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慶州金氏

금관에 얽힌 진실

淸潭 2020. 2. 23. 10:29

금관에 얽힌 진실


☞ 금관에 얽힌 진실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발굴된 고대 금관(金冠)은 10개뿐인데
그 중 신라(新羅)의 것이 6개이니 신라는 분명 금관의 나라였다.
그런데 구조를 분석해 보니 금관은 살아있을 때 쓴 것이 아니고 현세(現世)의 부귀영화를 내세(來世)로 연결해 주는 매개체였다.
고구려(高句麗)나 백제(百濟)의 왕릉에는 전혀 없는 금관은 지금의 상주(尙州) 일대인

당시 사벌주(沙伐州)의 금광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왕(王)뿐 아니라 왕비(王妃)나 왕자(王子)의 능에서도 발견되었다.
특이한 것은 제작 시기인데 5에서 6세기 백년동안으로 19대 눌지(訥祗), 20대 자비(慈悲),

21대 소지(炤知), 22대 지증(智證) 등 왕(王)이라는 칭호가 생기기 직전인

마립간(麻立干) 시대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에서만 발견되었다.



☞ 석탈해
설화에는 석탈해(昔脫解)가 다파니국(多婆那國)의 왕비가 알(卵)을 낳자

왕이 바다에 버려 떠내려온 배(船) 속의 상자에서 알로 태어났다고 되어 있지만

그가 2대 왕의 사위가 된 걸 보면 대략 기원 직후에 신라(新羅)에 도착한 것으로 본다.
다파니국은 대충 인도(印度)를 비롯한 남지나해(南支那海) 근처로 추정하는데
백척이 넘는 배를 타고 온 것을 보면 해상(海上) 세력임이 분명하고
신라로서는 선진 문명인 제철(製鐵) 기술을 무기로 차츰 세력을 넓혀 마침내

남해 차차웅(南解次次雄)의 사위가 되고 서기 57년에 신라 4대 탈해왕(脫解王57-80)으로 등극하며
신라의 3왕족 중 하나인 석씨(昔氏)의 시조가 되고

석씨는 16대까지 8명의 왕을 배출한다.


☞ 신라의 왕 3성 朴 昔 金
신라(新羅)는 박혁거세(朴赫居世 가 시조지만 박씨(朴氏)왕은 1대부터 8대까지에서

4대를 빼고 7명에 53대부터 55대까지 3명을 합해 10명이었으며,

석씨(昔氏)왕은 4대 탈해(脫解) 후 끊겼다가 9대부터 16대까지 모두 8명이었으니,
56명 중 나머지 38명은 김씨(金氏)라는 얘기다.
13대 미추왕(味鄒王)은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金閼智)의 7대손인데 아들이 없자
석씨 유례(儒禮)에게 왕위를 넘겨 14 15 16대를 거쳐 다시 17대 내물왕(奈勿王) 때부터 52대까지 김씨가 하다가
망국을 앞둔 53 54 55대를 박씨왕이 하다가 927년 견훤(甄萱)이 55대 경애왕(景哀王)을 죽이고 다시
김부(金傅)를 56대 경순왕(敬順王)으로 앉히고 8년 후 경순왕은 신라를 고려(高麗)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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