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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목의 슬픈 전설

淸潭 2016. 12. 29. 19:44

마녀목의 슬픈 전설

여수설화 / 설화


여수시 화정면 개도에 있는 화산마을 앞에는 커다란 정자나무가 하나 있다. 수령이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인데 마을사람들은 그 느티나무를 마녀목(馬女木)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숙종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화양면을 곡화(曲華)라고 했는데 말을 사육 관리하는 목관(牧官)이 있었다. 화양면 일대는 물론 인근 백야도, 개도, 제도, 낭도까지 나라에서 제공한 말을 사육하여 목관에게 제공하였다. 그러나 말이 병에 걸려 죽거나 잘 크지 않으면 목관으로부터 질책이 대단하였고, 때로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했다. 목관 역시 다른 지역 목관들과 비교하여 상벌이 정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화양 목관들은 말을 잘 기르기 위하여 특별 사육사를 선정하였다. 심지어 제단을 짓고 상산봉에서 천지신명께 대제를 올렸다. 제단에는 목관이 제공한 철마상, 목마상을 모셨다. 그래서 지금도 상산봉을 천제봉이라 부른다.  

특별 사육사로 선정된 사람 가운데 이돌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개도 화산마을에 사는 그는 무남독녀 외동딸을 두었는데, 이름이 복녀였다. 열네 살 난 복녀는 아버지를 도와 마사를 깨끗이 청소하였으며, 대제를 지낼 때도 정성으로 아버지를 도왔다.


돌수의 능력이 뛰어난 때문인지, 아니면 딸 복녀의 지극정성 때문인지 돌수가 관리하는 말들은 병들지 않고 잘 자랐다. 돌수가 관리하는 말 가운데 점박이 말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복녀가 특별히 신경을 쓰며 돌보자 말도 그 정성을 아는지 유독 복녀를 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점박이 말이 언덕 바위에 앞다리를 받아 다리를 다쳤다. 뼈에 금이 갔는지 크게 절룩이며 풀도 먹지 않았다. 돌수의 걱정도 걱정이었지만 복녀는 근심이 더 컸다. 쉬쉬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어서 돌수는 목관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려 하였다.


“복녀야. 마음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목관 나리께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


그러자 복녀가 펄쩍 뛰었다. 대개의 경우 말이 부상당하여 쓸모가 없어지면 폐마하고 만다. 사료를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복녀가 펄쩍 뒨 것이다.


“절대 안 돼요. 아버지. 제가 치료를 해볼게요.”


복녀는 자신이 점박이를 치료하여 보겠다고 아버지한테 애원하였다. 복녀가 점박이를 특별히 예뻐하는데다 점박이 역시 복녀를 따르는 편이라 돌수도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말의 생태를 잘 알고 있는지라 돌수는 점박이가 낫는다 해도 발을 저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복녀야. 점박이는 낫는다 해도 발을 저을 수밖에 없단다. 말은 다리가 생명인데 다리를 저는 말은 살려둘 수 없단다. 그러니 나리께 미리 보고를 하는 것이 화를 면하는 길이다.”


“아버지, 그럼 10일만 말미를 주세요. 10일 안에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딸이 끝까지 애원하자 돌수도 어쩔 수 없었는지 열흘의 기간을 주겠노라고 허락하였다. 그날부터 복녀는 잠도 자지 않으면서 점박이를 돌보았다. 무엇이 약이 될지 몰라 이것저것 약초를 찧어 붙이고는 속을 파낸 왕대로 부목을 대고 천으로 감쌌다. 복녀가 지극정성으로 점박이를 돌보자 물 한 모금 못 마시던 점박이가 사흘 째 되는 날부터는 먹기 시작하였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주루룩 눈물조차 흘리는 것을 보면 복녀에게 고마워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점박이를 치료하는 한편으로 복녀는 새벽마다 상산봉에 올라가 천지신명께 두 손 모아 빌었다. 며칠 후 복녀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


“제단 옆 옹달샘에 보면 가재가 있을 것이다. 그 가재를 세 마리 잡아서 생즙을 내어 먹이면 효험이 있을 것이다.”


