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알지(金閼智)는 흉노(匈奴)의 왕자
☞ 김알지는 흉노의 왕자
경주 김씨(金氏)의 시조(始祖) 김알지(金閼智)가 황금 상자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설화이고
실제 김알지는 원래 흉노(匈奴)의 부족인 휴도(休掉)의 왕자 김일제(金日磾)인 것으로 밝혀졌다.
고조선(古朝鮮)을 멸망시킨 한무제(漢武帝 BC141-87)가 기원전 119년 흉노를 정벌할 때 생포되어 한나라로 왔는데
금상(金像) 제작 기술로 무제의 신임을 얻어 산동 지역의 투후(秺侯)로 임명되었다.
그 후 무제가 죽고 정변이 일어나자 종친 등 세력을 대거 이끌고 기원 전후 신라(新羅)로 건너와
역시 황금(黃金) 기술로 인정을 받아 김씨(金氏) 성(姓)을 하사받고 정착한다.
서라벌에서 `서라`는 금(金)을 뜻하고 `벌`은 벌판을 뜻하는데
한자로 경주를 금성(金城)이라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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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릉 비문(文武王陵 碑文)이 열쇠
☞ 문무왕릉 비문이 열쇠
30대 문무왕(文武王)은 문무왕릉비문(文武王陵碑文)에서
김씨의 시조는 하늘에서 내린 23대조 투후 김일제(秺侯 金日磾)이며
그 분의 7세손이 성한왕(星漢王)이며 그의 15세손이 자신이라고 밝혔다.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은 열한(熱漢)/아도(阿都)/수류(首留)/욱부(郁部)/구도(俱道)인데, 구도의 아들이 13대 미추왕(味鄒王)이니
성한왕이란 미추왕을 가리키며 김일제의 7세손이 맞고 문무왕이 미추왕의 15세손인 것도 꼭 맞다.
구도의 손자인 17대 내물왕(奈勿王)부터 왕을 마립간(麻立干)이라 했는데
`마리`는 머리를 뜻하고 `칸`은 징기스칸같이 흉노(匈奴)나 한족(漢族)이 말하는 왕(王)의 칭호인 것을 보아도 그렇고
신라(新羅) 왕릉에서 금관(金冠)이 발굴된 것도 마립간 시대에만 국한되었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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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제(金日磾,기원전134년~기원전 86년 음력 8월)는
전한(前漢)의 정치가로, 자는 옹숙(翁叔)이다.
본래 흉노 출신으로 흉노의 번왕(藩王)인 휴도왕(休屠王)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열네 살 때 부왕이 무제(武帝)와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전한에 포로로 끌려왔다.
이후 무제의 신임을 받아 전한의 관료로 일하면서 김씨(金氏) 성을 받았으며,
말년에 투후(秺侯)에 봉해졌다.
신라의 왕족 김씨 역시 김일제의 후손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당시 신라인들이 스스로 김일제의 후손임을 자처했다는 증거는 될 수 있어도,
실제로 그의 후손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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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金閼智)와 김일제(金日磾)가 동일인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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