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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각시바위’로 변하고 말았다

淸潭 2017. 1. 23. 11:19

백도(白島)의 슬픈 사랑

여수설화 / 설화


여수 거문도에서 배로 20분 거리에 있는 백도는 국가명승지 제7호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명소 가운데 명소이다.

백도는 섬이 워낙 많아서 백 개쯤 될 것 같다고 백도(百島)라 하였는데, 아무리 세어 봐도 백 개가 못된다고 하여 백(百)자에서 위에 있는 한 일(一)자를 빼 백도(白島)라 부른다고 한다.

백도는 실제로는 39개의 무인도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옥황상제의 막내아들 환백(桓白)과 용왕의 딸 아리수에 얽힌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아주 먼 옛날 옥황상제가 늦둥이를 낳았다. 옥황상제는 막내의 이름을 환백이라 하였다. 인간 세계와 마찬가지로 옥황상제 역시 늦둥이에게 푹 빠져 다른 아들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환백이 자라면 자랄수록 아바마마의 사랑을 독차지하자 질투에 눈이 먼 형들이 동생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번번이 옥황상제에게 들통이 나 형들만 벌을 받기 일쑤였다.

언젠가는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동생을 마굿간에 몰래 들여보냈다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한 일도 있었다. 또 한 번은 옥황상제 외에는 출입이 금지된 천도밭에 막내를 들어가게 부추겨서 막내가 하마터면 하늘나라에서 쫓겨날 뻔한 일도 있었다. 그때는 다행히 형들의 소행이라고 밝혀지지 않아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얼마 전에 숨바꼭질 놀이를 가장하여 동생을 다치게 한 때는 옥황상제에게 들통이 나서 형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왕자들 사이에 틈이 벌어지자 신하들 역시 편이 나눠졌다. 그러다보니 평화로운 하늘나라가 어느 틈에 시기와 질투, 중상모략이 판을 치는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니 옥황상제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서둘러 후계 구도를 정하려 하였다.

옥황상제가 후계구도를 정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은 형들은 물론, 형들을 지지하는 각각의 세력들이 연합하여 막내 환백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옥황상제가 분명히 막내에게 보위를 물려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형들이 은밀하게 막내를 불렀다. 그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막내야. 잘 들으렴. 아바마마께서 보위를 물려주시려 하는데, 우리 형들은 아무래도 가장 총명한 네가 아바마마의 뒤를 잇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단다.”

그러자 환백이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에요 형님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당연히 제일 큰 형님이 아바마마의 보위를 이어야지요.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이에 큰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제안을 하였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고맙구나. 하지만 보위라는 것은 하고 싶다고 하는 것도 아니요, 안 하고 싶다고 안 하는 것도 아니란다. 운명이란다. 그렇다면 막내야. 이렇게 하면 어떨까? 아바마마께서 주무시고 계실 때 아바마마의 왕관을 한 번 써보도록 해라. 옥황상제의 왕관은 그것을 물려받을 사람의 머리에 자동으로 맞춰진다는 이야기가 있어. 어때?”

아무리 거절해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환백은 형들의 제안을 수락하였다. 왕관이 맞지 않는다면 형들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맞는다면 형들의 말대로 그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환백은 아바마마가 잠이 든 틈을 타서 왕관을 써보았다. 그런데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내심 실망도 하였지만, 그러면 그렇지 하고 막 왕관을 벗으려는 순간 한 무리의 신하들이 들이닥쳤다. 그 바람에 옥황상제도 놀라 깨었다.

“이 무슨 일이냐?”

옥황상제가 호통을 치자 신하들 가운데 한 명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폐하, 송구하게도 막내 왕자께서 역심을 품고 있사옵니다. 밤중에 몰래 폐하의 침소에 들어 왕관을 써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막내를 돌아보니 쓰고 있던 왕관을 서둘러 벗는 것이 아닌가. 당황하는 환백을 향해 더 당황한 옥황상제가 물었다.

“너, 너,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게냐?”

