂) 사십팔영(四十八詠) 병인(幷引)

 

예전 사람들이 지은 시는 말은 유창해도 뜻을 말하는 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물을 읊는 자들이 공력을 전적으로 쏟지만 정밀한 데에 나아가기 어려운 것은, 시를 업으로 삼는 사람은 많으나 유능한 자가 적기 때문이다.

삼가 생각건대, 비해당(匪懈堂)은 주공(周公)과 공자(孔子)를 염두에 두고 하늘과 사람의 이치를 탐구하여, 호강에 익숙해져 있으면서 도덕과 기예는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나고 지체 낮은 선비들을 허여하였으나 문장(文章)은 분촌(分寸)까지 따지곤 하였다. 지금 이 사십팔영의 작품은 어찌 조선 200년 동안 없었을 뿐이겠는가. 이미 성정(性情)의 간사함이 없는 데에 근본을 두었으니 초목(草木)의 이름을 많이 아는 것 정도는 그 나머지 일이었다. 밝고 순박한 점은 미사여구를 일삼지 않는 장부다우며, 독특하고 기발한 솜씨는 참으로 식견이 넓고 옛것을 좋아하는 군자다웠다. 뜻을 말하였으나 말이 유창한 데에 그치지 않았고, 정밀한 데에 나아갔으나 어찌 공력을 다하기를 기다리겠는가. 이에 물이 많으면 물건이 모두 뜨고 기름이 비옥하면 빛이 더욱 화려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소자들아 어찌 시를 배우지 않느냐.”는 말을 듣고, 성인의 문하에서 “더불어 시를 말할 만하다.”라고 한 말을 사모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건만 어느덧 늙고 말았으니 어찌하겠는가. 훌륭한 글에 화답하려 하니 흉내나 내고자 하는 마음만 간절하였고, 마침내 형산(荊山)의 박옥(璞玉)이 곁에 있는 듯 부끄럽고 못난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분부를 받았으니 문장력이 없다는 것으로 변명하기가 어려워서 오언절구를 지어 격조 높은 잔치에 웃음거리를 제공하는 바이다.

시(詩)란, 간혹 직접 사물을 읊기도 하고 혹은 사물을 인하여 심정을 부치기도 하며, 혹은 마음속의 우울함을 드러낼 때 나오기도 하며, 혹은 아름다운 덕을 찬양할 때 발로되기도 한다. 그리고 남을 비유함으로써 자신을 반성하는 경우도 있고, 옛것을 생각함으로써 현실에 감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이 취지가 각각 같지 않고 말도 따라서 다르다. 마음속에 쌓인 것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진실로 교묘하고 옹졸함을 감추기가 어려우니, 그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한다면 거의 포용할 수 있는 도량이 있게 될 것이다. 삼가 짧은 서문을 곁들여서 지어 올려 감히 하찮은 정성을 다하는 바이다.

 

옛사람은 부귀라고 일컬었고 / 古人稱富貴

온 세상이 풍류라고 부르노라 / 擧世號風流

도리의 경지에서 벗어났으니 / 脫身桃李地

분분한 의론을 꽃은 부끄러워하리 / 物議花應羞

위는 봄이 가고 난 뒤의 모란(牧丹)을 읊은 것이다.

 

봄비 내리던 날 석 잔 술을 마시고 / 春雨三杯後

살짝 취한 채로 졸음 졸다가 / 微酡倚睡鄕

단꿈을 깨고 두 눈을 떠보니 / 覺來開兩眼

빙설 같은 꽃잎이 석양에 비치더라 / 氷雪映斜陽

위는 집 모퉁이에 핀 배꽃〔梨花〕을 읊은 것이다.

 

담을 기대 선 살구꽃이 해마다 / 年年倚墻杏

먼저 핀 꽃가지 사람을 향하네 / 先發向人枝

알맞게 내린 어젯밤 비를 맞고는 / 偏宜經宿雨

아침 햇살 받으니 정히 좋구나 / 正好得朝暉

위는 담장 위의 붉은 살구꽃을 읊은 것이다.

 

증자고도 시를 못 지었으니 / 子固不能詩

지을 줄 모른다고 상심할 것은 없으니 / 不能亦何傷

나는 유중영 그를 참으로 사랑하노라 / 我愛柳仲郢

향기 나는 옷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를 / 衣不喜薰香

위는 깊이 잠든 해당화(海棠花)를 읊은 것이다.

