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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사흘간 친정집에 간 사이…

淸潭 2017. 1. 13. 11:21

눈 오는 삼거리

털보 내외를 종으로 들인 이진사

포토뉴스
 동짓달이 되면 천석꾼 부자 이 진사댁 사랑방은 법석거린다. 이 진사는 양반으로 학식이 높고 부(富)도 넘치지만 가슴은 차갑다. 그래서 이 진사댁에서 한해 머슴살이를 하고 나면 새경을 받아 떠나버리는 게 다반사다. 부창부수라, 안방마님도 대갓집에서 시집와 조신하지만 인정머리가 없다. 몸종·찬모가 툭하면 나가버리는 것이다.

 이 진사가 면접을 하다가 한 부부를 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삼십대 중반의 남자는 건장한 몸에 수염이 덥수룩했고, 마누라는 얌전하지만 미모가 빼어났다.

 “여기 오기 전에 무엇을 했는고?” “한양 북촌 민 대감댁에서 행랑아범을 했고, 집사람은 노마님의 몸 수발을 들며 주로 지압과 안마를 했습니다.” 보료에 비스듬히 기대 있던 이 진사가 상체를 일으키며 “그거 잘됐네. 내가 허리가 안 좋은데 지압을 받으면 좀 낫겠는가?” 털보 서방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을 못하자 “남녀 몸이 다를 바 없습니다”라며 마누라가 당돌하게 나섰다. “자네는 글을 깨우쳤는가?” 이 진사가 묻자 털보가 “어릴 때 조부님으로부터 동몽선습·사자소학을 배웠습니다.” “그래?!” 이 진사가 크게 놀라며 “자네는 우리집 살림을 총괄하는 집사로 일하게.”

 이 진사는 털보 내외의 살림집을 대문 코앞에 마련해줬다.

 털보가 치부책을 손수 만들어 곳간 재고량, 전답 목록, 소작인 인적사항 등을 엮어 이 진사에게 보였다. 이 진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만족했다.

 털보 마누라는 지압을 아주 잘했다. 지압을 받고난 이 진사는 “내 몸이 날아갈 듯하네”하면서 주머니에서 한냥을 꺼내 털보 마누라에게 쥐어줬다. 이 진사가 털보 마누라를 부르는 횟수가 잦아졌다. 한번은 이 진사가 엎드려 목 지압을 받다가 꿇어앉은 털보 마누라의 터질듯한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별 반응이 없어 이번엔 주무르자 털보 마누라가 이 진사의 손목을 잡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그날은 두냥을 집어주자 털보 마누라는 배시시 웃으며 나갔다. 다음부터 엉덩이를 만지는 것은 예삿일이 되고 손은 털보 마누라의 치마 밑으로 드나들기 일쑤였다.

 안방마님에게 털보 마누라는 눈엣가시다. 이 진사가 지압을 받고부터는 두달이 지났는데도 발걸음조차 없는 것이다.

 하루는 안방마님이 사랑방으로 이 진사를 찾아가 “나으리, 글피가 친정아버님 생신입니다. 함께 가야 되겠지요?” 묻자 이 진사가 서슴없이 “부인만 다녀오시오. 나는 허리가 아파 걷지도, 말을 탈 수도 없다는 걸 부인이 잘 알잖소.” 이 진사는 집사를 장터에 보내 비단 한필·육포·청주·갈비 등을 구해오라 시킨 뒤 장본 것을 말 등에 실어 부인을 친정에 보냈다. 말고삐는 털보 집사가 잡았다.

 오십리 밖 처갓집에서 부인과 집사가 돌아오는 날은 사흘 뒤다. 홀가분한 첫밤이 찾아왔다. 지압을 하러 사랑방을 찾아온 털보 마누라의 분 냄새에 벌써 이 진사의 하초는 뻐근해졌다. 허벅지 지압을 받다 말고 이 진사는 벌떡 일어나 돈주머니를 치마폭에 던져주고 후~ 촛불을 껐다. 광란의 밤이 오경(五更)이 되어서야 끝났다. 둘째날 밤도 털보 마누라를 발가벗겨 눕히려는 찰나, 콰당탕 문이 열리며 시퍼런 낫을 든 털보가 신발을 신은 채 들어왔다.

 “국법에 간부(姦夫)는 현장에서 쳐죽여도 죄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가!” 털보의 목소리가 산천을 울렸다.

 이 진사는 목숨을 건진 대신 거금 천냥을 털보에게 바쳤다. 이틀 후 안방마님이 친정에서 돌아왔다. 털보 마누라가 마님을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마님, 쇤네는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 신랑하고 마님이 몇번이나 동침을 했는지.” 마님의 얼굴이 새하얘지며 말 한마디 못했다.

 털보 내외는 이 진사댁을 하직하고 나왔다.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남촌댁, 안방마님한테 얼마를 뜯어냈소?” “패물함을 몽땅 털었지요.” 털보가 말했다. “우리 기왕 이렇게 된 거, 가시버시로 살면 어떻소, 남촌댁?” “그런 소리 마시오. 조강지처를 버리고 잘되는 사람 없소. 아이들과 마누라 선물 사서 빨리 집으로 가시오. 나는 한의원에 가서 산삼과 녹용을 사서 드러누워 있는 우리 신랑을 일으켜 세울 참이요.”

 삼거리에서 둘은 갈라섰다. “또 좋은 건 있으면 연락주시오.” 남촌댁이 고개를 돌려 또렷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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