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독자의 살인누명
조선조 중엽에 아들이 몹시 귀한 가문의 삼대독자로 정홍수(丁弘洙)란 선비가
있었다.
홍수는 그 귀한 아들 하나라도 얻기 위하여 유명하다는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공을 들였다.
그 공덕이었음인지 겨우 아들 하나를 얻게 되어 그 아이 이름을 정창옥(丁昌玉)
이라 지었다. 창옥은 어려서부터 자라나면서 남다른 비범함에 뭇사람들의 칭찬
이 끊이지 않았다. 더구나 4대독자인 귀한 아들이었으니, 그야말로 금지옥엽(金
枝玉葉)으로 들면 날까 놓으면 깨질까 아주 귀엽게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걸승이 아이(창옥)의 얼굴을 삿갓을 쳐들고 내려보더
니, "어허, 그것 참 안됐구나." 하면서 혀를 끌끌 차고는 가던 길을 가는 것이었
다. 그러자. 창옥 아버지는 아차 하면서 무엇인가 궁금한 생각에 그 걸승을 찾아
보았지만 그 걸승은 이미 모습을 감추어버린 뒤였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아이가 열 댓 살 먹게 되었을 때, 인간의 운명을 귀신처럼
알아 맞춘다는 길도사(吉道士)를 찾아갔다. 길도사는 향을 피운 방안에 향냄새
가 진동하자. 주역팔괘를 응용하여 창옥의 앞날을 예지하기 시작했다. 작괘(作
卦)를 해놓고 괘상(卦象)을 한참 주시하더니, 다음과 같이 예언을 했다. "이 아
이는 틀림없이 18살 때에 명문가 규수와 혼례를 치르게 될 것이요. 하지만 혼례
를 치르고 동침하다 급사를 하게 되니, 이 또한 한 인간의 슬픔이 아닐 수 없
소."
이런 예언을 들은 아이의 아버지 정홍수는, "4대 독자인 아들이 그럴 바에야 차
라리 내가 죽어 그 액땜을 할 수는 없소이까?" 하며 길도사에게 매달렸다. 눈물
을 흘리며 매달리는 정홍수가 길도사에게 막무가내로 통사정을 하자. 길도사는
냉정한 표정을 지으면서, "인간의 운명은 하늘이 이미 정해준 천명인데, 그 어찌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 그것을 좌지우지 할 수 있겠소이까?" 하며 단호하게 거절
해버렸다. "그리고 설령 액을 면할 수 있는 비방을 가르쳐준다 해도 그것을 순간
적으로 지키지 못하고 마는 게 또한 인간이요." 길도사의 이같은 설명에도 불구
하고 정홍수는, "사람 하나 살려주시오." 하며 애원을 했다.
길도사는 매달린 정홍수가 안타까워, "본래 생명에 관한 비방(秘方)은 천기누설
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비밀을 철저히 지켜야 하며 만약 그렇지 못하고 경솔하
게 처신하면 반드시 천해(天害)가 있게 되오." 라고 힘주어 설명했다.
이렇게 비방을 설파한 길도사는 누런 종이 위에 개 세 마리를 그린 그림을 접어
주면서, "이 그림을 아들인 창옥이에게 주되 펼쳐보지 말고 생명이 위급하다고
느낄 때 펴보도록 하시오." 라고 지시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창옥이가 열여덟 살이 되자. 길도사가 예언한대로 혼담이 날
마다 줄을 이었다. 그 중에서 물색하고 물색한 재상의 딸 박선영(朴仙英)과 혼례
를 치렀다. 창옥은 길도사가 시키는 대로 잠은 물론이고 물 한 모금도 처가 집에
서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자. 사람들은, "별 이상한 혼례도 다 보았다." 하며
비아냥댔다.
그런가 하면 신부측에서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
닌 밤중에 날벼락처럼 혼례를 치른 신랑이 본가로 돌아가 버리자, 신부는 그대
로 친정에 눌러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혼례 초부터 독수공방을 하게 된 신부는 불운하게도 삼일 째 되던 날.
비명에 죽고 말았다. 칼에 깊숙이 찔린 배의 상처에서 나는 피가 방바닥에 흥건
하게 고였고 아래 속옷은 벗겨져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창옥의 처가식구들은 하늘이 무너진 듯 대성통곡을 했고
많은 사람들은, "신랑이 한 짓이 아니고, 누가 그랬겠느냐?"며 신랑을 죄인으로
몰아 부쳤다.
그도 그럴 것이 물 한 모금 밥한 숟갈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은 채, 신랑이 제
집으로 돌아갔으니 그런 말을 듣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처가 식구들은
우선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는 신랑을 살인범으로 단정하고, 형조에 고발
을 하였다.
