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애국가 버리란 김원웅, 일장기 든 광화문 다 미쳤다"
[중앙일보] 입력 2020.08.26 00:49 수정 2020.08.26 10:18 |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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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김원웅 광복회장이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쓸데없는 발언을 했다. 이승만이 ‘친일파와 결탁’했으며 안익태는 ‘민족반역자’였다는 것이다. 개인의 견해라면 존중할 수 있다. 심지어 그의 견해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문제는 발언의 화용론적 맥락이다. 제 개인적 견해를 공식행사에서 공인의 자격으로 발화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적절해 보인다.
‘하나의 시각’ 절대화해 역사 재단
국민에 필요없는 ‘국부 논쟁’ 불러
애국가를 버리라는 광복회장
일장기 나온 광화문, 다들 미쳤다
나라를 둘로 쪼갠 광복회장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동기의 불순함이다. 그는 ‘토착왜구’ 척결이라는 정권의 선동정치 프레임을 국민통합의 장이어야 할 광복절 기념식에 끌어들였다. 광복회장이 나라를 두 편으로 가르는 짓을 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인식의 편향성이다. 그의 발언은 낡은 민족주의 이념, 이른바 ‘NL(민족해방)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어 있다.
결국 그의 선전포고로 국가주의 대 민족주의의 역사전쟁이 재개됐다. 서로 원수처럼 싸우나 두 이념은 역사를 단 ‘하나의’ 시각으로 재단하려는 환원주의를 공유한다. 그 하나의 시각이란 물론 ‘자기의’ 시각이다. 하나의 시각을 절대화하면 편향이 발생하기 마련. 둘은 상대의 편향으로 제 편향을 정당화하며 적대적 공생을 이어왔다.
우익 국가주의자들은 ‘체제’의 눈으로 역사를 해석한다. 그래서 독립투쟁보다는 국가체제의 수립을 더 중시한다. 여기서 정부수립에 참여한 친일파들을 건국의 은인, 구국의 영웅으로 추켜세우는 편향이 발생한다. 심지어 친일을 변호하려다가 일제가 식민통치로 조선의 근대화를 도왔다는 극단적 주장으로 치닫기도 한다.
반면 좌익 민족주의자들은 역사를 ‘민족’의 시각으로 재단한다. 그들에게 체제의 선택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여기서 이승만 정부를 분단의 원흉으로 폄훼하는 편향이 생긴다. 실제로 김원웅 회장은 언젠가 한국전쟁에 ‘민족해방전쟁의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그러니 김정은을 위인으로 섬기는 모임에 가서 축사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두 개의 신화
그래픽=최종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국가주의 신화를 파괴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반공교육만 받고 자란 세대는 이 책을 읽고 교과서 속 반공 투사들이 황군이었고, 교과서 속 문인들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 마음들에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이 땅의 현실은 견디기 힘든 배신감과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이 절망감은 국가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민족 정통성은 친일파를 청산한 북한에 있으며, 남한은 미국을 새로운 상전으로 모신 친일파들의 나라일 뿐이다.’ 이 편향의 정치적 표현이 바로 1980~90년대를 지배한 NL 운동이었다. 물론 이 민족주의 서사 역시 그것이 파괴한 국가주의 신화 못지않게 허구적이며 기만적이다.
이 정권 사람들은 반민특위를 해산시켰다고 이승만을 친일파의 거두로 몰아붙인다. 하지만 정작 일본에서 이승만은 강경한 반일 인사로 통한다. 독립운동을 했고, 이승만 라인으로 독도를 지켰으며, 한국전쟁 중 일본군의 참전에 극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알려진 것과 달리 그가 세운 초대 내각에 친일파의 이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반면, 비록 남한만큼은 아니더라도 북한 정권 역시 친일파들을 대거 기용했다. 북한의 『조선전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지난날 공부나 좀 하고 일제 기관에 복무하였다고 하여 오랜 인텔리들을 의심하거나 멀리하는 그릇된 경향을 비판 폭로하시면서 그들을 새 조국 건설의 보람찬 길에 세워 주시었다.”
한 마디로 남이나 북이나 국가를 건설하는 데에 친일 기술 관료들의 도움이 필요했던 게다. 북에서도 친일파들은 노동당에 충성하며 출세를 했다. 반면 독립운동가들은 김일성 유일 체제에 반대하는 한 거기서도 숙청의 대상이었다. 연안파와 소련파·남로당 계열이 그렇게 사라졌다. NL 민족주의도 결국 북한판 국가주의 이념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버지 없는 나라
이 쓸데없는 논쟁은 곧바로 국부(國父) 논쟁으로 이어진다. 국가주의자들은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국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단독정부의 수립은 이승만의 업적도 아니었고 그의 오류도 아니었다. 남북이 각각 미국과 소련에 점령당한 상태에서 그것은 옵션이 아니라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 운명은 분명 우리가 원하던 게 아니었다.
