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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과부가 부자가 된 사연

淸潭 2017. 1. 15. 13:25

까막과부가 부자가 된 사연

고흥설화 / 설화


옛날 고흥 포두면 정암마을에 송씨 성을 가진 청상과부가 살았다. 동강에서 시집 온 송 여인은 그다지 미색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행동거지가 반듯하여 기품이 있었다. 하지만 시집을 오자마자 까막과부(望門寡婦)가 되고 말았다. 장가를 가자마자 아들이 죽자 며느리를 잘못 얻은 탓이라며 시아버지는 며느리 얼굴을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한 술 더 떠 ‘서방 잡아먹은 X’이라며 며느리 구박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시부모의 태도가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송 여인은 시집살이를 하는 자신이 한 없이 서러웠다. 하인이라도 그렇게 부려먹지 못할 것이었다. 때로는 아예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송 여인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묵묵히 시부모를 모셨다.


그러나 결국 시부모의 구박을 견디지 못한 송 여인은 시댁에서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왔다. 하지만 친정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 그래서 송 여인은 마을에서 오 리쯤 떨어진 곳에 허름한 집을 얻어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쫓아낸 시부모를 먼발치서 지켜보았다. 비록 구박을 하기는 하였지만 시부모는 시부모였고, 어린 아들을 떠나보낸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렵고 힘들면서도 더러 먹을 것이 생기면 몰래 시댁 부엌에 먹을 것을 놓고 오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송 여인 혼자 사는 집에 나그네가 찾아왔다. 나그네는 다짜고짜 하룻밤 묵어가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남녀가 유별한데, 이 무슨 당치 않은 소리예요. 여기서는 묵어갈 수 없으니 당장 다른 곳으로 가보세요.”

나지막한 소리였지만 단호한 송 여인의 거절에 나그네는 발길을 돌릴 법도 하였지만 나그네 역시 만만치 않았다. 행색을 보니 정말 딱해 보이기는 하였다.

“길을 가다 발을 다쳐 더 이상 걷기가 힘든 지경이오. 이슬만 피하면 되니 어디서든 묵어가게 해주시오.”

그러고 보니 나그네의 발에는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피가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송 여인의 목소리가 다소 누그러졌다.

“보아하니 사정이 딱한 것 같으니, 그렇다면 방에서 쉬었다 가세요. 나는 부엌에서 잠을 잘 테니...”

결국 나그네는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송 여인이 간단한 아침상과 함께 약재 몇 가지를 가지고 왔다.

“먼 길을 오셔서 시장할 테니 차린 것은 없지만 간단히 요기를 하세요. 그리고 이 약재를 찧어 바르면 웬만한 상처는 쉬 아물 것입니다.”

친절하고 상냥한 송 여인의 태도에 나그네는 그만 가슴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더니 바지가랑이를 걷어 올렸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대수롭지 않을 것 같았던 상처가 너무도 깊었다. 송 여인은 나그네의 정강이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뼈가 보일 정도로 살점이 움푹 패인 것은 물론 여기저기 피가 굳어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겉으로는 몰랐는데 상처가 심하군요. 괜찮으시다면 며칠 묵으면서 상처를 치료하고 가시지요.”

어젯밤과는 달리 송 여인의 태도가 상당히 많이 누그러졌다. 상처가 깊은 탓도 있지만 나그네는 기골이 장대한데다 인상마저 좋았다. 그래서 청상과부로 몇 년을 보낸 송 여인의 마음속에 묘한 감정이 일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상처를 치료하느라 며칠을 묵는 과정에서 나그네는 송 여인에게 푹 빠져버렸다. 송 여인 역시 나그네가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결국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가 되었다. 일찍 저 세상으로 간 남편과 시부모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였지만 한번 피어난 사랑의 꽃은 시들 줄 몰랐다.

나그네와 송 여인이 뜨게부부(오다가다 만나 사는 부부)로 함께 살게 되자 소문은 금세 정암마을에까지 흘러들어갔다. 아들이 죽은 후로 그렇게 구박을 하고 급기야 쫓아내기까지 했던 시부모가 쳐들어와 해꼬지를 하였다. 막상 쫓아내기는 했지만 다른 사내와 산다니까 분이 났던 모양이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송 여인의 걱정은 정작 다른 데 있었다. 꽃잠도 못 치른 채 과부가 된 탓에 허우대 멀쩡한 나그네에게 정이 들어 같이 살기는 하였지만 정작 나그네는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은 커녕 대낮에는 아예 바깥출입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먹을 것이 떨어지기만 하면 나그네는 한눈에 보기에도 값비싼 패물과 엽전을 꺼내 송 여인에게 주었다. 본디 가진 것이 많은 분이구나 하는 생각에 송 여인도 점차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나그네가 주는 엽전만으로도 먹고 살 수는 있었기에 송 여인은 패물을 한 곳에 모아두었다. 어차피 시골구석에서는 그러한 패물을 팔 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은 정작 다른 곳에서 터졌다. 물을 길으러 우물가에 갔던 송 여인이 마을 아낙네들이 하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평소에도 자신을 가리켜 계명워리3)네 뭐네 뒷이야기들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우물가 아낙들이 하는 이야기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고을 여기저기에서 밤이면 밤마다 도둑이 든다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저 건너 사는 과부가 뜨게부부 아녀? 그런데 두 사람이 하는 일도 없이 먹고 사는 것을 보면 이상하지 않아?”