 

해마다 사륜각에서 지낼 때에는 / 歲歲絲綸閣

붓 들고 자주색 장미를 마주했었지 / 抽毫對紫薇

이제 와 꽃 아래서 술을 마시니 / 今來花下飮

가는 곳마다 따르는 것만 같아라 / 到處似相隨

위는 활짝 핀 자주색 장미를 읊은 것이다.

 

나는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자태를 사랑하노니 / 我愛歲寒姿

반쯤 피었을 때가 좋은 시기라네 / 半開是好時

피기 전에는 두려움이 있는 듯하더니 / 未開如有畏

핀 뒤엔 도리어 시들려 하는고야 / 已開還欲萎

위는 반쯤 핀 산다(山茶)를 읊은 것이다.

 

고결하기로는 매화와 같다 하지만 / 高潔梅兄行

곱기로는 혹 더 고울 수도 있어라 / 嬋娟或過哉

이 꽃이 우리나라에 많이 있으니 / 此花多我國

봉래라고 불러도 마땅하리로다 / 宜是號蓬萊

위는 눈 속에 핀 동백(冬柏)을 읊은 것이다.

 

자색이나 백색은 귀한 종자가 아니어서 / 紫白種非貴

붉은 것을 동쪽 나라에서 옮겨 왔노라 / 丹者來天東

선왕의 성덕이 멀리까지 미쳐 가서 / 先王聖德遠

바다는 편안하고 하늘엔 바람이 없네 / 海晏天無風

위는 일본(日本)에서 들여온 철쭉을 읊은 것이다.

 

천지 신령 내려 준 남쪽 나라 후손으로 / 后皇南國孫

대대로 전해 오며 청백 가문 되었다네 / 於世爲淸門

고향 떠나 천하다 말하지 말아 주오 / 離鄕休道賤

타고난 착한 덕에 남은 향기 있느니 / 秉德有餘芬

위는 이슬에 젖은 황등(黃橙)을 읊은 것이다.

 

골짜기에는 가벼운 남기가 감돌고 / 洞壑輕嵐冪

봉우리에는 푸른빛이 차갑구나 / 峯巒積翠寒

시상이야 비록 옹졸타 하더라도 / 縱然詩思拙

남산 같은 시를 지어 보려 하노라 / 已擬賦南山

위는 가산(假山)에 감도는 아지랑이를 읊은 것이다.

 

맑게 갠 날 북창 아래 앉았더니 / 白日北窓下

좋은 흥취 그대로 태고 이전이더라 / 逸興羲皇前

문 앞에 드리운 다섯 그루 버드나무 / 門垂五柳樹

땅을 덮은 그림자 연기를 머금은 듯 / 覆地政含煙

위는 문 앞에 있는 버드나무를 읊은 것이다.

 

곧게 뻗은 줄기가 구름 위로 솟았으니 / 直幹排雲上

물어 보자 푸른 모습 몇 해나 되었더냐 / 蒼蒼問幾秋

머뭇거리며 오래도록 떠나지를 못하니 / 攀援久不去

수사의 놀이라고 이 아니 할 것인가 / 莫是洙泗遊

위는 연기에 휩싸인 푸른 회나무를 읊은 것이다.

 

무지한 채로 속절없이 늙어 가니 / 無知空老大

빠르기만 한 저 세월을 어이하리 / 歲月奈駸駸

단풍나무에 이런 말 건낼 적에 / 寄語丹楓樹

송옥의 슬픈 마음 어찌 없을쏜가 / 寧無宋玉心

위는 햇빛에 반사된 단풍(丹楓)을 읊은 것이다.

 

대숲을 지나온 바람 소리 푸르고 / 度竹風聲碧

바람을 머금은 대 그림자 맑아라 / 含風竹影淸

틀어박혀 사는 사람 하는 일이 없으니 / 幽人無一事

홀로 앉아 《황정경》을 쓰는고야 / 獨坐寫黃庭

위는 대나무 사이로 난 길에 불어오는 맑은 바람을 읊은 것이다.