환백은 다급한 마음에 눈으로 형들을 찾았지만 형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형들이 했던 이야기를 꺼내면 형들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환백은 할 수 없이 거짓 자
백을 하고 말았다.

“아바마마, 죽을 죄를 졌습니다. 어린 마음에 아바마마의 왕관을 써보고 싶어서...”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자신의 입으로 왕관을 써보고 싶었다고 실토를 하는 환백을 옥황상제도 어찌 해 볼 수 없었다. 더구나 형들을 지지하는 많은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환백을 처벌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까지 하는 마당이라 더더욱 그랬다.

결국 극형에 처해야한다는 주장을 겨우 물리치고 하늘나라에서 추방하여 지상으로 귀양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나마 막내 왕자를 지지하는 신하들의 완강한 반대가 있었고, 옥황상제 역시 막내 환백을 극형에 처한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질 뻔하였다. 그리하여 옥황상제의 막내아들 환백이 귀양을 온 곳이 거문도 근처였다.

귀양을 보내기로 결정을 하였지만 막상 막내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귀양을 가게 되자 옥황상제의 마음은 편하질 않았다. 그것을 지켜보던 신하 가운데 한 명이 옥황상제에게 넌지시 건의를 하였다. 그는 환백을 지지하는 신하였다.

“폐하, 비록 귀양을 보낸다고는 하지만 명색이 폐하의 핏줄인데... 어린 왕자님께서 어찌...바다 가운데 자그마한 거처라도... 폐하는 모른 체 하시고 저희들이...”

그러자 옥황상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헛기침만 계속 하였다. 옥황상제의 의중을 눈치 챈 신하 몇 명이 서둘러 거문도 근처로 내려가 순식간에 막내 왕자의 거처를 만들었다.

신하들이 만들어준 지상의 거처에서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환백이 어느 날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다가 이상한 물건을 주웠다. 오색 빛 영롱한 것이 조개껍질 같기도 한데, 조개껍질이라고 보기에는 조금은 길쭉한 난생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신기하기도 하여 집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다음날 오전, 그날 역시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던 환백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하늘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미모에 정신이 팔려 있는 왕자의 귓볼을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듯한 낭랑한 목소리가 간지럽혔다. 

“혹시 제 신발 한 짝을 못 보셨나요?”

‘신발?’

그러고 보니 긴 머리칼을 휘날리는 아리따운 아가씨의 발이 맨발이었다. 그녀가 한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어제 환백이 주운 것과 똑 같았다.

‘그렇다면 어제 주운 그것이 이 아가씨의 신발?’

신발이 인연이 되어 그렇게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선남선녀가 호젓한 바닷가에서 만났으니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알고 보니 아가씨는 남해바다 용왕의 딸 아리수였다. 인적이 없는 곳이라 가끔 이 섬에 올라와 놀다 가곤 하였는데, 어제 갑작스런 파도에 밀려 신발 하나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아침 일찍 다시 찾으러 온 것이었다. 비록 귀양을 온 신세이지만 옥황상제의 아들인지라 환백은 그 기품이 남달랐다. 그래서 아리수 역시 환백에게 푹 빠졌다.

두 사람이 궁전에서 사랑에 빠져 지내는 동안 하늘나라에 있는 옥황상제의 마음은 내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신하들 몰래 막내 환백의 소식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하는 일 없이 바닷가에서 낚시나 하고 지낸다는 말에 옥황상제는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이제 막 소년 티를 벗은 혈기왕성한 막내가 낚시나 하고 지낸다니...

그러던 어느 날 옥황상제는 자신의 막내가 용왕의 딸 아리수와 사랑에 빠졌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귀양을 보내놓고도 옥황상제가 여전히 막내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형들이 은연중에 그 사실을 흘렸던 것이다.