살인죄 누명을 쓴 채, 형틀에 매어있는 창옥은, "나는 절대 그 사람을 죽이지 않
았다." 고 완강하게 부인했으나, 형조판서는 눈알을 위아래로 부라리며 바른대
로 말을 하라고 주리를 틀어댔다. 너무나 엄청난 고문에 못 이겨 길도사가 가르
쳐 준대로 했을 뿐이라고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하지만 형조판서는 그것으로는
물증이 될 수 없다며 목을 쳐서 저자거리에 매달도록 지시했다.
창옥은 내일 날만 밝아지면 목이 댕그랑하고 끊어질 것을 생각하니, 온몸이 오
싹했다.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옥에 갇혀 있는데, 형장에서 목을 치는
망나니가 다가와, "이놈아! 가자. 내가 오늘은 너의 목을 베는 게 하루 일과다.
그러니 죽을 놈 같으면 일찌감치 죽어야 나도 일찍 손발 씻고 처자식 있는 집으
로 돌아갈 게 아니냐." 하는 것이다. 그러자. 창옥이는 막연하게나마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쳐댔다.
"아! 바로 이거다."
그 언젠가 길도사께서 가르쳐준 비방이라며, 아버지가 허리춤에 간직하라고 했
던 호신용 그림이란 것이 생각났다. 허리춤에 똘똘 뭉쳐 있는 그림을 꺼내 형리
(刑吏)에게 주면서 형조판서에게 전달해주고 오도록 부탁했다.
그러자. 형리는, 그참! 별놈 다 보았네. 무슨 놈의 이런 좋지도 않은 종이뭉치를
주라고 하는 거야." 하며 형조판서에게 바쳐진 그 그림이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
할 때 한참동안 그림을 보고 있던 판서는 큰소리 영을 내렸다.
"여봐라. 지금 당장 가서 신부집에 있는 머슴 황삼술(黃三戌)이란 놈을 냉큼 잡
아오도록 해라."고 명령했다.
형조판서가 펼쳐본 그림에는 누런 종이에 개 세 마리가 그려있기 때문이었다.
누런 종이는 황씨(黃氏) 성을 말하고, 개 세 마리는 삼술(三戌)이 되므로 이를
종합해 보면 황삼술(黃三戌)이 되었다.
그리하여, 머슴살이하는 머슴 중에서 황삼술을 잡아오도록 했던 것이다. 형틀
에 묶인 황삼술은 죽을 죄를 지었다며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사실은
소인 놈이 오래 전부터 죽은 이씨 집에서 머슴살이를 해오던 차에 아씨의 얼굴
이 어찌나 예쁘고 품행이 단정한지 나도 모르게 홀딱 반해 언제부터인가 짝사랑
을 해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씨가 혼례를 치러버렸습니다. 혼자서 울분을 참
지 못해 아씨방으로 들어갔지요. 사실은 신랑 놈이 괘씸해서 죽이려고 칼을 쥐
어들고 들어갔는데, 아씨께서 혼자서 속옷바람으로 주무시고 계시기에 이불 속
에 슬그머니 손을 넣어 젖가슴을 살짝 만져 보았는데, 그 순간 염치도 없는 남
근(男根)이 마치 참나무 장작과 같이 빳빳하게 일어서기에 숨소리를 죽여가며
아씨 속옷을 배꼽 위로 슬슬 걷어올리고 염치없는 놈을 그곳에 대고 엉덩이에
힘을 주어 밀어 넣는 순간, 아! 소리와 함께 아씨가 그만 잠에서 깨어나더니 불
을 켜더니 소인 놈의 뺨을 후려쳤지요.
그래도. 소인 놈은 꿇어앉아 "아씨께서 한번만 제게 몸을 섞어 주신다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습니다" 라고 사정했지만, "죽이려면 죽이거라." 고 몸을 내밀기에
엉겁결에 칼로 젖가슴을 내려쳤습니다." 라며 살인하게 된 과정을 울먹이며 말
하는 것이었다.
그 후. 머슴의 목이 저자거리에 매달리고, 누명을 벗은 정창옥은 길도사를 찾아
가 의부(義父)가 되어 줄 것을 사정하여 부자간의 정을 맺으니 정창옥은 길도사
를 친아버지처럼 섬겨 생명의 은인에 보답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길도사는 맹인이었다고도 하는데, 길도사는 인간의 운명을 명확
하게 볼 수 있는 천리안을 가진데다 그에 상응한 횡액(橫厄)을 면할 수 있는 비
방에도 능통했던 사람이었다 한다.
'글,문학 > 野談,傳說,說話,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팔자타령,방아타령 (0) | 2016.11.28 |
---|---|
신라의 건국 설화 (0) | 2016.11.28 |
문주역과 호랑이 굴 (0) | 2016.11.27 |
합환(合歡) (0) | 2016.11.26 |
추천석의 이야기 (0) | 2016.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