 

초목이 무서리를 맞고 나자 / 草樹霜初重

온 누리에 가을이 깊고파라 / 乾坤秋欲深

주렁주렁 수많은 열매들이 / 離離萬顆子

그리운 고향 생각 일으키네 / 喚起故園心

위는 늦은 가을의 홍시(紅) 읊은 것이다.

 

괴석이 화분 가운데 서 있고 / 怪石立盆心

푸른 이끼는 돌 위를 덮었다 / 綠苔封石上

돌에도 윤기가 있어 촉촉한 것이니 / 石有潤而滋

그렇잖으면 이끼가 왕성할까 / 不然苔不旺

위는 이끼 낀 괴석(怪石)을 읊은 것이다.

 

몇 해나 이 땅속에 감추어져 있으면서 / 幾年爲地秘

천 년을 두고 황하가 맑아지길 기다렸던가 / 千載俟河淸

선왕께서도 이 물건을 소중히 여기시고 / 先王重此物

은혜로운 하사를 동평에다 하셨도다 / 恩賜在東平

위는 해남(海南)에서 나는 낭간(琅玕)을 읊은 것이다.

 

온화한 사람은 옥과 같은데 / 溫溫人似玉

애연히 핀 꽃이 눈만 같아라 / 藹藹花如雪

서로 보고 양쪽 다 말이 없어 / 相看兩不言

하늘에 뜬 밝은 달로 비추네 / 照以靑天月

위는 매화나무 창가에 비친 하얀 달을 읊은 것이다.

 

달이 밝아 소나무 그림자 성글고 / 月明松影疎

이슬이 차가워서 뜨락이 맑더라 / 露冷庭隅淨

맑은 밤 울어 대는 학의 한 소리가 / 一聲淸夜唳

깊은 깨달음을 자아내게 하더라 / 令人發深省

위는 뜰에 있는 소나무에서 학이 우는 것을 읊은 것이다.

 

바람이 감미롭다 서대초가 푸르고 / 風微書帶綠

동산이 따뜻하니 사향이 조는구나 / 園暖麝香眠

다행히 제 스스로 길이 들었지 / 幸渠自馴擾

나는 본래 신선이 아니었더니라 / 非我是神仙

위는 정원의 풀밭에서 사향노루가 조는 것을 읊은 것이다.

 

어찌 젖은 날개로 나는 것을 걱정하랴 / 寧憂濕毛翰

부침하는 묘한 동작 보는 것이 좋더라 / 最好看浮沈

잠길 때는 물 밑을 생각하고 / 沈時思水底

떠오르는 지점은 물결 중심인 듯하네 / 浮處擬波心

위는 물 위에서 노는 금계(錦鷄)를 읊은 것이다.

 

서신을 전하던 날에는 공로가 있었고 / 功在傳書日

적을 이긴 그 해에는 재능도 많았더라 / 能多克敵年

너는 본래 미물에 불과하거늘 / 爾本微物耳

사람을 따르니 사람도 어여삐 여기도다 / 依人人自憐

위는 새장 속의 집비둘기를 읊은 것이다.

 

맑고 투명하여 속은 한 점 티가 없고 / 淸瑩中無玷

모난 모서리에 외형도 볼 만하더라 / 廉隅外可觀

의기가 서로 투합된지라 / 所以托高契

오래도록 이어 가며 웃음 띠고 보리라 / 長承帶笑看

위는 유리석(琉璃石)을 읊은 것이다.

 

습기가 나는 것은 예로부터 그랬거니 / 濕生應自古

물결을 씹는 것이 몇 해나 되었는고 / 波囓幾經年

사람들은 다듬고 깎는 것을 좋아하나 / 衆人好雕琢

군자는 자연을 귀하게 여기는도다 / 君子貴天然

위는 차거분(𤥭) 읊은 것이다.

 

씨앗은 부드러운 황금인 양 사랑스럽고 / 子愛黃金嫩

꽃은 향기로운 백옥 같아 어여쁘더라 / 花憐白玉香

겨울에도 시들잖은 잎이 있어서 / 又有歲寒葉

푸르른 빛으로 눈서리를 견디더구나 / 靑靑耐雪霜

위는 치자화(梔子花)를 읊은 것이다.

