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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주.....회재 이언적의 옥산서원과 독락당

淸潭 2018. 11. 19. 10:23




[경주] 옥산서원과 독락당

< 2018. 10. 17 >






하마비





















세심대(洗心臺)










옥산서원 정문인 역락문










>옥산서원(玉山書院 )은 이언적(李彦迪)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1572년(선조 5) 경주부윤 이제민(李齊閔)이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창건했다.










1574년에 사액 서원이 되었다. 1871년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화합·토론 등 서원 내의 여러 행사 때 사용하는 강당인 구인당(求仁堂)










玉山書院(추사 김정희 글씨)










求仁堂(석봉 한호 글씨)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학문을 닦는 곳인 민구재(敏求齋)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학문을 닦는 곳인 암수재(誾修齋)










유생들의 휴식공간인 무변루










無邊樓(석봉 한호 글씨)










체인문










이언적의 위패를 봉안한 체인묘(體仁廟)










비각(碑閣)





















경각(經閣)










독락당(보물 제413호) 솟을대문










행랑채와 안채










행랑채인 경청재(敬淸齋)





















옥산정사 독락당(보물 제413호)










玉山精舍(퇴계 이황의 글씨)










獨樂堂(아계 이산해 글씨)









중종 27년(1532년)에 김안로를 탄핵하다 밀려 중앙 정치무대에서 쫓겨난 회재 이언적은 사랑채인 독락당을 짓고 정계로 복귀할 때까지 7년간을 이곳에서 살았다.





















독락당 앞뜰










독락당 뒷뜰인 약쑥밭










독락당의 대청에서 계곡을 바라다 보고 시원한 계곡의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담장에 창살을 달았다.











계정으로 통하는 문










양진암(養眞庵)은 원래 회재의 부친이 사용하던 세 칸짜리 초가였으나, 회재가 기와를 얹고 옆으로 두 칸을 더 달아 지금의 구조를 완성했다.










養眞庵(퇴계 이황의 글씨)은 정혜사 승려와 교류했던 이언적이 계정을 찾은 정혜사의 스님이 머물도록 배려한 공간이라고 한다.










溪亭(석봉 한호의 글씨)





















계정에서 본 자계





















어서각(御書閣)










어서각에서 본 양진암과 계정










사당










자계로 나가는 골목





















자계에서 본 계정










정혜사지13층석탑(국보 제40호)










높이 590㎝. 토축 기단 위의 1층 옥신은 매우 크게 만들고 나머지 12층은 일정한 비율로 체감시켜 만든 특이한 형태의 유일한 이형석탑이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금마타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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