복녀가 꿈에 산신이 일러준 대로 옹달샘에 가보니 정말 가재가 있었다. 그래서 가재를 잡아 생즙을 내어 점박이에게 먹였다. 그랬더니 며칠 되지 않아 부목을 풀고 마침내 열흘이 지났을 때 점박이는 전보다 더 건강하게 뛰었다. 복녀는 점박이의 목을 안고 울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돌수도 기뻐하였다. 그 후부터 점박이는 복녀를 더 따랐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목관이 찾아왔다. 목관이 찾아오는 것은 대개 말을 고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료를 타거나 보고를 하는 경우는 사육사들을 부르기 때문이다. 목관이 나타나자 복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니나 다를까 절도사가 탈 말을 고른다던 목관이 하필이면 점박이를 고르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복녀가 뛰쳐나가 목관에게 애원하였다.


“나리. 이 말은 제발 놔주세요. 다른 말도 많잖아요. 네?”


갑자기 나타난 복녀가 목관의 소매를 붙들고 애원하자 목관이 복녀를 뿌리치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무슨 짓이냐?”


그러자 돌수가 목관에게 다가가 이야기하였다.


“나리. 제 딸년이 저놈을 각별히 돌보았는데, 그러다 보니 정이 든 모양입니다. 다른 말도 튼실한데...”


그러자 목관이 돌수와 복녀를 번갈아 보더니 버럭 화를 냈다.


“감히 너희들이 나라에서 키우는 말을 사사로이 여긴단 말이냐? 한번만 더 나서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서슬이 퍼런 목관의 호통 소리에 돌수와 복녀도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 결국 복녀와 점박이는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다. 목관에게 끌려가는 점박이도 연신 뒤를 돌아보는 것이 복녀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복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웠다. 당장이라도 점박이가 어디선가 울면서 뛰어올 것 같았다. 그러니 마음의 병이 들고 만 것이다. 돌수가 아무리 위로하고 간호를 해도 소용이 없이 복녀의 병색은 짙어만 갔다.


그런데 하루는 복녀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얘야. 그 몸으로 어딜 가겠다고 나서느냐. 그냥 자리에 누워 있거라.”


그런데도 복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더니 목장으로 갔다. 돌수도 그런 복녀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복녀가 목장 가까이 가자 어디선가 점박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돌수와 복녀는 몇 달 만에 들어도 그것이 점박이 소리인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서둘러 목장으로 가보니 정말 점박이가 있었다. 허리에는 무거운 안장을 채운 채 상처투성이가 되어 서있었다. 야윌 대로 야위어 눈물마저 말라버린 것 같던 복녀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복녀는 점박이의 목을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런 복녀와 점박이를 지켜보던 돌수가 굵은 눈물을 흘리더니 돌아서 나왔다. 먼 길을 와서 지쳤을 점박이에게 싱싱한 풀을 베어다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한참 후 돌수가 풀을 한 짐 가득히 지고 돌아와 보니 복녀와 점박이 모두 숨져 있었다.


점박이는 절도사가 있는 광주에서 탈출하여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들판을 돌고 돌아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오느라고 기진맥진하여 지쳐 죽고 말았다. 복녀 역시 몇 달 동안 식음을 전폐하였는데 점박이를 그리워하며 버티다가 점박이가 쓰러져 죽자 스르르 점박이 위로 쓰러지더니 결국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아무리 끌어안고 통곡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외동딸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 채 돌수는 복녀와 점박이를 나란히 묻었다. 그리고 묘 주변에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세월이 흘러 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느티나무는 살아남아 옛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를 마녀목이라 부른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 이 내용은 여수문화원장을 지낸 故 문정인 선생님이 채록한 내용에서 기본 뼈대를 삼았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