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梅月堂 김시습(1435 ~ 1493)

淸潭 2020. 2. 16. 20:37

梅月堂 김시습(1435 ~ 1493)

 

재주가 너무 많아 인간의 한계를 넘었다

기행·괴벽·광기의 천재 시인 매월당 김시습

 

글·이재광

 

김시습은 조선조 5백년사에 기록될 만한 최고의 천재였다.

그는 태어난 지 겨우 8개월만에 글을 깨우쳤고 세살 때부터 시를 짓기 시작했다.

다섯살 때는 나라를 짊어질 기둥감으로 온나라의 기대를 한몸에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실제 일생은 불우했다. 평생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을 뿐 아니라 평온한 가정조차 갖지 못했다. 천재를 받아들이지 못한 우리 사회의 옹졸함 때문인가, 워낙 파격적이고 괴팍한 그의 성품 때문인가. 온갖 기행과 괴벽, 광기의 흔적으로 얼룩진 천재시인 김시습의 일생을 되돌아봤다.

 

‘노목개화심불로’ (老木開花心不老).

‘내시강보김시습’ (來時襁褓金時習).

‘소정주택하인재’ (小亭舟宅何人在).

‘성주지덕황룡창벽해지중’ (聖主之德黃龍暢碧海之中). 

 

이 네개의 문장이 다섯살배기 어린 매월당을 조선 5백년사 최고의 천재 반열에 올려놓았다. 조선 5백년사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한명의 천재 율곡 이이가 그를 가리켜 “내 전생(前生)의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율곡은 “재주가 너무 커 타고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는 의미다. 범인(凡人)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매월당의 기행, 괴벽, 광기에 대해 율곡은 이같은 주석을 달아 놓았다. 4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매월당에 대한 해석은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매월당이 천재임을 그 주변에 알린 것은 태어난 지 오래지 않아서다. 겨우 8개월만에 글을 깨우쳤고 세살 때부터 시를 지었다니 누구라도 그의 비범함을 알아챘을 것이다. 이름부터가 그렇다. 시습(時習)-. ‘때로 익힌다’는 이 뜻은 ‘논어’‘학이편’(學而篇)에 나오는 유명한 어구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悅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따온 것이다.

그의 비범함을 알아챈 집안 어른이 붙여줬다는 이름이다. 그의 자(字)인 열경(悅卿)도 마찬가지. 같은 어구에서 ‘기쁠 열(悅)’자를 따 지은 것이다. 돌이켜 보면 ‘때로 배우며 기뻐한다’는 그의 이름과 자(字)의 합성어는 마치 예언과도 같이 그의 운명을 결정짓고 말았다.‘때로 배우는 것’만이 유일한 기쁨이 되어버렸지만…. 그가 세살 때 지었다는 시 한수를 읊어보자. 그의 천재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복사꽃 붉고 버들잎 푸르니 3월이 저물어 가는구나 (桃紅柳綠三月暮)

푸른 하늘에 꿰인 구슬은 솔잎에 맺힌 이슬이라네 (珠貫靑針松葉露)

 

1439년 그의 나이 다섯살. 아직 부모로부터 떨어지는 것조차 싫어하던 이때가 기이하게도 매월당에게는 최고의 전성기였다. 천재로서의 이름을 만방에 떨치며 장차 나라의 대들보가 될 것이라는 찬사와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것이다. 당시 그의 집에는 매월당을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천재와 신동을 보기 위해 찾아온 발길들이었다. 이중에는 재상 허조도 끼어 있었다. 그는 어린 매월당에게 이름 대신 자(字)를 부르며 조심스럽게 그를 테스트해 봤다.

“열경아, 나는 늙지 않았느냐, ‘늙었다’(老)는 말로 글을 지어주지 않으련?”
노 재상의 청탁에 매월당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온 문장 하나가 바로
‘노목개화심불로’  (老木開花心不老)였다.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았다’는 뜻이다.

허조가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문장을 짓는 솜씨도 솜씨지만 ‘마음은 늙지 않았다’는 말로 노인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여유까지 있는 것이 아닌가. 도저히 다섯살짜리 어린 아이로 볼 수 없는 글이었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그의 입에서 감탄의 말이 튀어나왔다.