 

타는 곡조는 공자의 가락 속에 들고 / 彈入宣尼操

실에 매면 대부의 패물이 되는도다 / 紉爲大夫佩

열 개의 향풀이 난초 하나를 당하니 / 十蕙當一蘭

그래서 또다시 사랑을 받는 게로다 / 所以復見愛

위는 오설란(傲雪蘭)을 읊은 것이다.

 

금년에 한 치가 자라고 / 今年長一寸

이듬해 한 치가 자라고 / 明年長一寸

속성을 하지 않은 덕에 / 維其不速成

그래서 만 년을 산다네 / 是以年至萬

위는 만년송(萬年松)을 읊은 것이다.

 

봄에 피어도 보기가 좋고 / 春開看亦好

여름에 피어도 보기 좋고 / 夏開看亦好

가을 겨울도 역시 그러니 / 秋冬亦如此

여생을 너와 함께 하리라 / 與爾終偕老

위는 사계화(四季花)를 읊은 것이다.

 

어제저녁에 꽃 하나가 지더니 / 昨夕一花衰

오늘 아침에 꽃 하나가 피었네 / 今朝一花開

서로 백 일을 바라볼 수 있으니 / 相看一百日

너를 상대로 술 마시기 좋아라 / 對爾好銜杯

위는 백일홍(百日紅)을 읊은 것이다.

 

나는 금전화를 참 사랑하노라 / 我愛金錢花

마주 대하면 심목이 맑아지는 그를 / 對之淸心目

어찌하여 공방형은 한 번만 보아도 / 如何孔方兄

사람에게 욕심을 갖게 하는가 / 一見令人慾

위는 금전화(金錢花)를 읊은 것이다.

 

목부용을 가장 사랑하노라 / 最愛木芙蓉

엄연한 군자의 모습이기로 / 儼然君子容

눈서리도 두려운 바 아니니 / 雪霜非所畏

진흙 속에 핀 연꽃인 듯하다 / 還似在泥中

위는 거상화(拒霜花)를 읊은 것이다.

 

예전에 두세 사람의 벗과 함께 / 昔與二三子

천보산에 가서 글을 읽을 때에 / 讀書天寶山

곱게 피어 취한 눈을 비추었지 / 爛熳照醉眼

그때 보던 그 모습 아련하여라 / 依俙當日看

위는 영산홍(映山紅)을 읊은 것이다.

 

꽃을 보고 나서 열매까지 먹으니 / 看花還食實

색도 아름답고 맛도 좋아 기쁘다 / 色味喜雙全

볼수록 속된 모습 보이지 않고 / 照眼令無俗

먹을수록 신선이 되고 싶구나 / 流牙覺欲仙

위는 안석류(安石榴)를 읊은 것이다.

 

일찍이 들으니 국화를 먹은 사람은 / 嘗聞飧菊者

오백 년 동안이나 살았다고 하더라 / 壽可五百年

내가 사랑하는 것은 이것과 다르니 / 所愛或異此

꽃들과 먼저 피길 다투지 않음이네 / 不競衆芳先

위는 서리를 아랑곳하지 않는 국화(菊花)를 읊은 것이다.

 

손수 심어 놓은 오동나무에 / 手植梧桐樹

봄 들어 푸른 잎이 일제히 돋았구나 / 春來綠葉齊

언제쯤 크게 크게 자라나서 / 何時成老大

가지 위에 봉황이 와서 깃들일까 / 枝上鳳來棲

위는 오동잎을 읊은 것이다.

 

나는 양주의 흔하디 흔한 작약이라 / 我似維楊俗

낙양의 기이한 꽃 모란과는 다르다네 / 看花異洛陽

모란의 품격이야 제아무리 귀하여도 / 牧丹品雖貴

꽃 중에 왕이 되지는 못하리로다 / 應是未爲王

위는 섬돌에 나부끼는 작약(芍藥)을 읊은 것이다.

 

아침 햇살 떠올라 담장 위를 비출 때 / 墻頭耀初日

새 단장 곱게 하고 술잔 속에 잠겼으니 / 杯底醮新粧

죽마 타던 어린 시절 동쪽 담장 지나며 / 因思騎竹馬

남모르게 꺾어 보던 그때가 생각나네 / 偸折過東墻

위는 울타리에 가득 핀 장미(薔薇)를 읊은 것이다.