며칠을 고민하던 옥황상제는 막내 환백을 서둘러 귀양에서 풀어 하늘나라로 불러들이기로 결심하였다. 자칫 용왕의 딸과 사이에 아이라도 생기게 된다면 영영 끝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끝이라 생각하였는데 오히려 다시 하늘나라로 불러들인다 하니 형들을 지지하는 많은 신하들이 반대하였지만 막내를 향한 옥황상제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신하 100명을 뽑아 환백을 승천시킬 사절단을 꾸렸다.

환백이 아리수와 함께 바닷가 바위에 앉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희롱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황금빛으로 환해지더니 한 무리의 천신들이 그들을 향해 내려왔다. 그들은 환백 앞에 내려오더니 일제히 엎드려 절을 한 후 옥황상제의 명을 전하였다.

그러나 아리수와 사랑에 빠진 왕자는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거절하였다. 형들의 시기와 질투, 신하들의 갈등과 반목 등이 너무도 눈에 선연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를 보고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리수와 있는 지금 이대로가 더욱 좋았다.

막내 왕자를 설득하다 실패한 신하들은 돌아갈 시간이 다 되어 어쩔 수 없이 하늘나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거문도 주변 지상세계의 경관에 푹 빠져버린 신하들 가운데도 막내 왕자와 함께 지상에 남아 살고 싶어 하는 신하들이 생겼다. 실은 하늘나라의 권력다툼에서 밀려 어차피 올라가봐야 좋을 일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 앞선 탓이기도 하였다.

신하들 사이에서도 돌아가네 마네 언쟁이 붙을 즈음 몰래 지상세계를 내려다보던 옥황상제의 분노는 극에 달하였다. 돌아오라는 막내아들은 사랑에 빠져 돌아올 생각을 않고, 아들을 설득하여 데려오라던 신하들조차 돌아오네 마네 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마른 하늘에 벼락이 치더니 커다란 호통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들을 수 없는 천둥소리였다.

“지금 당장 돌아오지 않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엄벌에 처하겠다!”

진노한 옥황상제의 마지막 명령이었다. 신하들 가운데 대부분이 서둘러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로 오르던 신하 가운데 한 명이 그만 탕건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것이 지금의 ‘탕건여’다.

그 난리에도 왕자는 낚싯대를 던졌다. 착잡한 심정을 잊기 위해서였다. 낚싯대를 던지자마자 뭔가 묵직한 것이 걸렸다. 놀랍게도 왕자가 휘두른 낚싯대에 날아가던 매가 걸리고 말았다.

옥황상제는 진노하였다. 그 순간 번쩍 천지를 가르는 빛이 나더니 모든 것이 바위로 변하고 말았다. 왕자가 낚았던 매는 지금의 ‘매바위’로 변하였고 왕자 역시 지금의 ‘서방바위’로 변하였다. 마지막 순간임을 깨달은 왕자가 아리수를 살리기 위해 그녀를 멀리 밀쳐냈다. 그러나 아리수 역시 불행하게도 옥황상제의 진노를 피할 수 없어 지금의 ‘각시바위’로 변하고 말았다. 그래서 옥황상제와 남해 용왕은 지금까지도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백도의 전경

홧김에 막내아들을 돌로 변하게 만든 옥황상제는 한참을 자책하다가 자신의 왕관을 벗어 던져버렸다. 왕관 때문에 모든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의 ‘왕관바위’이다.

바위로 변해 버린 충직한 신하 가운데는 형제도 있었다. ‘형제바위’가 바로 그것인데, 바위로 변해버린 그들은 지금도 똑같은 얼굴로 마주보고 있어 일명 쌍둥이 바위라고도 한다.

막내 왕자를 지지했던 신하들 가운데 가장 지위가 높았던 세 명의 신하는 지금의 ‘삼선암’으로 변하여 여전히 고고한 풍모를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환백과 아리수가 살던 곳은 지금의 ‘궁전바위’로 변하여 그들의 슬픈 사랑을 전하고 있다.

(※ 이 내용은 여수문화원장을 지낸 故 문정인 선생님이 채록한 내용에서 기본 뼈대를 삼았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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