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인물초대석

한국의 위인들(4) 안중근

淸潭 2016. 11. 23. 10:23

한국의 위인들(4) 안중근

 

안중근(1879-1910)이라는 이름은 어려서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그가 누구였는지 잘 알지는 못했지만 일본정계의 거물을 만주 땅 하루빈(하얼빈)에서 권총으로 쏴 죽인 우리나라의 애국자였다고 알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순사(순경)가 있는 데서는 그의 이름 석 자도 입 밖에 내놓으면 안 된다고 어른들이 일러 주었습니다.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안중근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한학에 능했고 '군사놀이'에 취미가 많아 사격에도 능하여, 장차 장군이 될 만한 재능도 타고 났습니다. 대대로 벼슬하던 집안에 태어나 먹고 사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러나 을사보호조약이 1905년에 강제로 체결되어 '군사권', '외교권'이 일본에 의해 박탈된 사실에 분개하여 1907년 7월 강원도에 들어가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북간도로 갔고 마침내 우라디보스토크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이 원수를 어떻게 갚을까"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의병대를 조직하여 좌익장군(左翼將軍)이 되어 두만강을 건너가 일본군 50명을 사살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이또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재무장관을 만나러 그 해 10월에 러시아에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를 사살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그는 그가 언제 어디서 Kokovtsev를 만나게 되는지를 알아내고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중국인 복장을 하고 하얼빈 역두에 나타났습니다. 그의 품에는 브라우닝 자동 권총 한 자루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기차에서 내린 이또가 의장대의 사열을 끝내고 환영 나온 외교관들과 악수를 하려는 그 순간 다가가서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 3발(發)의 총알이 그의 가슴에 명중되었고 그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 쓰러졌습니다. 당황한 일본의 수행원들은 피를 흘리는 그를 안고 특별 열차에 올려 눕혔습니다. 아직도 숨이 끊기지 않은 그는 "이거 누가 한 짓이야?"라고 물었답니다. "한국 청년이랍니다"라는 수행원의 대답을 듣고 "모찌롱"(물론 그렇겠지)라고 한 마디 하고 숨을 거두었답니다. 총에 맞고 15분 쯤 지난 뒤였습니다.

그는 재판정에서 일본인 재판장이 '사형'을 선고했을 때 태연하게 재판장을 향해, "이보다 더 가혹한 형벌은 없느냐?"고 물었고, 항소를 포기했답니다. 그의 사형은 1910년 3월 16일에 여순 감옥에서 집행되었으니 나라를 송두리째 일본에 빼앗기기 5개월 전에 그 꼴 보지 않고 그는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안중근이 간직했던 독립정신은 1945년 8월 15일이 되기까지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안중근이 없었으면 대한 독립도 없었을 겁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