 

하얀 다미를 가장 사랑하노라 / 最愛茶䕷白

우리나라에선 옥매라 한다는구나 / 東人命玉梅

그에게 참뜻이 있는 것을 취한다면 / 取他眞意在

눈 속에 피어야만 할 것은 없잖은가 / 何必雪中開

위는 아리따운 옥매(玉梅)를 읊은 것이다.

 

착한 일 하는 것이 가장 즐거우니 / 爲善最可樂

마음이 즐거운데 무엇을 걱정할까 / 樂哉何所憂

북당 밖에 심겠노라 해 놓고서는 / 言樹北堂外

하릴없이 가을을 헛되이 보냈노라 / 悠悠空度秋

위는 걱정을 잊은 원추리를 읊은 것이다.

 

발을 감쌌으니 지혜 없는 것이 아니요 / 衛足非無智

마음을 기울였으니 충성심이 있는 게라 / 傾心似有忠

너를 보고서 추스리지 않을 수 있으랴 / 見爾能不勵

내게도 참된 마음이 있노라 / 而余抱降衷

위는 해를 향한 해바라기를 읊은 것이다.

 

시 읊는 데 익숙함을 점차로 깨닫겠네 / 漸覺吟哦慣

번거로움도 없이 잠깐 새 이루었으니 / 無煩頃刻成

뚝뚝 떨어지는 창 밖의 빗방울 소리가 / 滴滴窓外雨

시를 재촉하며 쉴새없이 소리치네 / 催詩不停聲

위는 창 밖의 파초(芭蕉)를 읊은 것이다.

 

꽃이 선후에 따라 피어나므로 / 花因先後發

옅은 색 짙은 색 구분이 있네 / 色有淺深分

원래 세 가지 모양이 아닌데 / 元非三樣別

세상에서 삼색도라 하는고야 / 世俗徒云云

위는 삼색도(三色桃)를 읊은 것이다.

 

뛰어나게 예쁜 모습 아름답구나 / 嫣然傾國色

누굴 위해 그리 곱게 몸단장인가 / 膏沐爲誰容

나도 역시 강심장을 가졌더라만 / 我亦剛腸者

한번 보니 마음이 녹더구나 / 看來意已融

위는 옥잠화(玉簪花)를 읊은 것이다.

 

소나무는 기대잖고 우뚝 서 있거늘 / 有松立不倚

등나무가 뻗어 나와 붙어 사노라 / 有藤來附之

등나무 넝쿨은 겨울에 푸르잖지만 / 藤蔓無冬綠

소나무 가지야 사시로 푸르더니라 / 松枝靑四時

위는 등나무가 얽힌 노송(老松)을 읊은 것이다.

 

나는 들으니 검은 수정 같은 포도로 / 吾聞黑水晶

술을 빚어 마시면 온갖 시름 가신다 하니 / 作酒消千憂

맹세코 한 방울의 술일지라도 / 誓無將一滴

백 개의 양주와 바꾸는 일은 없으리라 / 換取百涼州

위는 촉포도(蜀葡萄)를 읊은 것이다.

 

맑기도 한 것이 옅기도 한 것이 / 淸淸又淺淺

희기도 한 데다 붉기까지 하구나 / 白白兼紅紅

여태까지 수백 년을 지내 오다가 / 爾來數百載

염계옹을 지금 다시 만난 게로다 / 復遇濂溪翁

위는 작은 못의 연꽃을 읊은 것이다.

 

세수하고 머리 빗고 맑은 새벽에 앉아서 / 盥櫛坐淸晨

향불을 피워 놓고 《주역》을 읽어 보노라 / 焚香讀周易

다 읽고 나서는 남창에 기대어 밖을 보니 / 讀罷倚南窓

남산 중허리가 하얀 띠를 띠었더라 / 山腰一帶白

위는 목멱산(木覓山)의 맑은 구름을 읊은 것이다.

 

인왕동에 해가 저무니 / 日落仁王洞

종소리가 시간을 알리네 / 鍾聲報有期

책상에 기대어 일이 없으니 / 隱几自無事

온 성안이 잠들 때로다 / 滿城人定時

위는 인왕산(仁王山) 저녁 종소리를 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