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입을 다물자[閉口吟]

淸潭 2024. 8. 25. 07:19

입을 다물자[閉口吟]

 

사람마다 입이 하나씩 있어 / 人皆有一口

말하고 먹을 때만 쓰지 / 只管言與食

말이 없으면 일이 되지 않고 / 無言事難成

먹지 않으면 몸 지탱이 어려워 / 無食身難得

두 가지 다 없어서는 안 되지만 / 二者不可無

득실에 따라 화복이 달라지네 / 失得隨禍福

주역에서도 교훈을 남겨 / 大易垂明訓

삼가고 절제하라고 했는데 / 愼節以爲則

근래에 음식 절제를 못하여 / 邇來失飢飽

가슴이 벅차도록 더부룩하고 / 痞氣塡胸臆

배가 부풀어 설사도 하며 / 膨脹或下注

혹은 답답하게 치밀기도 하여 / 鬱滯或上逼

때로 수저를 물리치기도 하니 / 有時却匙箸

아내가 보고는 측은히 여기네 / 家人見之惻

먹는 것을 조절만 한다면야 / 如能節其食

이렇게 심한 탈이야 없겠지 / 爲患豈斯棘

평소 피가 끓어오르는 증세가 있어 / 素有血升症

말을 하다간 금방 잘못되므로 / 遇語輒顚

객이 와도 안부 만을 교환하고는 / 客來纔寒暄

재갈을 문 듯 입을 다물며 / 緘嘿如銜勒

집의 편액도 벙어리로 표방하고 / 扁啞以自號

평상시에는 늘 더듬거리지만 / 平居常𧩦𧩦

그러나 강개한 마음이 있어 / 然有慷慨心

꼭 할 말은 참지를 못한다네 / 必吐無掩匿

소소한 일이야 그만두려니와 / 小事固不恤

큰 일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네 / 大者難容嘿

선비라면 학술이 소중한 법 / 爲士貴學術

한번 어긋나면 영영 틀리나니 / 一失便差忒

중국 성현들의 교훈을 / 中華聖賢訓

항상 외우며 경계하고 있는데 / 誦習恒戒勅

갑자기 듣자하니 참된 도가 / 忽聞有眞道

서쪽 나라에서 왔다는데 / 來自西方國

준수한 선비들이 다투어 믿어 / 髦士競信趨

이런 작태 보노라면 마음이 아프네 / 視之心內

낯익은 길은 잊기 어려운 것인데 / 熟路終難忘

그 길을 바꾸는 것 부끄러운 일이며 / 改步誠自慝

신구는 또 맞지도 않는 법이어서 / 新舊固不合

흑백을 따질 수 밖에 없었지 / 未免辨白黑

붕우 사이엔 토론이 중요한 것 / 朋友貴講討

이 마음에 어찌 사특함이 있으리오 / 此心寧有慝

말 한 마디 서로 맞지 않으면 / 一言不能會

이내 사람을 도적으로 모함하니 / 便作陷人賊

전해지는 말도 혹 지나칠 수 있거늘 / 傳說或過中

남이 하는 말 어찌 다 옳겠는가 / 人言豈皆直

내 어찌 변명이나 일삼는 사람이랴 / 余豈分疏者

두고 보면 자연 알게 되리라 / 久觀當自識

다만 한스러운 건 팔십 늙은이가 / 但恨八十叟

이러한 일로 낯을 붉힌 것이지 / 遭此顔有

한평생 변함없는 마음 / 平生一片心

솔직하고 꾸밈이 없어 / 白直無巧飾

언행도 무심코 대범하게 하다가 / 言行任坦率

도리어 남의 비방 받고 말았네 / 反爲人所劾

나를 아는 이 세상에 없어 / 世無知我者

홀로 앉아 한숨을 쉰다네 / 獨坐長太息

입이란 작은 구멍 하나지만 / 口是一小竅

참으로 예측 못할 물건이야 / 所係誠難測

먹다 병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치고 / 食病固無奈

말 잘못은 스스로 다스려야지 / 言過當自克

저 마도견을 보고 / 視彼磨兜堅

사람 만나도 말을 말아야지 / 逢人兌可塞

저 귀머거리에게 말하노니 / 寄語聾窩子

벙어리 마음은 얼마나 답답할까 / 啞翁心可慽

그러나 귀먹고 벙어리라야 / 一聾而一啞

남의 입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 庶可免人嘖

귀를 만지고 입을 가리키며 / 捫耳且指口

서로 마주보고 깔깔 웃었다네 / 相對笑啞啞

순암선생문집 제1 / () / 안정복(安鼎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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