“허허,과연 신동이로구나.”

어린 천재, 신동에 대한 얘기가 화제가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매월당과 허조의 대화는 삽시간에 퍼졌고 어렵지 않게 당시 임금인 세종대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임금인들 어찌 관심이 없었을까.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면 두루 인재를 찾아 써야 한다”는 성군(聖君)이신 세종대왕 아닌가. 사람까지 시켜 직접 소문의 진상과 매월당의 됨됨이를 확인하라 지시했다.

그 사자(使者)가 바로 승정원의 박이창이었다. 박이창은 매월당의 부모에게 즉시 아이를 데리고 입궐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제 아이에게는 어명을 받은 신하로부터 직접 시험을 받을 차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대목은 마치 서양 최고의 천재 중 하나인 모차르트를 연상시킨다. 세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다섯살때 피아노 소곡을 작곡했던 모차르트. 그 역시 여섯살 때 ‘7년전쟁’의 주역인 오스트리아 여제(女帝)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신기(神技)를 시험받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한다. 그는 이때 마리 앙투아네트 공주와 2중주를 하며 향후 일기장에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기록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만일 앙투아네트가 모차르트와 결혼했더라면 멍청한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아내로 프랑스 대혁명기에 죽음을 자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매월당은 피아노 의자 대신 나이 많은 사신의 무릎 위에 앉았고, 피아노 대신 한시를 읊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의 시험을 거친다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숨막히는 긴장과 기대가 방안을 감싸고 돌았을 것이다.

“아가야, 네 이름을 갖고 글을 지어보겠느냐?”
박이창은 아주 쉬운 주제로 테스트의 문을 열었다.

“이 정도쯤이야…”.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시강보김시습’(來時襁褓金時習)
‘올 때 강보(포데기)에 싸여 있던 김시습입니다’라는 뜻이다.

박이창은 감탄하며 무릎 위에서 노니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글을 청한다. 이번에는 좀더 어려운 청이다.

“저 앞에 있는 산수화를 보니 무엇이 생각나느냐?”
‘이번에도 답할 수 있을까?’ 시험관은 미심쩍어하는 눈치였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어서 자칫 분위기를 깰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봤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이의 입에서는 거침없이 말이 나온다.

‘소정주택하인재’(小亭舟宅何人在)
‘작은 정자와 배 위의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라는 뜻이다.

“허허-.”

박이창은 놀라움과 동시에 흥이 나기 시작한다.
“참으로 신기하구나.”
처음 대하는 신동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시 한 수가 튀어 나온다. 감탄과 찬사의 시였다.

‘동자지학백학청공지말’
(童子之學白鶴靑空之末, 어린 아이의 학식이 백학이 되어 푸른 하늘 끝에서 춤을 추는구나)

극찬이었다. 더이상이 없을 정도였다. ‘이제 시험은 끝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는 한걸음 더 나갔다. 박이창의 시구를 이어받아 대구를 읊고 있지 않는가.

‘성주지덕황룡창벽해지중’
(聖主之德黃龍暢碧海之中, 성스러운 임금의 덕은 황룡이 되어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서 번득이고 있네)
이로써 시중에 떠도는 소문의 진상은 모두 밝혀졌다. 그는 신동이었고 소문은 모두 사실로 판명난 것이었다.
왕실의 기쁨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창건 이래 처음으로 태평성대를 누렸다던 세종 시대가 아니던가. 이 좋은 시절에 종묘사직을 반석 위에 올려놓을 최고의 인재를 얻게 됐으니 길게는 3대까지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인재를 발견한 것이다. 태평시대의 또 하나의 길조였다. 하늘이 이 작은 반도에 내려준 커다란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어찌 임금이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세종대왕은 친히 비단 여러 필을 하사하며 마지막 테스트를 한다. 어린 몸으로 혼자 그 비단을 가져가라 시킨 것이다.

이때 어린 시습은 장차 5백50년 후, 21세기를 살아가야 할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지혜의 교훈을 가르쳐 주는 유명한 장면을 연출한다. 비단의 끝을 몸에 묶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다. 지금도 이 이야기는 아이들 동화책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매월당은 불과 다섯살 때 영구불변의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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