반면 민족주의자들은 김구를 국부로 내세우며 김구를 암살한 친일파의 나라라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폄훼하곤 한다. 이런 것을 ‘발생론적 오류’라 부른다. 아버지가 도둑이라고 아들까지 도둑인가? 반면 김일성이 항일투쟁을 했다 한들 그게 현재 북한에 존재하는 개인숭배와 3대 세습에까지 정당성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사관(史觀)은 실은 역사 수정주의에 불과하다. 국가주의자들은 1948년 정부수립을 ‘건국혁명’으로 보아 그날을 ‘건국절’로 제정하려 한다. 하지만 정부수립은 ‘건국’도 아니었고 ‘혁명’도 아니었다. 헌법 전문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와 함께 시작됐다. 우리에게 건국혁명이 있다면 그것은 3·1운동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주권자인 국민에게 있다. 전쟁의 폐허 위에 경제를 일으킨 것도 우리였고,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세운 것도 국민이었다. 좌·우익 전체주의자에게는 ‘국부’가 필요하겠지만, 민주주의자는 역사를 쓰는 데 굳이 국부를 요하지 않는다. 그런 아버지를 왜 둘이나 들이려 할까?
역사란 무엇인가
우리 역사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내는 것을 국가주의자들은 일본 우익을 따라 ‘자학사관’이라 부른다. NL 민족주의 역시 제 흑역사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국가주의자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양민이 학살됐는지 봐야 한다. 민족주의자들 역시 ‘민족’을 해방한다는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양민을 희생시켰는지 봐야 한다.
역사는 국가를 위대하게, 민족을 거룩하게 하는 미화작업이 아니다. 역사는 피억압자가 당한 고통의 진실한 기록이자, 주권자인 ‘시민’의 눈으로 국가와 민족의 업적과 과오를 심판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두 세력 모두 남과 북에서 그 잘난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가혹한 ‘독재’가 행해져 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두 극단의 싸움은 나라를 해방 전후사로 되돌린다. 한쪽은 존재하지도 않는 종북좌빨 색출에 나섰다. “대한민국을 김정은이 움직이고 있다.” 다른 쪽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토착왜구 척결에 나섰다. “토착왜구들이 나라를 좀먹고 있다.” 망상에 빠진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켰던 제 선조의 오류를 그대로 반복한다.
그렇게 역사를 밝히면서 도대체 거기서 배운 게 없다는 얘기다. 역사는 기억을 조직하는 문제다. 대화와 토론으로 도달한 합의 위에서 국가공동체의 기억을 공유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나 어차피 전체주의 사상. 서로 죽일 듯 싸우면서도 상대를 절멸의 대상으로 삼는 군사주의 마인드만은 사이좋게 공유한다.
친일청산 작업
“친일 반민족 권력이 장악해온 시대를 조문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역사적 의무다.” 김원웅 회장의 말이다. 그냥 혼자 해도 될 일을 왜 굳이 “우리가 해야 할 일”로 만들까? 해방되던 해에 태어났어도 지금 75세. 친일파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역사적 의무는 있는데 청산할 친일파가 없으니, 묘지에서 죽은 친일파라도 꺼내야 하는 것이리라.
그는 유신정권과 5공 정권을 위해 일한 바 있다. 하지만 ‘친일 반민족 독재정권이 장악해 온 내 인생을 조문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역사적 의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저 ‘생계’를 위해 한 일이었다는 변명이다. 친일도 생계를 위해 했지 어디 굶기 위해 한 짓이던가? 그런 그가 친일이 묻었다고 애국가를 버리란다.
안익태가 친일을 한 것은 사실이나, 애국가는 그가 친일을 하던 시기에 만든 게 아니다. 애국가는 한국전쟁 때 국군 병사들이 불렀던 노래고, 5·18 광주 시민항쟁 때 시민군들이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다. 애국가를 애국가로 만든 것은 민중이다. 거기에 애국가의 정통성이 있고, 이 역사는 그에게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광복절이 건국절이 되니 8월 15일의 광화문에 일장기까지 튀어나왔다. 광복절 기념으로 광복회장이 애국가를 폐기하잔다. 그럼 저만의 애국가를 제정하든지. (그의 개인적 애국가로는 ‘죽창가’가 어떨까?)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제 역사를 무시당한 ‘시민’에게는 이 빌어먹을 상황이 그저 기막힐 뿐이다. 다들 미쳤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출처: 중앙일보]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애국가 버리란 김원웅, 일장기 든 광화문 다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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