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 한잔하러 가세.” 이 초시가 오 생원 소매를 당겼다. 동구 밖 주막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이 초시가 말문을 열었다. “내 동생, 자네도 알지?” “알고 말고. 천하의 한량이지.” “쥐뿔도 없는 게 지가 무슨 호걸이라고 허구한 날 저자거리 두목 노릇을 하더니만 논밭 다 팔아먹고 며칠 전에는 집까지 날렸다네.” 한숨을 크게 쉬고 난 이 초시가 “자네가 내 동생을 데리고 다니며 장사 좀 가르쳐주게.” 이 초시가 바짝 붙어앉아 통사정을 하며 너비아니 안주에 청주를 돌리자 “쩝, 여기저기서 그런 부탁을 받은 게 한두 개가 아닌데….” 마지못해 청을 들어줬다.
오 생원은 돈이 되는 거라면 똥오줌을 가리지 않았다. 이 초시가 부탁했을 때 고추를 불며 배짱을 튕겼지만, 내심 그는 쾌재를 불렀다. 첫째 이 초시 동생 맹복이는 큰 덩치에 힘이 좋아 함께 다니면 다른 장돌뱅이들의 해코지가 없을 터이고, 둘째 짐보따리를 손수 지고 다니는 수고를 덜 수 있어 좋고, 셋째 모든 잡일 다 시키고도 품삯 줄 필요가 없고….
보름 동안 맹복이를 데리고 집에서 만든 우황골신환과 해구신 건포를 궤짝에 싸서 맹복이가 짊어지고 오 생원은 앞장서서 장삿길에 올랐다. 사흘째 되는 날 고래등 같은 기와집 대문을 두드려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오 생원, 지난가을에 구해온다던 거 가져왔어?” 늙어서 골골하는 영감이 다리를 주무르던 첩실을 내보내고 물어오자 오 생원이 “말도 마십시오. 이걸 구하러 황포 돛배를 타고 울릉도에 가다가 풍랑을 만나 죽을 뻔했습니다요.” 맹복이 메고 온 고리짝을 열고 비단 보자기를 풀자, 향나무 상자 안에 한지로 열두겹을 싼 해구신이 나왔다.
해구신을 비싸게 팔아먹고 그 집을 나서는데, 맹복이 “사부님, 하나 여쭙겠습니다요. 해구신은 물개 물건 아닙니까? 그런데 보신탕집에서 사온 개 물건을 말려 팔면?” “야 이놈아. 장사란 원래 그런 거야. 진짜 해구신이라고 먹으면 벌떡 서는 줄 알아? 해구신이라 믿고 먹으면 그게 정력제야!” “사부님, 울릉도는 언제?” “시끄러 임마.”
맹복이 어리둥절해하며 뒤따르는데, 날이 저물어 나루터 주막에 들어갔다. “잘 있었어, 풍천댁?” 오 생원이 주모의 엉덩이를 치자 그녀는 싱긋 웃으며 “쇤네 목간한 날 알고서 찾아왔소?” 오 생원은 기침이 심해 어떨 때는 피까지 토하면서도 색(色)을 밝힌다. 이렇게 둘은 한달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가짜 해구신 다섯개를 팔고 아편을 넣은 우황골신환을 떨이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삼년을 다녔는데, 문제는 어느날 오 생원의 기침이 깊어지고 피 토하는 빈도는 잦아지더니 마침내 드러눕고 만 것이다. “사부님, 빨리 쾌차해야 장삿길에 나서는데….” 매일 오 생원 집으로 출근하는 맹복이에게 “내 장사수법을 너에게 다 가르쳐줬다. 콜록콜록.” 눈만 껌벅거리던 맹복이 왈 “저는 그런 식으로 부자되기는 싫습니다.”
그때 오 생원의 젊은 재취가 약사발을 들고 들어왔다. 본처는 애를 못 낳는 석녀라 몇 해 전에 쫓아내고 젊고 예쁜 재취를 들여 놓았지만 그녀도 애를 낳지 못했다. 약사발을 들고 들어온 오 생원의 재취 부인이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자 누웠던 오 생원이 눈을 부릅떴다. “몇 달 됐노?” 묻자, 부인은 고개를 떨구는데 맹복이가 “넉달 됐습니다.” 넙죽 말했다. 지난 일년간 합방한 사실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오 생원이 뼈만 남은 팔을 뻗어 맹복이를 가리키며 “너 이놈, 켁켁.” 피를 크게 토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퀭하니 눈만 뜨고 있는 오 생원에게 맹복이가 한마디했다. “사부님, 나는 이런 식으로 부자가 되렵니다.”
그날 밤, 오 생원은 죽고 맹복이는 오 생원 재취와 가시버시가 되어 오 생원이 한평생 모은 재산을 손쉽게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