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의 노변한담] 이성계와 걸승(乞僧)
한남대학교 전 총장
무학대사의 꿈 해몽에 고무되어 심중에 임금이 된다는 확신을 갖고 희색이 낙락한 이성계에게 부장(副將) 한 명이
“장군님 안변(安邊)이란 곳에 글자 한 자를 짚어내면 그 글자를 쪼개고 분석하여 파자정단(破字正斷)하는 걸승(乞僧)이 있다는데 같이 한번 가보심이 어떨까요?”라고 권하였다.
그래서 이성계는 변방의 방위태세를 점검한다는 명분으로 그곳을 찾아 갔다. 산기슭에 토굴을 파고 사는 걸승은 중이라기보다 상거지의 모습이었다. 이성계와 동행한 군졸들도 허름한 백성으로 변복하고 토굴 앞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에서 걸승을 만나고 나오는 사람마다 혀를 차며 “어쩌면 그렇게 귀신같이 맞추는지 모르겠다.”며 감탄하는 모습들이었다.
이성계도 줄 서 있다가 차례가 되어 굴속으로 들어갔다. 굴 안에는 30-40대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이성계는 그 걸승이 어떻게 정단(正斷)하는가를 바라보았다.
걸승은 남자에게 자기가 써 놓은 여러 글자 중에서 한 자를 짚으라고 했다. 그 남자는 물을 문(問) 자를 짚었다. 걸승은 그 글자를 한참 동안 보고 있더니 “허, 당신은 내 친구여, 내 친구로구만.”
하니까 그 남자가 무슨 말씀이신가 물었다. 그러자 걸승은
“당신 거지 아니야? 거지. 거지도 몰라? 당신이나 나나 깨진 바가지에 밥 얻어먹는 것은 똑같잖아. 그러니까 당신과 나는 친구지 허허...”라고 큰 소리로 성토하자, 감탄한 그 남자는
“대사님. 맞습니다. 전 거지에요. 한때는 그런대로 잘 살았는데 오랑캐가 쳐들어왔을 때 처자식을 다 잃고 한을 품은 채 하늘을 지붕 삼아 문전걸식하며 살고 있습니다.”라면서 울고 나갔다.
그 뒤에 여인이 세상살이는 비관적이지만 앞으로 즐거울 일이 있을까 하여 즐거울 락(樂) 자를 짚었다. 그러자 걸승은
“체엣! 과부구만 당신 남편이 목매달아 죽었지?”
라며 추상같이 외쳤다. 그러자 그 여인이
“그래요 도사님. 남편은 약초를 캐러가서 목매달아 자살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것까지 아시나요?”
하자 걸승은 주저함 없이
“허, 즐거울 락(樂) 자를 봐. 흰 백(白) 자가 상층 중심부니까 사람으로 보면 목 부위에 해당하는데 그 양쪽에 흰 실타래(糸)가 있잖아. 이는 마치 목을 맨 끈과 같고 맨 밑에 나무 목(木) 자는 칠성판에 누워있는 게 아닌가? 허허허”하는 것이었다.
이어 이성계 차례가 되었다. 일부러 초라하게 보이려고 짚고 왔던 나무막대기를 벽 쪽에 기대어 놓고 걸승의 면전에 정숙하게 앉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워놓은 막대기가 옆으로 뎅그렁하고 토굴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자 심상치 않다는 듯 한참을 바라보더니 “에헴, 헛배가 부르도다.”
하면서 이성계에게 글자 하나를 짚으라 했다. 이성계는 아까 나간 거지가 짚었던 물을 문(問) 자를 짚었다. 걸승은 아까는 문(門) 앞에 입(口)이 있으니 문전걸식(門前乞食)하는 거지라고 하더니 이번엔 좌군우군(佐君右君)이라고 풀었다. 같은 글자인데 왜 해석이 다르냐고 묻는 이성계에게
“해와 달이 춘하추동을 이루고 세상만유(世上萬有)는 돌고 돌아 시시각각으로 천차만별하기에 같은 글자라도 짚는 사람의 앉아있는 방향이나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법.”
이라고 대답했다.
“아까 그 남자는 내가 얻어다 놓은 밥 옆에 앉아 ‘問’을 짚었으니 문전걸식하는 사람이었고 귀공께서는 임금 왕(王) 자 곁에서 ‘問’을 짚었으니 좌군(左君) 우군(右君)으로서 임금이 아니겠소?”
라고 설명했다. 왕(王) 자가 어디있는지요? 하니까
“바로 거기 있지 않소? 일장토상지락(一杖土上之落) 즉, 한 개의 막대기가 흙 토(土) 위에 떨어졌으니 이게 곧 임금 왕(王) 자가 아니겠소?” 흡족하여 자기가 이성계임을 밝히자.
“처음에는 몰랐으나 나중에 나타난 자괘(字卦)를 보아 알았다고 하면서 물을 문(問) 자를 자세히 보면 한 명의 임금(君)은 분명하나 또 다른 임금(君)은 분명치 않아 입 구(口) 자 하나를 두고 서로 끌어가려고 난투극을 벌이다 입(口) 마저 찢어질 형상이라. 당신은 분명히 왕이 되겠지만 그 후 3대까지는 왕위찬탈의 비극이 있겠다.”
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성계에게 정중히 예의를 갖추었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으로 왕이 되자 무학대사를 왕사(王師)로 임명하고 석왕사(釋王寺)를 지어주었다. 걸승의 예언대로 3대에 걸쳐 왕자의 난을 거친 후 세종 때에야 태평성국이 된 것도 사실이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
공자(孔子)의 제자인 증자(曾子)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려고 하는데 어린 아들이 따라가겠다고 보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증자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얘야, 따라오지 말고 집에 있어라. 엄마가 시장에 갔다 와서 돼지를 잡아 맛있는 요리를 해주마.”
그 말에 아이는 떼쓰기를 멈추었고 얌전히 증자 곁에서 혼자 놀았습니다.
얼마 후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와 보니 증자가 돼지를 잡고 있었고, 어린 아들은 신이 나서 옆에서 팔짝팔짝 뛰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깜짝 놀라 남편 증자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여보. 아까 내가 돼지를 잡겠다고 한 건 그냥 애를 달래려고 한 건데...정말 돼지를 잡으시면 어찌합니까?”
증자가 정색하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아이에게 실없는 말을 해서는 안 되오. 아이들은 무엇이든 부모의 흉내를 내고 배우게 마련이오. 그런데, 당신은 어머니로서 아들을 속이려 했소. 어머니가 아이를 속이면 그 아이는 다시는 어머니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니, 훗날 어떻게 아이를 가르치겠소?”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어느 친한 두 친구가 사막으로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친구는 여행 중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하게 되었고 한 친구가 다른 친구의 뺨을 때리고 말았습니다.
뺨을 맞은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래 위에 글을 적었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뺨을 때렸다.’
그들은 오아시스가 나올 때까지 말없이 걸었습니다. 마침내 오아시스에 도착한 두 친구는 그곳에서 쉬었다가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뺨을 맞았던 친구가 오아시스 근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자, 뺨을 때렸던 친구가 달려가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늪에서 빠져나온 친구는 이번에는 돌에 글을 적었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그 친구를 때렸고, 또한 구해준 친구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내가 너를 때렸을 때는 모래에다 적었는데, 왜 너를 구해준 후에는 돌에다 적었니?”
그러자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괴롭혔을 때는 모래에 그 사실을 적어야 해. 그래야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지워버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했을 때는 그 사실을 돌에 적어야 해. 그래야 바람이 불어와도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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