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잡기 제3권(靑城雜記卷之三); 성대중(成大中)
성언(醒言) 사람을 깨우치는 말
개와 개가죽
금강산의 어떤 중이 탁발(托鉢)을 하다가 북쪽 지방에 들어가 보니, 북도(北道 함경도) 사람들은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노끈을 얽어 만든 갓에 개가죽 옷을 입고 있었다(不擇賤貴,率繩笠而狗製). 중이 처음에는 양반에게는 절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그들을 똑같이 대했으나 사람들 역시 그를 꾸짖지 않았다.
마침 모임이 있는 곳을 지나다가 술통을 치며 동냥을 하는데, 무리 중에 옷차림이 조금 나은 자가 술에 취해 상석(上席)에 앉아 있었다. 그는 중이 자기에게 따로 절하지 않은 데 분노하여 잡아다가 꾸짖고 매를 치려하였다. 이에 중은 싹싹 빌며 사죄하였고, 여러 사람들까지 말려 준 덕에 매질을 면하였다. 상석에 앉은 자는 좌중을 돌아보며 웃고는 의기양양하게 중을 불러 술을 주며 말했다.
“네가 남쪽에서 왔으니 나와 조금은 말상대가 되겠구나(若自南來,差可與語).”
그리고는 중의 나이와 지나온 곳 등을 꼬치꼬치 물었는데, 중 역시 조금 취하여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하였다. 그러면서도 분한 기운이 가슴에 꽉 차 있어 속으로 이렇게 탄식하였다.
‘저 개가죽 옷을 입은 놈이 나를 이처럼 치욕스럽게 하니, 내 진정 개만도 못하단 말이냐(彼直狗之餘也,乃困辱我如此,僧固狗之不如也).’
이때 갑자기 개 한 마리가 울타리에서 튀어나와 짖으며 자리를 향해 앉았다. 중이 단숨에 개 앞으로 달려가 절하고, - 부처는 “개도 불성(佛性)을 갖추었다.” 하였으니, 중이 개한테 절하는 것이 뭐 욕될 것 있겠는가(佛言狗子具佛性,和尙之拜,何辱之有哉). - 지나온 곳과 이름, 나이 등을 상석에 앉은 자에게 대답할 때와 똑같이 낱낱이 진술하더니
“맞이해 절을 올리는 것이 조금 늦었으니, 죽을죄를 졌습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而仍謝迎拜稍慢,死罪死罪).”
하며 사죄하였다. 상석에 앉은 자가 괘씸하게 여겨 큰 소리로 꾸짖기를,
“개한테 절하는 것도 중의 예인가. 또 어찌 개한테 잘못하였다고 사죄한단 말인가?”
하니, 중이 곧 머리를 치켜들고 성난 기색으로 말했다.
“개털을 빌린 자도 오히려 사람을 위압해 절하게 하는데, 개털을 본래 지니고 있는 분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제가 참으로 죄를 두려워하여 감히 절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늦게 절한 죄를 빈 것입니다(假毛於狗,猶足威人而督之拜也,況其固有之者耶。僧誠畏罪,不敢不拜,且請緩拜之罪,衆皆黙然).”
좌중은 모두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중이 개한테 절한 것과 산군(山君 : 호랑이)이 밤〔栗〕에 절한 것은 풍자와 두려워한 것이 다르지만 모두 포복절도할 만하다(和尙之拜狗子,山君之拜栗,剌諷與慴雖殊,俱堪絶倒).
ⓒ 한국고전번역원 ┃ 윤미숙 김용기 (공역) ┃ 2006
중을 천대하는 것이야 시대가 그래서였다고는 하지만, 천대받는 입장에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시대도 ‘갑질’이 만연한 시대.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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