하나같이 자기 두 사람을 의심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쫓기듯 집으로 돌아온 송 여인은 해가 중천에 뜨도록 방안에 드러누워 있는 나그네를 보고는 자신 역시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작정을 하고는 나그네를 닦달하였다.

“아니, 나가서 뭐라도 일을 할 생각을 해야지 날이면 날마다 방안에만 있으니 어찌 살란 말이오? 패물이 있으면 한꺼번에 줘야 뭘 해보지 도대체 하루하루 밥만 먹고 살란 말이오?” 

송 여인이 다그쳐도 나그네는 꼼짝을 하지 않았다. 마치 해를 싫어하는 사람처럼 나그네는 그럴수록 더욱 이불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날 밤이었다. 송 여인이 한창 잠에 곯아떨어지자 나그네가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낮에는 언제 방에서 뒹굴었을까 싶을 정도로 민첩하였다.

나그네가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송 여인이 눈을 뜨더니 바깥을 살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나그네가 갑자기 도깨비로 변하더니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소스라치게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던 송 여인은 어차피 도망가 봐야 벗어날 수 없다 생각하고는 그대로 자리에 누워 자는 척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나그네가 다시 들어오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에 누웠다.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는 송 여인에게 나그네가 뭔가를 쥐어주었다. 난생 처음 보는 커다란 진주였다. 진주 때문에 깜짝 놀란 것인지 나그네 때문에 깜짝 놀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잠시 흠칫하던 송 여인이 진주를 받아들고는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송 여인이 평소에 알고 지내던 노스님을 떠올렸다. 시부모님께 구박을 받던 때 우연히 지나가던 노스님께 공양을 하였는데 송 여인의 처지를 눈치 챈 노스님이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서 그 후 어려운 일만 생기면 송 여인은 노스님을 찾아가 마치 친정아버지처럼 위안을 받고 오곤 하였다.


노스님을 만난 송 여인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그랬더니 노스님은 도깨비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팥이라며, 팥으로 죽을 쑤어서 얼굴에 부으면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송 여인은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팥죽을 끓였다. 해가 있을 때에는 바깥에 얼씬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팥죽을 써서 방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는데 나그네는 여전히 꿈나라였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나그네에게 다가간 송 여인이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이내 뜨거운 팥죽을 나그네의 얼굴에 부었다.

“앗 뜨거!”

깜짝 놀라 잠에서 깬 나그네가 순식간에 도깨비로 변하더니 얼굴을 감싸 쥐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노스님 덕분에 겨우 도깨비를 쫓아낸 송 여인은 그런 줄도 모르고 도깨비와 몇 달을 지낸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비록 도깨비였지만 자신을 위해주는 마음만큼은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패물 생각이 났다. 지금까지 모아둔 패물이 그렇다면 모두 도깨비가 훔친 장물이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 미친 송 여인은 몰래 패물을 팔아 편하게 살까 고민을 하다가 도저히 양심이 허락지 않아 관아에 신고를 하였다.

그런데 한 달이 다 되도록 패물을 잃어버렸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은 도깨비가 고관대작의 부정한 패물만 훔쳐왔던 것이다. 결국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패물은 여인에게 돌아왔다. 습득물을 신고하였는데 일정 기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습득자에게 귀속시킨다는 법령이 있었던 것이다.


송 여인은 그나마 도깨비에게 고마워하면서 그 패물을 팔아 밭을 수십 마지기나 샀다. 그런데 살 때는 멀쩡하던 밭이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온통 여기저기에 말뚝이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쫓겨난 도깨비가 여인을 골탕 먹이려고 밤새 밭 여기저기에 빽빽하게 말뚝을 박아버린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날벼락을 맞은 송 여인이 사람을 시켜 말뚝을 뽑으려 했지만 장정들이 뽑아도 좀처럼 뽑히질 않았다. 그래서 송 여인은 다시 노스님을 찾아가 여쭤보았다. 그랬더니 개똥을 주워서 말뚝마다 부으면 말뚝이 빠질 것이라 하였다.


말뚝이 얼마나 많았으면 인근 고을의 개똥이란 개똥은 다 주워 부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개똥을 부으면 말뚝이 빠지는 것이 아닌가. 결국 석 달 열흘을 개똥을 주워 부은 끝에 말뚝을 모두 뽑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 밭들이 인근 그 어느 땅보다도 옥토가 되었다.


결국 도깨비 덕분에 부자가 된 송 여인은 시부모님께 이러한 사정을 말씀드리고 시부모님을 다시 모시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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